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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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조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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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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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3,710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남북 언어
: '가마치'와 '누룽지'의 추억
글 조현정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가마치는 어릴 적 나의 ‘최애’ 간식
“오늘은 가마치1) 튀겨줄까?”
“야! 신난다! 할머니, 빨리해 주세요.”
학교에서 수업 끝나고 돌아오니, 외할머니가 나를 반기며 말씀하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외할머니는 내 간식거리를 생각하신 모양이다. 나는 너무 신나 폴짝폴짝 뛰었다. 바삭한 가마치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어쩌다 기름이 생겨 튀겨 먹으면 그 맛은 일품이었다. 고소한 기름에 튀겨낸 가마치는 어릴 적 나의 ‘최애’ 간식이었다.
그 시절 사탕, 과자와 같은 간식은 충분할 리가 만무했다. 북한의 아이들이 갖가지 당과류를 먹어볼 수 있는 날은 2월 16일(김정일 생일, 1982년부터 실시)과 4월 15일(김일성 생일, 1979년부터 실시)이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전국의 7세~12세 미만 학생들은 국가에서 보내주는 1㎏에 해당하는 당과류 선물을 받았다. 12세 이상 중학생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김정은 정권이 시작되면서 1월 8일(김정은 생일, 2013년부터 실시)에도 당과류 선물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6세 이하 아이들로 대상이 축소됐다. 당과류 선물의 질도 떨어졌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2024년 북한 내 주민 소식통에 따르면, “1㎏의 당과류 생일 선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가난한 주민들은 (…중략…) 생일 선물이 아니면 어린 자식들에게 당과류를 먹일 기회조차 없다”2)라고 전할 정도로 가난한 집 아이들이 간식을 먹는 일은 여전히 호사스러운 일이다.
외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구수한 가마치
나의 학창 시절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은 공급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때라, 끼니를 굶는 집은 없었다. 다만, 아이들이 많은 집은 늘 식량이 빠듯했다. 한창 커가는 아이들의 뱃골을 든든히 채워주기에는 하루 취학아동 1인 기준 400g3)으로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식구가 많은 집 엄마들은 아이들의 밥그릇을 조금이라도 더 채워주려고 어떻게든 가마치를 만들지 않았다. 가마솥에 쌀을 안치기 전에 무채를 두껍게 깔거나, 시래기나 감자를 깔고 밥을 지어 양을 늘리려고 애썼다.
우리 집은 식구가 단출해서 무밥이나 시래기밥을 먹지 않았다. 당시 일반 노동자들은 7:3 비율(잡곡 70%, 쌀 30%)로 배급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집도 흰쌀밥은 명절이나 생일이 아니면 못 먹었다. 그나마 잡곡밥이라도 가마치는 늘 먹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침밥을 지을 때 말랑말랑한 가마치를 뭉쳐 학교 가는 내 가방에 넣어주셨다. 저녁밥을 지을 때는 가마치를 바삭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감기에 걸려 입맛을 잃어도 외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구수한 가마치를 뜨끈하게 먹으면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했다.
가마치를 모른다고?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도 죽을 먹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마치를 먹기 힘들어졌다. 동네마다 굶어 죽는 사람들도 생겼다. 무서웠다. 나는 돈을 벌어보려고 필사적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20대 후반, 우여곡절 끝에 나는 운 좋게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끼니 걱정 없이 하루 세 끼 밥을 해 먹는 일은 매우 편리해졌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맡아가면서 밥을 짓지 않아도, 전기밥솥이 윤기 좔좔 흐르는 흰 쌀밥을 척척 만들어줬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가마솥에서 만들어지는 그 가마치 맛은 전기밥솥에서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구내식당이나 일반식당 음식은 도통 입에 맞지 않았다. 대부분의 음식 맛이 너무 달고, 김치는 양념이 너무 많아 물에 씻어내 먹었고, 이것저것 반찬들을 먹어봐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내 입맛걱정해 친한 동료들이 맛집을 찾아 데리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불쑥 ‘가마치’라는 단어가 튕겨 나왔다.
“아, 가마치 너무 먹고 싶어요.” “가마치가 뭔데?”
“밥할 때 밑에 눌어붙은 걸 가마치라고 해요.” “그건 누룽지4)지. 우린 누룽지라고 해.”
옆에 앉은 언니가 정말 모른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가마치를 모른다고? 그걸 누룽지라고 부른다고?
그 뒤로 친한 동료들은 음식 메뉴에 ‘누룽지’가 있는 식당을 찾아 나를 데리고 다녔다. 무슨 엄청난 발견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가마치를 먹고 싶던 소원은 누룽지로 이루어진 듯했으나, 사실 가마솥 가마치 맛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들 덕분에 한국 음식에 적응하는 시간을 버텨냈던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대뜸 언어 문제라고 말한다.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다.
한민족이었던 남과 북, 5천 년의 역사를 공유했던
우리가 떨어져 지낸 80년의 시간만큼
문화도 달라지고 언어도 많이 달라졌다.
‘최애 간식’이 ‘특별 음식’으로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가마치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생소한 단어다. 가마치가 무엇인지 설명을 하면 금방 알아듣지만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생소해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가마치에 대한 정의는 남북한 언어 사전에 비슷하게,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사용 빈도에 따라 생소한 단어로 느껴지는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대뜸 언어 문제라고 말한다.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다. 한민족이었던 남과 북, 5천 년의 역사를 공유했던 우리가 떨어져 지낸 80년의 시간만큼 문화도 달라지고 언어도 많이 달라졌다. 가마치와 누룽지처럼 같은 음식이나 재료를 다르게 표현하기도 하고, 아예 생소한 명칭들도 참 많다.
어쨌든 지금 생각해 보니, 가마치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최애 간식’이었고, 한국에 와서는 이곳의 맛에 적응하는 시간을 버티게 해준 친한 동료들의 애정 담긴 ‘특별 음식’이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가마솥 가마치 맛을 비슷하게 만들어 파는 누룽지 가게가 있다. 나는 그 가마치가 떨어질세라 사 놓는다. 오늘 저녁에는 그 가마치를 꺼내어 아들과 함께 맛있게 튀겨 먹어야겠다. 외할머니께서 해주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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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의하면, ‘가마치’(명사)는 “솥바닥에 밥이 눌어붙은 것, 누룽지, 눌은밥”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회과학출판사, 《조선말대사전(증보판)》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17), p. 43;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가마-치’(명사)를 “눌은밥”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검색일: 2025. 3. 5.)
2)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북한 일부 주민들 “김정은은 선물 도둑”>, https://nkinfo.unikorea.go.kr/nkp/news/view.do;jsessionid=rGuyOlaJ_P_qHWWfUSOK71EQ55kRXw6Kv4Ui3-pM.ins12?menuId=MAIN_NEWS&cntntsMngNo=5429823(검색일: 2025. 3. 5.)
3)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 북한은 부양가족(300g), 미취학아동(300g), 취학아동(400g), 노동자(700g)(탄광, 광산 등 가장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는 900g)에 대한 식량배급제를 실시했다. 이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배급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지식사전』 (서울: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 연구개발과, 2021), p. 310~313.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누룽지’(명사)는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으로 정의하고 있다.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 (검색일: 2025. 3.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