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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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권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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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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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369
돌아보기와 내다보기
- 겨레말큰사전 공동회의 20돌을 맞이하여
글 권재일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이 공동으로 편찬하여 남북의 언어 차이를 극복하려는 사전이다. 현재 남북 사전에 실려 있는 어휘를 가다듬는 것은 물론, 잊혀가는 지역어와 문헌어도 올림말로 삼아, 같은 기준으로 새롭게 뜻풀이하였다. 이렇게 하여 《겨레말큰사전》은 통일 이후 원활한 의사소통의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이러한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하여 공동편찬위원회가 출범한 지 스무 돌을 맞이하였다. 짧지 않은 세월이 어느새 지나갔다. 나는 처음부터 참여해서 지금까지 관여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깊어, 지난 20년을 잠시 돌아보고자 한다.

나와 겨레말큰사전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내가 참여하게 된 것은 편찬사업이 시작된 2005년 11월 사업회에 단일어문규범위원회가 조직되면서부터이다. 분단 이후 서로 달라진 어문규범의 단일안을 마련하기 위한 조직이다. 남측에서 는 내가 위원장을 맡고 북측에서는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문영호 소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내가 단일어문규범위원회를 그만둔 2009년 4월까지 이어졌다. 2008년 2월 홍윤표 선생님에 이어 나는 제2대 남측편찬위원장을 맡음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었다. 새로 찾아낸 지역어, 문헌어를 포함하여 30만여 개 올림말을 확정 짓고 단일 어문규범을 하나씩 하나씩 다듬어 가면서 뜻풀이를 위한 집필 지침도 확정했다. 그동안 13회에 걸쳐 개성, 금강산, 평양, 베이징, 선양 등지에서 열린 공동회의에 참석하였다. 2009년 4월 국립국어원 원장에 취임하면서 부득이 편찬위원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사업회 이사를 맡아 지금까지 편찬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국토 통일에 앞서서
이런 언어 통합을 미리 준비해 둠으로써
어떠한 혼돈도 없이 효과적으로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쓸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둔다는 의미에서
미리 준비해 두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에 참여하면서 내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사업의 가치는 “미리 준비해 두다”였다.
한글학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적은 1933년에 맞춤법을 제정함으로써 우리의 글자 생활의 규범을 정하고, 1936년에 표준어를 가려 뽑음으로써 언어 생활의 규범을 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광복 전에 미리 이 두 규범을 마련해 두었다는 점이다. 1945년 광복되어 우리말과 우리글을 되찾았을 때, 어떠한 혼란과 혼돈 없이 국어 교사를 양성하고 국어 교육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 규범을 미리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를 정하는 데에 상당한 기간을 허비하고 국어 교육은 우왕좌왕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북은 지금과 는 달리 완전히 서로 다른 규범을 정하여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미리 준비해 둔 이 어문규범을 통해, 광복 이후 같은 뿌리의 말글 정책을 펼쳤으니, “미리 준비해 둔” 덕분이다.
남북의 언어학자가 서로 만나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통해 언어 통합을 실현하는 것의 가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국토 통일에 앞서서 이런 언어 통합을 미리 준비해 둠으로써 어떠한 혼돈도 없이 효과적으로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쓸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둔다는 의미에서 《겨레말큰사전》은 그 가치가 따질 수 없을 만큼 대단히 크다.
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또 다른 가치에 주목한다. 첫째는 서로 차이 나는 남북 언어를 두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단일안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올림말 선정에서도, 뜻풀이와 보기글 집필에서도, 어문규범에서도, 언어 이론과 서로 다른 사회 상황을 두루 참조하여 누가 보아도 가장 타당하다고 평가할 합의안을 이끌어내었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의의라 생각한다. 둘째는 사전 편찬 인력을 양성하였다는 것이다. 20세기를 끝으로 현재 국내에서 사전 편찬은 중단되었다. 물론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완하는 조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사전을 편찬하는 곳은 지난 20년간 사업회가 유일하다. 만약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사전 편찬은 막을 내렸고 사전 편찬 인력은 사라졌을 것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 사전 편찬, 나아가서 국어학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고 자부한다.
