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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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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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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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490
'말[言] 문(門)은 열어야':
남북 언어 분단과 겨레말
글 전영선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교수
‘보호’를 명분으로 그어진 언어의 경계선 「평양문화어보호법」
2025년은 여러 의미가 있는 해이다. 남북 분단 80년이 되는 해이며, 2005년 금강산에서 남북이 만나 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한 때로부터 20년이 되는 해이다. 분단 80년을 맞이하는 2025년 상황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합의했던 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1989년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이 합의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하였던 역사의 순간은 햇빛에 바래지기 직전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남북을 이어주던 소통의 끈이 없어졌다.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이 폭파되었고, 2024년 10월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일부가 폭파되었다. 남북을 오가는 육로가 완전히 끊어졌다.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남북 공통성의 상징인 언어 사이에도 휴전선보다 큰 장벽이 세워졌다. 2023년에 채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문화어보호법」(아래 「평양문화어보호법」)이다.
북한은 2023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를 개최하여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하였다. 법의 명칭에서 명시하였듯이 「평양문화어보호법」은 ‘평양문화어’ 보호를 목적으로 한 법이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 목적에 대해 “비규범적인 언어요소를 배격하며 온 사회에 사회주의적 언어생활 기풍을 확립하여 평양문화어를 보호하고 적극 살려 나가는 데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라 명시하였다.
「평양문화어보호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 통제 조치로 평가하였다. 북한 사회에 ‘한류’를 비롯하여, ‘아랫동네’의 영향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통제하기 위해 제정하였다는 것이 공통적인 분석이다. 실제 법의 내용 대부분은 ‘보호’나 ‘증진’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어휘, 문법, 억양 등이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여 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말로서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제2조 정의)로 규정한 ‘비규범적 언어’의 유입, 유포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담았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조문은 “괴뢰말투를 따라하는 현상”부터 ‘호칭’ 등의 언어생활에서 한국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심지어 남한의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로 표기된 물건짝’, ‘출판물’, ‘전단지’, ‘강하천이나 바다로부터 유입된 괴리말찌꺼기’를 소지하거나 ‘인터넷서체’, ‘방송물’, ‘그림’, ‘사진’, ‘족자’, ‘휴대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처벌 수위도 매우 강하다. 처벌 대상에는 괴뢰 말투를 사용하는 공민은 물론, 괴뢰말이 유입될 수 있는 국경이나 강 하천 관리를 소홀히 하여서, 경내로 유입하도록 한 경우도 포함된다. 처벌에서도 ‘엄한 법적 제재’를 원칙으로 규정하였다. “국가는 괴뢰말투를 본따거나 류포한 자들에 대하여서는 괴뢰문화에 오염된 쓰레기로, 범죄자로 락인하고 그가 누구이든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극형에 이르기까지 엄한 법적제재를 가하도록 한다.”라고 하였다. 처벌 방식도 공개 처벌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야말로 ‘괴뢰 말투와 관련한 어떤 것’이라도 유입과 유통을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한 취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시적인 상황으로 보기도 어렵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에 앞서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하였는데, 이 법은 모두 외부 문화의 유입에 대한 강한 경계와 청년들에 대한 사상재교육을 강제한 것이었다. 사회 통제에 대한 강도가 높아진 2019년 이후에 취해진 일련의 문화 통제 조치로 파악되는 이유이다.
새로운 언어 표준을 정한 것은 1966년이었다. 김일성은 1966년 5월 14일에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일군들과 한 담화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데 대하여」에서 ‘문화어’를 새로운 표준어로 규정하였다. ‘문화어’는 기본적으로 평양말이다. 이때 평양말은 지역적인 의미 이상이었다. ‘평양문화어’라고 하지 않고, ‘문화어’라고 한 것은 ‘평양’이라는 지역성보다는 문화성, 즉, 사회주의 조선에서 진행되는 사회주의 혁명의 수도인 평양에서 문화성 있는 언어를 강조하는 의미였다. ‘문화성’은 표준어의 원칙으로서 ‘교양 있는 서울말’에서 ‘교양’에 해당하는, 사회주의 혁명화가 진행된 ‘고상한 평양말’이었다. 새로운 표준으로 ‘문화어’를 정하고, 《조선문화어사전》도 발행하였다. 하지만 언어의 중심은 민족이었다. 조선 민족의 말과 글인 ‘조선어’, ‘조선말’이었다. 비록 남북이 분단되고, 언어에서 차이가 생기기는 하였지만 한 민족으로서 공통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모델로서 ‘문화성’을 갖춘 언어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었다.
남북 교류 전문가가 바라본 공동회의의 의미와 가치
물리적인 공간은 이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 분단의 장벽은 새로 잇기가 쉽지 않다. 독일 통일 사례는 문화의 장벽과 회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통일은 어쩌면 눈에 보이는 제도의 통합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장벽을 허무는 과정이다. 틈을 내고, 넘나들면서 소통의 길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당연한 순리일 것 같은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은 그 사회의 문화적 성과를 총결하는 과정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의 공통성을 확인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남북 사이에 막혔던 말(言)이 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門)은 열려 있어야 한다.
