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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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도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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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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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627
소소한 예측: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편찬자의 시선
글 도원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死典’ 된 국어사전…죽어가는 민족 지혜의 심장”.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4년 세계일보 기획 기사의 헤드라인이다.1) 당시 종이사전 편찬 산업의 쇠락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국어사전의 운명을 어둡게 전망하였다. 국가 기관 사전의 출간, 말뭉치 기반 사전의 도약, 포털의 사전 서비스는 사전 전문 출판사의 자리를 잠식해 갔다. 출판사 사전편찬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전문 편찬자들도 사전편찬계에서 사라졌다.
그렇다고 우리의 국어사전이 ‘死典’이 된 건 아니다. 오히려 언중은 웹과 앱을 통해 더 자주 더 풍부하게 사전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집필자가 되어 웹 사전에서 활약하고 있다. 기관을 중심으로 사전 편찬 작업은 지속되고 있고 새로운 사전이 기획되고 또 구축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과 디지털 세상을 지켜보자니, 과연 우리가 만들어 가꾸고 있는 사전이 다가올 미래에도 제 몫을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거대 언어 모델을 장착하고 강화 학습을 마친 생성형 AI가 우리 곁에 와 있다. 그간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정보자원과 그를 활용한 기술의 총화로 구현된 챗지피티(ChatGPT)가 별걸 다 척척 해내는 것을 보면서 사전 편찬도 기계에 맡길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게 된다. 미래의 이용자는 출처가 있는 사전을 직접 검색하여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주는 답변을 보고 들음으로써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날에 대한 두려움과 이 놀라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밀려 온다. 이러한 양가적 감정의 근원을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기계의 도움과 편찬자의 역할
사전을 만드는 일이 사람인 편찬자에서 기계인 컴퓨터로 옮겨 간다는 예측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998년 유럽사전학회에서 그레펜슈테트가 언급한바, 3000년에는 사전 편찬자가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는 그의 전망보다 훨씬 빨랐다. 2012년 유럽사전학회 원탁 토론에서는 “2020년에도 사전편찬자가 남아 있을까?”를 주제로 다루며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사전 편찬 작업이 머지않아 자동화 단계에 이를 것임을 내다보았다.
챗지피티 3.5와 4.0이 공개된 이후에는 실제 기계가 사전 편찬에서 어느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학계의 쟁점이 되고 있다. 2023년 아시아사전학회(ASIALEX)에서 마이클 런델은 “사전 작성의 자동화, 거의 다 왔는가”라는 주제로 챗지피티의 편찬 능력을 평가한 사례를 소개하였다. 표제어의 생성, 정의문 작성의 경우 유의미한 결과를 산출하였지만, 언어 현실을 변조하거나 아예 왜곡된 정보를 내놓기도 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오류나 부적절함, 부자연스러움은 곧 조정되고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러한 전망은 사람 편찬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구글의 제미니, 네이버의 클로바X와 같은 대화형 AI부터 일레븐랩스, 달리, 미드저니 등등 음성·이미지·동영상 생성 AI를 경험해 보니 이전에 형태소 분석기, 용례 검색기를 접하고 익히던 시절이 떠올랐다. 말뭉치 구축을 통한 사전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던 1990년대 우리는 이미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말뭉치를 기반으로 하는 전산언어학이 성장하면서 사전 편찬 방법론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전을 일일이 확인해 가며 종이카드에 표제어에 대한 기술을 해 나가던 방식은 사전 검색기와 입력기를 활용하여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언어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 언어 자료가 축적되고 이를 가공하여 추출할 수 있는 형태소 분석기와 용례 검색기가 탄생하였으며, 우리는 말뭉치에서 표제어를 추출하고 의미를 가다듬고 용례를 선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사전이 바로 1998년에 완성된 《연세 한국어사전》, 2009년에 발간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다. 이후 《겨레말큰사전》, 《우리말샘》, 《한국어기초사전》, 《한국수어-한국어사전》 편찬의 밑거름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포털 사전과 오픈사전의 등장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사전의 유통과 소비 등 사전 생태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국어사전 최초로 《연세 한국어사전》이 2000년에 드림위즈를 통해 누리꾼에게 공개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2008년에 개정판을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공개하면서 국어사전 활용의 길을 활짝 열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도 2011년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이런 전개 과정은 자연스럽게 사전을 일종의 공공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책상 위에 놓고 종이사전을 펼쳐보던 시절을 지나 전자사전을 들고 다니며 외국어 학습을 했던 시절도 흘러갔고 유료 앱을 핸드폰에 다운받아 사전을 검색하던 시절도 끝이 났다. 우리 국민은 기관 홈페이지와 포털의 서비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사전을 무료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사전 이용자의 편의성이 높아졌다.
