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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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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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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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458
통일로 가는 디딤돌
《겨레말큰사전》 만들기 20년
글 이경우 미디어언어연구소 소장
언론은 공동회의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2005년 8월 14일~17일 광복 60돌 기념 8·15 민족대축전이 서울에서 열렸다. 14일 서울에 도착한 북측 대표단이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다. 이들은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모셔진 현충탑을 참배했다. 분단 이후 처음이었다. 5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사적인 일로 기록됐다. 북측 대표단의 우호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는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당시 북측 대표단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핵문제의 고비를 넘고,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 나가자.”라고 했다.
[독자의 목소리] 겨레말큰사전 편찬 차분하게
요즘만 같으면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남북 화합의 축제를 가진 데 이어 남북한 학자들을 주축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말과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상징 체계로, 반세기 이상 벌어진 남북의 이질감을 극복하는 데 주춧돌이 될 수도 있다. 분위기에 취해 당장 성과를 내려 하지 말고 시일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준비하길 바란다. (국민일보, 2005. 8. 17.)
남북 간에 새로운 화해 분위기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남북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협력과 평화로 가는 힘을 얻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는 사전 편찬 요강을 확정해 발표했다. 언론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디딤돌이 되리라 기대했다. 독자의 목소리를 빌려 지지와 당부를 전하기도 하고, 국민의 성원이 있어야 한다는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다.
[사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민족 정체성의 대장전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가 8·15 민족대축전 폐막일인 그제 5개 항의 사전 편찬 요강을 확정해 발표한 것은 그 의미가 사뭇 심장하다. 지난 2월 남북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한 뒤 불과 6개월 만에 편찬 요강까지 내놓는 등 강한 의지를 보여 준 것도 주목된다. … 남은 문제는 국민과 정부의 성원이다. … 국민적 성원만이 이런 한계를 넘어 훼손된 민족 공동체의 기반인 말글살이를 오롯이 아우를 수 있게 할 것이다. (한겨레, 2005. 8. 18.)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카인즈에 따르면 이후 겨레말큰사전이 언급된 기사는 2005년 55건에서 2007년 112건, 2008년 108건, 2014년 135건, 2015년 108건으로 늘었다. 100건을 처음 넘긴 2007년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해였다. 2014년에는 2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9월 북측 선수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7월에는 공동회의가 5년 만에 재개됐다. 이후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자 겨레말큰사전 관련 언급도 급격하게 줄었다. 그러다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324건, 2019년 138건을 기록한 뒤 2024년에는 4건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매체별로는 카인즈에서 ‘겨레말큰사전’을 검색하면 2025년 3월 현재 한겨레가 388건으로 가장 많이 보인다. 경향신문이 89건으로 그다음이었다. 중앙일보 27건, 동아일보 20건, 조선일보 16건이었다. 진보적인 매체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남북 관계가 좋을 때만이었다. 정치적 산물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언론의 보도 내용도 정치적 상황에 따른 게 많았다. 그렇다 보니 편찬 작업의 성과에 대한 분석 기사는 적었다.
공동회의 이후 후속 보도도 꾸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반 국민들은 사업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다. 겨레말큰사전 관련 기사에서 많이 다뤄진 건 언어 이질화였다.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오징어’와 ‘낙지’ 등 흥미를 끌 만한 어휘와 전문용어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다뤘다.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기대와 환영 일색의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언론은 한편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남북은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달리하면서 생활해 왔다. 따라서 사전 편찬 작업은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언론은 공동회의에 어떤 의미를 두었을까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북의 김일성 주석을 만난 문 목사는 남쪽에서 나온 국어사전을 선물로 건넸다.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남북 통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고, 통일에 대비해 남북 공동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데 합의했다. 사전 편찬의 씨앗이 뿌려졌다. 통일로 가는 길을 놓는 일이었다.
사전 편찬은 이후 16년이 지난 2005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겨레말큰사전》 공동회의는 단순히 국어사전을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협력과 화해를 가져오게 했고, 통일의 꿈을 더욱 키우게 했다. 논의하는 시간을 늘리며 서로의 신뢰도 높여 갔다. 정치적 신뢰도 높여 가는 일이었다.
