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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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민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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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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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512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역사적 사명
글 민현식 겨레말큰사전 이사장
지난 2004년 3월 15일, 남측의 ‘통일맞이’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가 만나 ‘남북공동 《겨레말큰사전》 편찬의향서’를 체결하고 《겨레말큰사전》으로 사전 명칭도 결정하였다. 같은 해 12월 11일에는 제1기 남측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2월 13일 공동편찬위원회가 금강산에서 실무 접촉을 갖고, 합의서와 부속합의서를 체결하였다. 드디어 이듬해 2005년 2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남북편찬위원들이 모여 제1차 공동회의를 개최한 이래 올해 20주년을 맞게 되었다.
2006년 1월 23일에 남측 사업 주체인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법인 설립이 인가되었다. 2007년 4월 27일에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특별법으로 제정되어 사단법인에서 특수법인으로 법인격이 전환되었으며, 사업회는 명실공히 법정 기구로 국민이 부여한 사명과 책임을 갖게 되었다.1) 그동안 남북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총 25회 만나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공동회의를 열었으나 북핵 사태로 2016년부터는 공동회의가 열리지 못했고 남측 단독으로 매년 1~2회씩 남측편찬위원회 회의를 열어 편찬사업을 점검하고 신년도 사업을 추진해 왔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는 공동편찬위원회의 재개를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그마저 끊어졌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항상 결정적 돌파구를 통해 위기를 넘겨온 경험들이 있어 당장의 비관적 전망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지속 보완이 가능한 사전
다행히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공동편찬위원회는 어려운 남북 및 국제 여건 속에서도 남북 어문규정의 차이점을 연구하고 표기법 통일 방안에 대한 기초 연구를 하였으며, 《겨레말큰사전》에 올릴 30만 7,000여 개의 올림말(표제어)을 확정하고 집필 지침도 수립하여 상호 교열을 통해 10년간 사업을 원만하게 추진하였다. 2016년부터 북핵 사태로 상호교류가 중단된 후에는 남북 상호 집필과 교열의 경험을 토대로 미집필 원고에 대하여 집필을 완료하였고 교열 중에 있다. 언제든지 공동회의가 재개되면 그동안의 남북 집필 과정본으로서 지속 보완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2028년 4월까지는 남북 언어 정보 사전으로서 유용하게 쓰일 《겨레말큰사전》 1차 결과물을 종이사전과 전자사전(웹사전)으로 국민에게 공개하고 향후 지속 보완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한류의 확산에 힘입어 한국어 사용자는 이제 남한 5,100만, 북한 2,500만, 해외 750만, 국내 이주민 260만에 이르고, 전 세계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 수는 2022년 35만, 2023년 42만, 2024년 49만 명으로 늘어 최근 3년간 126만 명이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였다. 외국인 유학생, 산업연수생,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등 다양한 한국어 학습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외국인 학습자만 수백만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남북 겨레는 물론 해외동포와 외국인 학습자를 위해 겨레말의 언어 정보를 총망라한 한국어 사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1991년부터 시작하여 1999년에 종이사전 편찬을 마친 51만 단어 규모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1999, 종이사전; 2008 웹사전)과 전문어와 방언을 보강하여 100만 어휘를 바라보고 편찬한 《우리말샘》(2016, 개방형사전)은 한국어 정보 집대성에 큰 기여를 하였으나 통일 후를 위한 북한어 정보가 미흡하여 해외 한민족을 고려한 사전으로서도 새로운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이런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남북 언어의 이질화 문제
남북 언어의 차이는 지리적 방언 차이에서 나타나는 지역어(지역방언)와 이념 체제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체제어 (체제방언, 이념 체제어)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지역어 차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며 이질화의 내용으로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한국어 방언에서 남한의 동남방언(영남방언), 서남방언(호남방언), 제주방언, 충청방언, 경기방언이라든가, 북한의 서북방언(평안방언), 동북방언(함경방언)에서도 지역방언의 차이는 엄존하고 한국어의 하위 방언에 불과하여 개인차에 따라 일부 지역어가 알아듣기 어려워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현대사회에서 지역어 사용자는 대부분 교육과 매체의 영향으로 중앙의 표준어도 구사하는 이중방언 사용자인 만큼 남북 지역어는 이질화나 언어 불통의 차이로 거론할 필요가 없다. 남북의 지역어 차이는 다른 지역어들 차이와 같은 지역어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 언어의 이질화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대체로 체제어의 차이에 기인한다. 남북 체제의 이념적 차이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의 언어가 달라지므로 우리는 이를 ‘체제어의 이질화’로 부르도록 하며, 체제어는 다시 ①이념어와 ②전문어 영역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다음 사례에서 붙임표(-) 앞은 남한어, 뒤는 북한어이다.