반면 이용자의 사전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사전에 대한 요청도 상대적으로 증가했다. 그 반증이 바로 오픈사전, 오픈백과의 성장과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가 주도하는 시대에서 일반인과 대중도 사전 편찬에 참여하는 시대로 이행한 것이다. 이는 미디어위키, 도쿠위키, 오픈사전PRO 등과 같은 오픈소스 편집기가 자리를 잡으면서 가능해졌다. 《위키백과》와 《나무위키》는 표제어에 대한 백과 정보를 싣고 있으며 정보량과 출처 등 어마어마한 양의 레퍼런스를 자랑한다. 집필자는 비공개이며 누구든 편집에 관여할 수 있다. 네이버 오픈사전PRO의 경우 집필자가 사전의 주제와 구조를 직접 구성하고 제작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독자의 댓글과 응원도 받을 수 있는 쌍방향 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 오픈사전PRO에는 6,100여 개의 사전이 서비스 중이다. 대부분은 일반인 집필자가 직접 만든 사전이다. 《우리말샘》은 국민의 참여로 총 130만 항목을 넘어섰다. 명실공히 사전 플랫폼이 우리 모두의 글쓰기 공간이 되었다.
아직, 사전이 더 필요하다
웹 시대의 사전은 이미 여러 경쟁자와 경합해 왔다. 한때는 포털의 검색창이 가장 강력한 맞수였다. 그러나 끝도 없이 나열되는 검색 결과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는 과정이 길고 소모적인 데에 반해 사전은 간단명료한 구조적·내용적 특성 덕분에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외국어의 경우 사전을 검색하는 것보다 번역기를 활용하는 것이 더 빠르고 때로는 더 정확하다. 지금은 검색형 AI가 사전의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여러 사전을 참고한 결과를 답변에 반영하고 있어 꽤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사전을 계속 깁고 다듬어야 할지, 새로운 사전을 기획하여 편찬 과정으로 돌입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망설여진다. 사전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포털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공지능 개발 경쟁에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만큼 유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사전 서비스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요사이 일부 백과사전과 외국어사전의 웹 서비스가 잇달아 종료되고 있어, 사전 콘텐츠 서비스의 앞날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구축한 무료 콘텐츠와 일반인이 작성한 오픈 사전을 중심으로 사전 서비스가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사전 콘텐츠 다양화 시대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가까운 미래가 눈에 보인다면 그에 맞설 수 있는 태세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할 일은 매우 많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사전들이 상당하다. 예를 들자면 쓸 만한 표현용 사전을 웹에서는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의 국어사전은 궁금한 단어나 특정 정보에 대해 표제어를 중심으로 찾게 되어 있는 이해용 사전이다.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상황에 딱 맞는 어휘를 추천해 주는 사전은 태부족한 상태이다. 좀 더 유려한 표현, 재미난 표현, 전문적인 표현, 최신 표현 등등을 정확히 알려 주는 사전. 챗지피티 4.0과 네이버 Cue에게 묻고 또 물어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편찬자, 무엇을 할 것인가
편찬자가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언어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 여타의 어휘와 복잡하게 얽힌 의미의 망을 가닥가닥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감성, 이를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지성, 자신의 언어로 명징하게 기술할 수 있는 표현력을 더욱더 키워야 한다. 《우리말 어감사전》(2021)은 우리말에 담긴 언중의 심오한 의식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짚어내었다. 편찬자가 언어라는 넓은 바다를 때로는 편안하게 유영하면서 때로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면서 온몸으로 느끼며 건져 올린 보물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고성능 AI가 해낼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더 똘똘해질 AI를 사전 편찬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전 플랫폼을 설계할 때 최신의 ICT를 적용하자는 말이다. 이용자를 위해 인터페이스의 범위를 넓혀서 사전 간 연결뿐만 아니라 비사전과의 융합도 가능해져야 한다. 오픈소스 플랫폼에서 편찬된 사전 콘텐츠는 디지털 아카이브 외에도 유튜브, 온라인 기사 등 각종 플랫폼에 쉽게 접속된다. 또한 시각화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다채로운 정보를 가시적으로 펼쳐 보인다. 사전이 반드시 고전적인 형식과 구조를 띨 필요가 없다. 기술은 충분히 발전되어 있다. 다만, 사전 편찬 시스템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편찬자의 작업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사전 편찬 시스템은 사전 편집기, 말뭉치 검색기, 통합사전 검색기, 데이터 관리기 등이 서로 연동되어 움직인다. 이들은 국어사전과 국어사전학의 발전을 이끈 토대이자 동력이었다. 하지만 집필과 교열 과정에서 편찬자는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클릭해서 일일이 확인한 뒤 선별하고 입력해야 한다. 작업 수월성을 위한 기능이 보강되고 있지만 아직도 셀 수 없을 만큼의 클릭과 저장을 반복해야 하나의 표제어를 완성할 수 있다. 똘똘한 AI 편찬 보조원에게 맡길 일들을 늘려 가야 할 것이다.
사전을 만드는 모두에게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기를 소망한다. 그렇다면 편찬자는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할 것이다. 그런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사전 편집기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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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별기획취재팀(2014. 6. 30.), “‘死典’ 된 국어사전…죽어가는 민족 지혜 의 심장”, 세계일보,
https://www.segye.com/newsView/201406290 02603?OutUrl=naver(접속일: 2024. 4. 15.)
도원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사전학센터를 맡고 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중한대사전》, 《한중사전》, 《고려대 한한중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등의 편찬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