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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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변영수,이윤경,임보선,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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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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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597
오월, 봄 그리고 '꽃편지'
글 변영수 겨레말큰사전 편찬실장 직무대리
햇살이 민들레 꽃씨처럼 흩날리는 오월이다. 별이 내려앉은 것처럼 황홀하게 피어오른 장미, 그 사이로 보이는 수줍은 표정의 이팝나무와 온갖 들꽃이 만화방창이다. 세상의 모퉁이를 돌며 닿는 곳곳 안부를 전하는 봄바람도 애틋한데, 계절의 한복판으로 소용돌이치는 오월은, 실로 꽃의 미로가 아닐까 싶다.
꽃의 ‘미로’를 걷다 보면 사람들이 홀로 멈춰 자신에게 골몰하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아마도 누군가를 향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기대에 부풀어 만나 사랑하거나 잠시 헤어져서는 그리워하며 어쩌면 이 고백이 끝일까 싶어 마음을 졸이는 그런 얼굴이다.
보통 단어에 ‘꽃’이 붙으면 상당히 부드러워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잘 쓰는 ‘꽃길’만 해도 그렇다. 특히 ‘편지’와 이어지면 그 뜻은 한층 더 깊고 분명해진다. ‘꽃편지’는 남한에는 그 용례가 많지 않지만, 연변에서는 여러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연인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사랑의 내용이 담긴 연애편지를 뜻하며 ‘사랑의 꽃편지’와 같은 형태로 쓰인다.
남과 북이 만나 공동회의를 개최한 지 올해로 20주년이다. 오월에, 북과 공동회의가 재개될 수 있다는 ‘꽃편지’를 받고 싶다.
개나리꽃나무
글 이윤경 겨레말큰사전 책임편찬원
보통 3월이 되면 겨우내 가지 끝에 달려 있는 꽃눈이 벌어지며 목련꽃이 핀다. 다음으로 피는 꽃이 우리나라 토박이 식물 개나리이다. 개나리는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노란색의 꽃이 핀다. 잎이 나기 전에 노란 꽃을 피우는 봄철의 나무는 산수유나무나 생강나무의 꽃이 있지만 화사하고 모양이 아름다워 ‘봄의 별’이라고 불리는 개나리꽃이 단연 으뜸이다.
남북의 사전에서는 ‘개나리’가 모두 실려 있지만 그 쓰임의 빈도가 서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남에서는 ‘개나리’와 ‘개나리꽃’을 주로 쓰는데 북에서는 ‘개나리’보다 ‘개나리꽃나무’를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개나리’ 는 꽃잎에 거무스름한 점이 있는 ‘나리’의 꽃을 이른다. 남에서도 북과 같은 ‘개나리’가 같은 의미로 사전에 실려 있으나 일반적인 쓰임의 빈도는 남측의 화자가 흔히 쓰는 ‘개나리’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개나리꽃나무’에 핀 노란 개나리꽃을 볼 수 있듯이 경색된 남북의 만남에도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기를 바라고 있다. 남과 북이 서로 만나 ‘개나리’와 ‘개나리꽃나무’를 이야기하는 봄날을 기대해 본다.
꽃샘잎샘

글 임보선 겨레말큰사전 편찬전문위원
입춘, 우수가 지나고 경칩에 이르면 산과 들에는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의 꽃,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나 벌레들이 깨어 꿈틀거린다. 바야흐로 봄이 찾아온 것이다.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순조롭게 꽃과 나무, 개구리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할 때 어김없이 봄을 시샘하는 시련, ‘꽃샘추위’(이른 봄, 꽃이 필 무렵의 추위)가 찾아온다.
‘꽃샘추위’와 유사하나 덜 알려진 우리말로 ‘잎샘추위’(이른 봄, 잎이 나올 무렵의 추위)가 있다. 그리고 ‘꽃샘’과 ‘잎샘’을 합친 말인 ‘꽃샘잎샘’(이른 봄, 꽃이 피고 잎이 나올 무렵의 추위)도 있다. ‘꽃샘(추위)’, ‘잎샘(추위)’, ‘꽃샘잎샘’은 어쩌면 봄에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달갑지 않은 불청객일 것이다. 그러나 봄이 약동할 수 있는 것은 이 손님들에 의하여 시련을 겪기 때문이 아닐까.
‘꽃샘잎샘’을 선정한 이유는 우리에게 덜 알려진 아름다운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우리말이라도 언중에게 더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련이 찾아왔을 때 ‘꽃샘잎샘’을 이겨내고 활짝 피는 꽃과 우거지는 나뭇잎을 떠올리며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살면서 우리에게 여러 시련이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련을 극복해 나간다. 그러면서 단단해진다.
아름차다

글 최성규 겨레말큰사전 선임편찬원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단어는 ‘아름차다’이다. 사전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웹)
아름차다 [형용사] ① 힘에 겹다. ② 어떤 일을 한 뒤에 결과가 몹시 좋아서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을 갖게 할 만큼 만족스럽다. =보람차다.
《조선말대사전》(2017)
아름차다 [형] ① 팔을 벌려 껴안았을 때 두팔안에 가득하다. (중략…) ② (맡겨지거나 차례지는 임무나 과업 등이) 힘에 겹다 ∥ 아름찬 임무. ③ 차례지거나 받아안는것이 너무 과분하거나 벅차다. ∥ 아름찬 행복.
아마도 남녘에서는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북녘에서는 흔히 쓰는 말로 사전을 기준으로 하면 남북 공통의 단어이지만, 실제 언어 현실에서는 거의 북녘말에 가까운 셈이다. 이처럼 남녘말인지 북녘말인지 경계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더러 있다.
이 단어의 뜻에는 긍정과 부정이 함께 들어있다. 무언가가 가득한 상태를 뜻한다는 점은 공통인데, 긍정이 가득하면 보람차다는 뜻이 되고, 부정이 가득하면 힘겹다는 뜻이 된다. 남녘에서 흔히 쓰는 ‘벅차다’가 이와 비슷하게 두 가지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앞뒤 흐름을 잘 살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아름차다’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속 느낌과 멀지 않은 것 같다. 북녘의 말을 사전에 담아내는 일은 당연히 ‘보람찬’ 일이지만, 풍파 많은 남북 관계 속에서 방대한 사전 작업을 실제 하다 보면 ‘힘겨운’ 느낌을 받을 때가 생긴다. 그래도 힘겨움을 견디고 이루어질 《겨레말큰사전》이 보람찬 결과가 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