① 이념어(이념 체제어): 대한민국-남조선. 한반도-조선반도. 대통령-국무위원장. 시청-시인민위원회. 주민등록증-공민증. 국회-최고인민회의. 국민-인민. 광복절-조국해방의 날. 한글날-훈민정음 창제일. 스승의날-교육절.
② 전문어(전문 체제어): [의료] 한약-동약·고려약. 치과-구강과. 늑막-가슴막.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거미줄막하출혈. 돌연사-갑작죽음. [경제] 환전-화폐교환. 수당-가급금. 통과무역-거침무역. 초과근무-과외로동. [건설] 건축공사비-건설총원가. 개폐기-여닫개. 보온성-따습성. 내화벽돌-불벽돌. [재무] 회계감사인-검증성원. 결산잉여금-결산리윤. [교통] 인도·보행로-걸음길. 육교-구름다리. 횡단보도- 건늠길. [체육] 동계올림픽-겨울철올림픽. 매스게임-집단체조. 아이스하키-빙상호케이. [수학] 막대그래프- 기둥도표. 코사인-코시누스. 두제곱근-두제곱뿌리. 정사각형-바른사각형. [교육] 볼펜-원주필. 멜로디언-입풍금. [정보] 데이터베이스-자료기지. 포맷-호마트. 인터페이스-결합장치. 기억소자-기억세포. [의류] 한복-조선옷. 니트-뜨개옷. [기타] 포장마차-막매대. 웨이터-접대원. [음식] 와플-구운빵지짐. 바게트-베개빵.
위에서 이들 이념어는 이념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전문어는 체제를 지탱하는 각 전문 영역을 기반으로 형성되면서 남북 전문용어가 달라진 경우이다. 특히 전문어는 언어정책에 따라 이념 체제어의 영향을 받기 쉬운데 북한의 경우에는 고유어 중심으로 순화어를 쓰는 ‘어휘정리사업’이 있어 왔다. 남한도 ‘국어순화사업’이 있어 왔기에 남북 특유의 언어정책이 작용하여 전문어의 이질화가 드러나는 측면이 강하다. 앞으로 남북 언어의 이질화 문제는 일반어보다 특히 남북 전문어의 영역에서 심각할 것으로 보여 남북 언어정책에서 이 부문의 통합과 통일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언어학자는 물론, 각 전문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점진적 통합과 궁극적 통일
다음으로 이질화 문제의 심각한 영역은 남북한의 표기 영역이라 하겠으니 다음은 표기법 불통일(不統一) 사례를 영역별로 간단히 예시한 것이다.
① 두음법칙 표기: 여자-녀자. 요소-뇨소. 이성-리성. 낙원-락원. 노동-로동. 예외-례외. 비율-비률
② 사잇소리 표기: 바닷가-바다가. 숫자-수자. 아랫니-아래이. 뒷문-뒤문. 숫양-수양.2) 수캐-수개. 수키와-수기와
③ 어미 표기: 되어-되여. 도리어-도리여. 드디어-드디여. 고마워-고마워·고마와3)
④ 접사 표기: 멧돼지-메돼지. 빛깔-빛갈. 일찍이-일찌기. 널찍하다-널직하다. 널따랗다-널다랗다·넓다랗다.
