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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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현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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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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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900
제주의 보물은 ᄃᆞᆯ코롬ᄒᆞ다
글 현택훈 시인
고망
구멍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은 고망낚시이다. 제주도 사람이지만 릴낚시를 잘 못한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고망낚시를 하다 보니 어느새 고망낚시에는 일가견이 생겼다.
고망낚시는 거창한 채비가 없어도 된다. 일단 고망낚시를 하려면 장비가 필요한데, 아주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하다. 낚시 가게에서 줄낚시 세트(보통 낚싯줄과 바늘과 뽕돌1)이 함께 있다.)와 크릴새우 미끼를 산다. 만 원이면 충분하다. 릴낚시 정도는 아니지만 기분을 내고 싶다면 초보자용 낚시를 구매하면 된다. 물론 만 원 조금 넘는 것으로. 크릴새우가 없다면 바닷가에서 보말2)을 잡아 미끼로 쓸 수도 있다.
낚시 포인트는 낚시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면 된다. 고망낚시는 갯바위가 있는 얕은 바다에서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때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지만 그래도 썰물일 때가 좀 낫다. 주인은 대개 안전하게 고망낚시를 하기 좋은 곳을 안내해 준다.
고망낚시는 말 그대로 구멍에 대고 낚시를 하기에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제주도에서 고망낚시를 하면 주로 잡히는 어종은 거의 정해져 있다. 조수 간만의 차로 말미암아 해안가에 붙은 갯바위 고망 트멍3)에 머물러 있는 물고기들이 주로 잡힌다. 우럭, 볼락, 어렝이4), 보들락5) 따위이다. 간혹 메역치6)가 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물고기는 등지느러미 부위에 독이 있기에 잡는 즉시 바로 풀어주는 게 상책이다. 최근에 제주 바다는 수온이 높아지면서 열대어인 범돔이 잡히기도 한다.

고망낚시는 갯바위에서 하기에 현무암 돌 틈에 잘 걸린다. 그러면 낚싯줄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 가위가 필요하다. 가장 어려운 점은 잡은 물고기의 아가리에 끼어 있는 바늘을 빼내는 게 너무 고역이다. 돌려서 빼야 하는데, 장갑은 반드시 껴야 한다.
간혹 방파제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에서 낚시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그곳 틈에 빠지면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또 주의할 점은 제주도 갯바위는 현무암이라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부분이 많고, 비에 젖거나 해조류 같은 것이 껴있으면 무척 미끄럽기 때문에 멩심해야7) 한다.
고망낚시의 묘미는 안 잡힐 것 같은 장소이면서 꽤 잘 잡혀 신날 수 있어서 재미있다는 점이다. 잡은 물고기는 내장을 빼고 손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동하더라도 썩는다.
제주시 조천에는 새콧할망당(일명 고망할망당)이 있는데, 그곳에는 뱀이 구멍 속으로 들어가 좌정을 하였다. 현기영의 소설 『제주도우다』에도 새콧할망당이 언급되었다. 땅에 구멍 하나 있는 거라서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곳인데, 제주도 설화를 품고 있는 섬이라는 것을 감춘 듯 보여주는 곳이 그곳이다. 낚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주도에는 전설의 돗돔이 전해온다. 실제 돗돔은 심해어로 깊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기 때 잠시 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지난 겨울에 우도와 구좌읍 행원리 사이 바다에서 몸길이 180cm가 넘는 돗돔이 잡혔다. 한 시간의 사투 끝에 잡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었겠다.
오멸의 영화 <뽕돌>(2011)은 전설의 돗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 영화에서 나름 명대사가 나온다. 배우를 하기 위해 제주도까지 온 인물이 감독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영화가 무엇이냐고. 그러자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자파리”. 자파리는 제주어로 “장난, 소일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오멸 감독이 차린 영화사도 ‘자파리 필름’이다. 영화에서 필름도 없는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것은 예술에 대한 감독의 사상을 보여준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자는 것.
낚시 역시 과정에서 즐거움이 있다. 종일 바닷가에 앉아 있어도 한 마리도 낚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그날 하루가 헛된 날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채비를 하고, 기대를 하고, 수면을 바라보며 옛 생각도 떠올리고, 낚싯바늘이 갯바위에 엉켜 낑낑대며 풀어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다 의미가 있는 법이다.
산탈
산딸기
제주도에서는 딸기를 탈이라 부른다. 뱀딸기는 베염탈이나 게염지탈 등으로 부르고, 산딸기는 산탈 혹은 그냥 탈이라 부른다. 뱀딸기는 이름 때문에 뱀이 먹는 딸기라 여겼으나, 실제는 뱀딸기 있는 풀섶에 뱀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제주도를 흔히 보물섬이라 부른다. 천혜의 자연을 갖고 있기에 활용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 제주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는 보물 지도가 있을 것이다. 제주테크노파크 생물종다양성연구소에 서 낸 책 『제주섬의 보물지도』(한그루, 2018)에는 제주의 보물들로 곶자왈과 람사르 습지에 사는 제주의 멸종위기종 등을 호명한다. ‘바람을 이용하여 제주에 밀입국하는 곤충들’, ‘여름잠을 자는 홍해삼’, ‘똥낭(돈나무)으로 곰팡이 잡기’ 등이 흥미롭다. 심지어 ‘제주산 옥돔과 가짜 옥돔 구별하기’나 ‘몸국으로 다이어트 하기’도 있다.
일곱 살 아이와 산딸기를 찾아 돌아다녔다. 산딸기를 만나면 반가워 사진을 찍어두었다. 산딸기는 해마다 그 자리에서 나니까 이듬해에 다시 찾아오자고 아이와 말했다. 그러려면 지도가 있어야 하니 ‘산딸기 지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저기 산딸기 있다.”
아이가 용케 발견하고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뻐했다. 나는 지도를 펼쳐 표시해 두었다. 이건 비밀인데, 몇 곳만 말하면, 별도봉 장수산책로에서 애기업은돌 가는 길가 풀섶, 화북 환해장성 바닷가 산책로에서 한라산 쪽 길가 풀섶, 서귀포 서호동 고근산 입구에서 시멘트길 따라가다 보면 개 짖는 소리 나는 곳 부근, 호근동 호근남로5번길, 서호초등학교 부근 철망 틈, 동홍분식에서 남주고등학교 가는 길로 가다가 오래된 감귤창고 직전 골목길 등.
이렇게 온 섬을 다니면서 산딸기 지도를 표시하면 그야말로 보물지도 아니겠는가. 아이와 나는 이듬해 봄에는 산딸기를 모아 잼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참지 못해 입에 다 털어 넣어 버릴지도 모르지만. 제주의 보물은 ᄃᆞᆯ코롬ᄒᆞ다9).
2)‘보말고둥’의 제주 방언.
3)‘틈’의 제주 방언.
4) ‘어렝놀래기’의 제주 방언.
5) ‘베도라치’의 제주 방언.
6) ‘미역치’의 제주 방언.
7) ‘명심하다’의 제주 방언. 제주에서 ‘멩심ᄒᆞ다’로도 적는다.
8) ‘상동나무’의 제주 방언.
9) '달콤하다'의 제주 방언.

현택훈
시인. 1974년 제주에서 태어나 2007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마음에 드는 글씨』, 동시집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 산문집 『제주어 마음사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