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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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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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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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481
[겨레의 창]
사회문화교류로 남북 관계 재구성해야
글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우리 문화 콘텐츠가 어우러져 세계인의 공감을 사고 있다. 김구 선생님이 꿈꿨던 문화강국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그런데 갑자기 ‘케데헌’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마음을 잇는 사회문화의 힘, 남북 관계에도 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얼어붙어 있던 남북 관계가 아주 ‘조금씩’ 녹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긴장 완화를 위한 남측의 선조치에 북한이 소리 없이 응답한 결과이다. 대남, 대북 방송으로 일상을 빼앗겼던 접경지역 주민들은 다시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새로운 남북 관계를 설계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하는 길은 여전히 멀어만 보인다.
비상계엄의 상흔과 새 정부의 출범
지난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은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자유민주주의’를 스스로 파괴한 폭거였다. 그뿐만 아니라 내란 세력은 한반도 분단 체제의 약한 고리를 이용해 내란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 군사정권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일이 2020년대에 발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려 했던 반헌법적 폭거는 우리 국민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날부터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으며 윤석열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도 흔들림 없이 헌정질서를 유지했다. 늘 반짝이는 야광봉과 함께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계엄과 탄핵정국을 이겨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반도 평화와 한 몸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재명 정부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남북 대결로 점철된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고 새로운 남북 관계를 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조금씩 접경지역의 긴장이 해소되고 있다. 여전히 공식적인 대화나 소통은 없지만, 우리 정부의 조치에 북한이 호응하는 조용한 상호 조응이 이뤄지고 있다. 계엄 이전까지 고조됐던 긴장 상황을 생각하면 위기 상황은 넘겼다는 안도감마저 든다. 이제 새 정부가 어떤 남북 관계를 만들어갈지 고민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다.
이재명 정부의 새로운 남북 관계 구상
지난 8월 15일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 80주년 경축사를 통해 “공리공영·유무상통 원칙에 따라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교류 협력 기반 회복과 공동 성장 여건 마련”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대립과 적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함께 열자며 북측의 화답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8월 13일 국정기획위원회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 중 남북 관계와 관련한 부분을 정리해 보자. 국정기획위원회는 ‘평화 공존과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5대 국정과제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평화 공존과 번영의 한반도
1. 화해·협력의 남북 관계 재정립 및 평화 공존 제도화2. 국민이 공감하는 호혜적 남북교류협력 추진
3. 분단 고통 해소와 인도적 문제 해결
4. 국민과 함께하는 한반도 평화·통일정책 추진
5. 한반도 평화 경제 및 공동 성장의 미래 준비
정동영 통일부 장관 또한 취임식에서 새로운 남북 관계 구상을 위한 세 가지 과제, 즉 남북의 평화 공존, 평화 경제와 공동 성장, 그리고 국민주권의 대북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구상하는 새로운 남북 관계의 핵심 키워드는 남북 간 ‘신뢰 회복’과 ‘평화 공존’, 그리고 ‘공동 성장’을 위한 ‘국민주권’의 대북 정책 추진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의 남북 관계 구상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냉랭하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남북 관계에서 통일부의 조치가 눈에 띈다. 지난 7월 31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해 온 북한 주민 접촉 지침을 폐기하고 북한 주민 접촉을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정동영 장관은 “우리 국민들이 북한 주민들과의 자유로운 접촉을 통해 상호 이해를 낳고, 이해가 상호 공존으로 이어지는 것인 만큼 북한 주민 접촉 전면 허용 조치에는 정부의 철학이 담겨 있다.”라고 강조했다. 남북 당국 간 불신의 골이 큰 상황에서 민간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해주길 바란 것으로 읽힌다.
“정치도, 경제도, 남북에 놓인 마음의 거리를 줄여주지 못했다.
이제 통일은 당위가 아니며 우리 미래세대는 통일을 부정적인 미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남북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문화교류를 중심으로 남북 관계를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문화교류 중심으로 남북 관계 복원하자
여전히 남북 관계는 냉랭하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먼저 지금 남북 관계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제대로 평가하고 그에 맞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정치와 경제가 주도해 왔다.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남북의 정권이 바뀌는 부침 속에 정치협상이 남북 관계를 규정해 왔다. 다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제협력이 진전되면서 한반도 경제공동체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정치도, 경제도, 남북에 놓인 마음의 거리를 줄여주지 못했다. 이제 통일은 당위가 아니며 우리 미래세대는 통일을 부정적인 미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남북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문화교류를 중심으로 남북 관계를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문화교류는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할 때 앞장서는 이벤트처럼 다뤄져 왔다. 하지만 새로운 남북 관계는 남북 간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남북의 동질성을 조심스럽게 다시 찾아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새 정부의 남북 관계 구상에서 사회문화교류가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안정적으로 꾸준히 진행될 수 있는 핵심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다시 겨레의 말과 마음을 이어줄 겨레말큰사전
남북의 사회문화교류는 남북의 불신과 갈라진 마음을 잇는 진정한 통일 과업이다. 그 중심에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자리 잡고 있다. 《겨레말큰사전》은 “민족의 언어 유산을 집대성하고 남북의 언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통일국어사전’ 편찬에 합의하며 출발했다.
그 후 15년이 지난 2004년이 돼서야 남북은 ‘사전편찬의향서’를 체결했고 2005년 2월 금강산에서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함으로써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우리 국회 또한 2007년 4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을 제정하고 남북 관계의 부침 속에서도 사업 기간을 연장하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을 지켜왔다.
남과 북은 2005년 2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제1차 공동회의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총 25회 공동회의를 개최했고 《겨레말큰사전》에 수록될 올림말 30만 7,000개(기존어휘 23만 개+새어휘 7만 7,000개)의 선별을 완료했다. 다만 남북 관계가 경색된 이후 지금까지 제26차 공동회의가 열리지 못한 상태에서 남북의 개별 작업만 진행되며 사전 편찬을 마무리하지 못한 실정이다.
다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닫힌 남북의 마음을 연결하고 새로운 남북 관계를 여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관련 법제 정비 또한 병행될 필요가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된 이후에는 겨레말 보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사업회를 정부가 출자하는 재단의 형태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멋진 정치 회담도, 경제특구도, 남북의 마음이 돌아선 상태에선 무용지물일 뿐이다. 남북의 마음을 잇고 서로 동질성을 찾아가는 노력이 지속될 때, 남북이 한 방향으로, 한마음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다시 겨레의 말과 마음을 이어주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