⑤ 외래어 표기: 헬멧-헬메트. 토픽-토피크. 버스-뻐스. 댐-땜. 캐비넷-까비네뜨. 트랙터-뜨락또르. 타입-타이프. 플래시-플라쉬. 초콜릿-초콜레트. 고딕-고지끄
위와 같은 남북 표기법의 상이함은 《겨레말큰사전》 편찬과 동시에 이상적 ‘남북 표기법 통일안’(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만들어 통일 후 신속히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표기법 통일안은 비록 남북 기성세대에게는 기존의 표기법이 통용되고 있어 불편할 수 있으나 초·중·고교 및 대학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미래 세대에게는 남북 표기법을 가급적 단일화한 표기법 통일안으로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위와 같은 남북 간의 불일치는 최소화하고 단일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북 언어의 이질화가 아무리 극심하다고 해도 남북 언어의 차이에 대한 극복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낯선 언어 지역에 여행객으로 가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과 웃음의 언어와 사랑과 베풂의 마음으로 금세 이웃처럼 친해지게 된다. 이는 우리가 억센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 땅의 영호남, 제주에 가도 동족의 인정(人情)으로 금세 친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남북 언어의 이질화는 통일의 방해물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므로 전혀 염려할 것이 없다. 남북 신뢰의 문제일 뿐이다. 남북 기성세대가 불편하다고 남북 미래 세대의 통일 표기법 수립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겨레말큰사전》은 그런 ‘점진적 통합과 궁극적 통일’을 향한 한민족 언어 통합의 장정(長征)에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정치·사회적 통일까지 이루는 믿음
우리는 독일 통일, 중국 양안(兩岸) 교류의 사례를 거울삼아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의 예상되는 언어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사업회 역시 국립국어원과 긴밀히 협력하여 남북 언어 통일의 사회언어학적 정책 연구, 다양한 이주민들의 언어 정착과 통합을 위한 실증적 연구, 해외 한민족 공동체의 언어 유지 및 상실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인류언어학적 연구도 지속적, 장기적으로 수행하여야 하는 상황이다. 독일은 분열기인 1838년 그림(Grimm) 형제가 시작한 《독일어사전》 편찬을 2차 세계대전 후 동서독 분단기까지 이어가 1961년 122년 만에 완성하였다. 중국과 대만도 1996년 1차로 공동사전 편찬을 시작해 2003년 《양안현대한어상용사전(兩岸現代漢語常用辭典)》을 발간하였고, 2차로 《중화어문대사전(中華語文大辭典)》을 2016년에 완간하였다. 따라서 남북한도 급변하는 인공지능(AI) 시대와 국제 정세 속에서도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창조적으로 혁신하는 응변창신(應變創新)의 각오로 독일의 ‘인내’와 중국의 ‘실용’ 정신을 거울삼아 언어문화 통일사업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정치·사회적 통일까지 이루는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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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업회의 자세한 해살이(연혁)는 홈페이지의 ‘사업회 소개’ 참고.
2) 북한 《조선말대사전》(1992, 증보 2017)에서 사이시옷을 쓴 사례가 다음과 같이 있어 북한 규범도 일관성을 보이진 않는다: 갓길, 갯버들, 갯보리, 상앗대, 샛별.
3) 북한에서는 ㅂ 불규칙에서 ‘고마워·고마와, 아름다워·아름다와’처럼 쌍형 형태를 인정한다.

민현식
겨레말큰사전 이사장,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전 강릉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 국립국어원장 등을 역임하고 국제한국어교육학회 회장, 국제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국어 문법 연구』(1999), 『국어 교육을 위한 응용국어학 연구』(1999), 『국어 의미 교육론』(2019, 공저), 『한국어학 입문』(2020, 공저), 『한국어학 개론』(2020, 공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