남북이 만나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에 합의한 이유는 분명하다. 겨레의 말이 통해야 하고, 언어가 통해야 민족으로서 공통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언어 정책은 ‘언어가 민족문제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언어 문제에서는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하였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징표”이고, ‘언어 정책’은 겨레말로서 ‘민족어를 발전시키자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원칙이었다. “피줄이 같고 한 령토 안에서 살아도 언어가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피줄과 언어를 같이하고 한 강토 우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이다. 《두개의 조선》은 결코 있을수 없으며 우리 조국은 반드시 통일되여야 한다.”, “북과 남의 언어적 차이가 커”지면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발전에 지장을 주게 될 것”1)이라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문헌을 통해서 반복하여 강조한 원칙이었다.
민족의 공통성을 이루는 한 요소로서 민족어의 특성을 살리고, 민족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원칙은 일관되게 이어졌다. 국토가 분단되었고, 정치와 경제 제도가 다른 상황에서 분단이 길어졌지만 ‘민족’이라는 공통성을 놓지 않았다. 조선어는 오랫동안 조선 민족이 공유한 언어라는 인식이 확고했기에, 남한과 북한이 다른 언어의 기원을 가졌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단일성과 유구성을 부인하고 민족분렬 책동과 식민지화 책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이라고 일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정은 시기의 언어 정책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의 언어 정책과 차이가 있다. 민족어로서 ‘조선어’보다는 ‘국어(國語)’로서, ‘평양문화어’를 더 강조한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북한 언론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이대로 간다면 남북의 언어는 두 개 국가의 언어가 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남북이 하나가 되어 분단된 언어의 장벽을 넘는 사업이다. 분단이 길어지면 남북의 문화 장벽도 높아진다. 80년의 시간은 광복과 함께 분단된 이후로 소통 없이 지내온 시간이었다.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은 시나브로 쌓인 남북 문화의 장벽을 체감하고, 소통을 위한 창구로 시작된 사업이었다. 남북이 분단되어도 하나의 핏줄과 하나의 언어로 이어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의 의미였다. ‘모국어의 생명이 겨레의 영혼입니다.’라는 문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뼈와 살인 우리 말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대변한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남북이 하나가 되어 분단된 언어의 장벽을 넘는 사업이다.
분단이 길어지면 남북의 문화 장벽도 높아진다.
80년의 시간은 광복과 함께 분단된 이후로 소통 없이 지내온 시간이었다.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은
시나브로 쌓인 남북 문화의 장벽을 체감하고,
소통을 위한 창구로 시작된 사업이었다.
남북 교류의 방향과 편찬사업에 대한 전망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으로 겨레의 말을 이어가야 한다는 당위성과 의미는 절실함 이상이다. 분단 극복의 노력으로 일군 성과를 축하하는 2025년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넘어야 할 파고와 산은 험준하고 가파르다.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언어라고 하면 오랜 옛날부터 시작하여, 장구한 시간 속에 생활과 문화를 함께 하면서 올곧게 굳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언어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언어가 태어나고 유통되고 자리 잡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실제로 많은 언어들이 분화되고 새로운 언어들이 출현한다. 제국주의 시기에는 식민지 지역에서 새로운 언어들이 만들어졌다. 낯선 언어, 새로운 문화와 접하게 된 원주민들이 두 가지 언어를 섞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들을 만들었다. 이런 종류의 언어를 ‘피진’이라고 한다.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 태어난 콩글리시도 피진의 일종이다. 피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공용어가 되고, 의사소통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면, 새로운 언어 ‘크레올’로 불리게 된다. 크레올은 일종의 혼종어이다. 언어를 비롯하여, 이질적인 두 문화가 만나 새로운 문화로 태어날 때도 크레올이라고 한다. 이렇게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10년 또는 20년 정도이다. 남북의 언어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80년 동안 유통되었으나 달라졌어도 상당히 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사실인지 알 수 없다. 탈북민이 충분히 이해한 것인지, 이해하는 척을 한 것인지, 남북의 언어가 차이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남한에 정착한 지 오래되어서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려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어느 정도 차이 나는 지를 확인이 필요하다.
언어는 폭이 매우 넓다. 같은 말을 한다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맥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받아들이는 차이도 다르다. 언어는 그 자체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다. 이런 이유로 타문화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고 해서 언어가 소통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0년이나 30년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세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언어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충실하게 의미를 정리하고,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 언어는 공공의 영역이다. 공적 자금과 자원을 통해 언어의 공통성을 유지해야 한다. 토도로프는 『상징의 이론』에서 “언어는 민족의 정신을 표명하기 위한 특권적인 방법”이면서도 “거꾸로 민족이 그 언어에 의해서 형성된다.”라고 하였다. 언어가 달라지면 민족의 공통성은 휘발된다. 나아가 민족도 분열된다. 분단 8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남다른 것은 언어의 이질화는 곧 민족의 분열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단기적으로 끝날 일종의 사업이 아니라 지속하면서, 넓혀나가야 할 문화 소통의 문(門)이자 창이다. 통일 역량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겨레말큰사전》은 이어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