단일 어문규범 합의
서로 다른 남북의 어문규범을 단일화해서 사전의 올림말과 뜻풀이에 반영하는 것은 사전 편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사전의 자모 배열순서, 띄어쓰기, 사이시옷, 두음법칙, 외래어 표기 등 여러 부문에서 단일규범을 합의하였다. 사이시옷과 두음법칙 표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그간 서로 달리 써 온 어문규범을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합리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 의의가 크다.
내가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처음 관여한 계기는 바로 단일어문규범작성위원장을 맡고부터이니,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2005년 11월 24일, 개성 봉동관에서 열린 제4차 공동회의에서 첫 단일 어문규범작성위원회가 열렸다.
첫 회의에서 다룬 주제는 바로 사전에 올림말을 실을 자모의 순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였다. 북측 대표인 문영호 소장이 인사말에 이어 “자음 순서에 대해 남측 대표인 권 선생이 먼저 말해 보라”고 했고 나는 남측이 네 가지를 양보하겠으니, 북측에서는 하나만 양보하라 했다. 문 소장이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했다. 그래서 ㄲ, ㄸ, ㅃ, ㅆ, ㅉ은 북측 방식대로 하겠다, 다만 ㅇ이 모음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이 워낙 오랜 관습으로 써 왔기 때문에 그것은 남측 방식대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내가 이렇게 제안하면서 가졌던 속생각은 만약에 뭔가를 합의해서 서울에 돌아와 언론이나 학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겹자음을 뒤로 보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국민들이 겹자음의 위치보다 ㅇ의 위치를 더 잘 알기 때문에, ㅇ을 북측 방식으로 하고 겹자음을 남측 방식으로 했다고 하면 엄청난 비판이 쏟아질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논의를 이어갔다. 결국은 내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겨레말큰사전》 올림말의 자음 순서는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ㄲㄸㅃㅆㅉ’으로 정하였다. 공동회의 참석 첫 날 나로서는 굉장히 흐뭇했다.
둘째 날은 모음 순서를 정하였다. 나는 회의 처음부터 모음 순서는 북측 방식인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를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제안하여 별 토론 없이 잘 마무리하였다. 왜냐하면 어제 자음 회의에서 ㅇ 위치를 북측에서 양보했으니, 남측은 모음을 양보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인데, 실은 우리 측 속사정도 고려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한테 모음 순서를 말해 보라면, 열 가운데 아홉은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라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 규범은 ‘ㅏㅐ ㅑㅒㅓㅔㅕㅖ……’이다. 그러니 위와 같이 북측 방식으로 합의해도 우리 국민들이 불편해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하기에 앞서, 《겨레말큰사전》 편찬과 관련한 현실을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현실이 타개되지 않는 한, 사전 편찬을 위한 남북 교류는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현실은 북측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하여 남한말을 괴뢰말로 규정한 것이다. 둘째 현실은 북측이 남측과 동일 민족임을 부정하는 정책이다. 이 두 현실은 민족 즉, ‘겨레’의 말과 크게 어긋난다. 북측이 《겨레말큰사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둘째는 우리 말글 연구와 자료 구축을 위하여 할 일이다.
첫째,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할 일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그간 무엇을 했는가, 그것이 국민들의 언어생활과 북한어 이해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에 분명히 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 또는 그 결과물을 최대한 빠르게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더욱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공개해 야 한다. 더 나아가서 사업회에서 남북이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행 사전과 어문규범을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는 우리 말글 연구와 자료 구축을 위하여 할 일이다. 지금부터 《겨레말큰사전》 편찬 백서를 집필해야 한다. 총괄, 올림말, 뜻풀이, 어문규범, 합의 방식 등에 대해 정확하고 빠짐없이 기록으로 보존하여 앞으로 국어사전 편찬의 중요한 길잡이로 활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겨레말큰사전》 자체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 사전학적 연구, 언어정책적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면서 국내외에서 수집한 문헌어 말뭉치, 지역어 말뭉치를 학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널리 활용하도록 가공하고 보급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사업회가 추구하는 ‘남과 북의 말을 잇습니다, 겨레의 꿈을 담겠습니다’라는 다짐을 공동회의 스무 돌을 맞이하면서 다시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