분단은 국토의 분단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생각도 언어도 갈라지게 했다. 갈라진 남과 북이 각각 만든 국어사전은 결과적으로 온전한 사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한쪽은 표준어, 한쪽은 문화어라는 이름으로 각각의 말을 만들어 갔고, 민족의 언어는 분단이라는 틀에 갇혔다. 언어를 맞고 틀리고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들기도 했다. 언어 이질화를 가져오고, 언어 민주화에 장애를 불러왔다.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는 공동회의는 분단 해소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우리의 언어를 새로 정리하고 더 풍부하게 하는 기초를 쌓고 있었다.
공동회의는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사전을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의 《조선말대사전》을 기계적으로 합치지 않고 민족어의 유산을 조사해 미래지향적으로 사전을 편찬하고 있다.
남북이 정치나 군사 문제를 떠나 대화하고 협력하는 사례로도 평가한다. 공동회의가 남북 대화의 창구 구실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돼 왔다. 당장 어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도 특정 주제를 놓고 서로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나아가 공동편찬위원회의 학문적 협력과 협의가 다른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도 했다.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남북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우리말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남과 북은 분단 이후 80년을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살고 있다. 생각도 달라지고 그것을 담는 말도 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 통합을 이뤄 간다는 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단순한 사전 편찬이 아니다. 사전 편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언론도 잘 안다. 새로운 것을 담고 부족한 것을 기우는 작업을 쉼 없이 해 나가야 한다는 걸 안다. 그 과정이 곧 평화이고, 그것을 사업회가 만들고 있다고 본다. 교류하고 소통하며 북쪽의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 더 알게 됐다. 공동회의는 남북 교류의 상징성도 지닌다. 이 회의의 결과물인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드문 협력 사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공동회의는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사전을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의 《조선 말대사전》을 기계적으로 합치지 않고
민족어의 유산을 조사해
미래지향적으로 사전을 편찬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만들기 언제 다시 시작될까
남북 관계는 더 험악해졌다. 정치적 산물일 수밖에 없는 《겨레말큰사전》의 마무리도 앞이 안 보이는 듯하다.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12월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했다. 남북 간의 대화와 협력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해 1월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다.
이 법은 “괴뢰말투를 본따는 것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는 적들의 책동에 동조하는 리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괴뢰말’은 남쪽의 말이다. 현재 남쪽을 향한 태도를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월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북은 러시아와는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을 파견하고 있다.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 현재로선 우리가 남북 관계를 주도적으로 개선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따르면 최근 조사에서 국민의 6.5%만이 올해 남북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화 없다’는 45.9%, ‘나빠질 것’은 45.6%였다. 그렇지만 남북 관계는 국제 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당장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과 북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생각보다 빨리 관계가 개선될 수도 있다.
시리아는 유엔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우리 미수교국이었다. 북과 혈맹이어서 우리와 수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에 가까웠는데, 지난 4월 11일 전격적으로 수교가 됐다. 이에 앞서 북과 형제국이라고 하던 쿠바와 우리의 수교도 2024년 2월 이뤄졌다. 길게 볼 때 남북 관계도 냉각된 채로 길게 흘러갈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다.
어느 날 갑자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남북 교류를 다시 시작하는 마중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 간 길을 내고 소통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다. 사전은 이후 언어 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공동편찬위원회 출범 20년. 지금 언론에 비치는 모습은 조금 쓸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범 초기처럼 《겨레말큰사전》 발간과 공동회의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희망, 당부 같은 말들이 아직 가득 차 있다.
공동회의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날이면 남북 학자들은 기차놀이를 했다. 재미없을 것 같은 어린이 놀이를 어른들이 했다. 그런데 그들은 어린이들처럼 웃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모두를 대신해서 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격의 눈물일 수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섞인 눈물일 수도 있었다. 뭉클했다. 울컥해지면서 나도 왠지 모를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겨레말큰사전》 만들기는 이렇게 또 단지 국어사전 하나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 울어야 할지 모른다.

이경우
미디어언어연구소 소장,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국립국어원 외래어심의위원. 서울신문 어문부장, 한국어문기자협회장,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서울신문에 사회적 이슈, 일상에서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단어를 뽑아 바른 말, 쉬운 말, 차별 없는 말 쓰기를 독려하는 <말빛발견>, <이경우의 언파만파> 등을 연재했다. 『말실수가 두려운 사람을 위한 우리말 사용법』이라는 책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