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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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주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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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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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849
글 주영훈 겨레말큰사전 선임편찬원
아이가 말을 곧잘 하게 되면서 단어의 뜻을 물어보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아이의 질문은 때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갑작스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축제가 뭐야?”, “십자가가 뭐야?”하고 물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의 호기심 앞에서 나는 늘 부족함을 느끼곤 한다.
얼마 전에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동물이 폴짝 뛰어 재주를 넘는 장면을 본 아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재주가 뭐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책의 내용에 따라 “뛰어서 한 바퀴 도는 동작이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내 정확한 뜻을 찾아보려고 사전을 펼쳐보았다.
‘재주를 넘다’는 우리말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웹)에는 ‘재주’의 뜻풀이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재주를 넘다’의 의미가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웹)에 따르면, '재주'는 다음과 같이 뜻풀이되어 있다.
재주 「명사」 「1」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 「2」 어떤 일에 대처하는 방도나 꾀. |
위 뜻풀이는 주로 사람의 능력, 기술, 솜씨 등을 나타내는 의미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 풀이 가운데에는 ‘재주를 넘다’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신체적 동작이나 체조 동작으로서의 의미가 빠져 있다. 이는 언어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사전적 정의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재주를 넘다’라는 표현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 신문 기사, 방송 매체 등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아래는 이러한 용례이다.
○ 노인이 갑자기 재주를 넘어 몸을 훌러덩 바로 세운다.《홍성원: 괴질》 ○ 마짱은 내 앞에서 폴짝폴짝 뛰더니 재주까지 넘는다.《김희진: 양파의 습관》 ○ 땅을 짚고 앞으로 뒤로 재주를 넘는 살판쇠의 기예도 예사롭지 않았다.《유익서: 소리 꽃》 ○ 7살 동욱이는 휴일이면 아빠와 집에서 뛰노는 걸 좋아합니다. 소파에서 껑충껑충 뛰고 재주를 넘다 보면 위험하게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MBC: ‘아이들 머리 조심’ 뇌진탕 환자 20%가 영유아》 |
위 용례들에서 ‘재주’는 단순히 타고난 능력이나 솜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체 동작을 의미한다. 신체 동작으로서 ‘재주’의 용례를 찾다 보니, 기술적 능력이나 묘기를 뜻하는 의미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래는 그러한 용례이다.
○ 서커스단 소녀의 누워 통돌리기나 공중그네 건너뛰기 같은 재주나….《정호경: 현대의 섬》 ○ 주꾼(서커스)들은 모두 불려와서 제각기 지니고 있는 재주를 선보였다.《김혜석: 양귀비》 ○ 해화의 남편이 된 형은 어린 시절 서커스 같은 재주를 부린 대가로 이미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김연숙: 그녀들의 이야기, 신여성》 ○ 공중을 날기는 오히려 쉬운 일이요, 높이 솟은 대나무 끝에서 잔약한 팔 하나에 전신의 무게를 싣고 날으는 듯 거꾸로 머물러 있기란 도저히 못 부릴 재주였다.《정비석: 색지풍경》 |
이러한 다양한 용례들을 바탕으로 ‘재주’의 뜻풀이에 기술적 능력이나 묘기를 나타내는 뜻과 신체 동작을 나타내는 뜻을 추가하여 보았다.
재주 (才-) [명] ①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 ② 어떤 일에 대처하는 방도나 꾀. ③ 사람을 즐겁게 하려는 곡예나 묘기. ④ 《주로 ‘넘다’와 함께 쓰여》 몸을 공중으로 날려서 뛰거나 도는 동작. |
부모가 모두 대답해 주기 어려운 아이의 수많은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주변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아이의 노력일 것이다.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질문 하나하나는 세상을 향한 탐구이며, 어른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깨달음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순수한 노력은 사전을 만드는 나에게도 새로운 고민과 성찰로 이어진다. 사전 속에 담긴 뜻풀이가 얼마나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그리고 사전이라는 것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역할과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단어 하나하나의 뜻만 간략히 설명하는 사전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세상을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서 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오늘도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는 손가락들은 컴퓨터 자판 위에서 열심히 또 다른 의미의 ‘재주’를 넘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