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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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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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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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693
▶▶[기획특집] 언어의 신세계▶▶
[칼럼3]
요즘 말을 이해하는
두 가지 패턴
글 정유라 트렌드 연구원
사람들이 모이면 새로운 언어가 생긴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의 소셜미디어에 남겨진 말들을 데이터로 분석해 오면서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반드시 새로운 언어가 생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는 실험장이며, 신조어는 그 시대의 생활감과 사고방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 햄스터 카페, 쿠팡 아르바이트 갤러리, 트레일 러닝, 비밀독서 결사단…. ‘이런 주제로도 모인다고?’ 싶을 만큼 다양한 소모임들이 온라인상에 둥지를 틀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핵심은 ‘소통’. 그 커뮤니티 안에서 가족이나 친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나눈다. 물과 바람, 햇빛이 있는 곳에서 어김없이 생명이 자라나는 것처럼 대화가 이어지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말이 자라난다. 유행어 혹은 신조어라고 불리는 말들이 계속 등장한다. 모르는 단어가 자꾸 생겨난다.
한 커뮤니티의 ‘뷰티’ 게시판에 들어가 제목들을 읽어보자. “화알못 수부지의 원픽 메베”. 한글로 쓰여 있지만 한 단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건 뷰티 커뮤니티에 익숙한 사람끼리 오랜 시간 쌓아온 언어의 약속이니까. 화장품을 만들고 파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 나오는 어휘를 모른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렇지만 ‘화알못’-화장을 알지 못하는 사람-만 제대로 이해해도 요즘 말의 흐름을 읽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
신조어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그곳에는 지금 사람들의 취향, 불만,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언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모든 신조어를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는 몇 가지 규칙만 알아도 모르는 말을 만나 당황하기보다, 그 뜻과 그 시대의 공기를 함께 짐작할 수 있다. 오랜 분석 끝에 내가 발견한 패턴은 두 가지다. 줄임말과 접사. 이 두 가지 문법을 알면 ‘요즘 말’ 속 ‘요즘 감성’이 훨씬 선명하게 읽힌다.
“우리가 무언가를 줄여 부르는 것은 경제성을 위한 언어적 본능이다.
무언가를 줄여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언어가 우리에게 익숙하고 중요하다는 뜻이다.
… 줄임말은 '친숙함'의 언어다. 익숙하니까 자주 부르고 자주 부르다 보니 줄이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패턴: 애정이 담기거나, 일상이 담기거나 ‘줄임말’
‘줄임말’은 다소 억울한 누명과 사투 중이다. 별걸 다 줄인다, 국어를 파괴한다, 소통을 저해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잠깐, 우리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자. ‘수학능력시험’을 ‘수능’이라고 줄인다고 해서, ‘기획재정부’를 '기재부'라고 줄여 부른다고 해서 국어가 파괴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언가를 줄여 부르는 것은 경제성을 위한 언어적 본능이다. 무언가를 줄여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언어가 우리에게 익숙하고 중요하다는 뜻이다. '스타벅스'를 ‘스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스타벅스가 대한민국에서 그만큼 친숙한 카페 브랜드이기 때문이지, 낯선 브랜드를 대뜸 줄여 부르지는 않는다. 줄임말은 ‘친숙함’의 언어다. 익숙하니까 자주 부르고 자주 부르다 보니 줄이게 되는 것이다.
스타벅스 같은 고유명사 말고도 숙어처럼 줄여 부르는 말도 있다. 앞서 언급한 ‘화알못’, ‘화잘알’을 다시 톺아보자. 내가 그 분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수준’을 밝히는 언어가 어쩌다 줄임말이 되었을까? 무언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숙어처럼 사용하게 된 배경에 이유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가 누구인지 모른 채 이야기를 나누는 가상의 공간이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전혀 알 수 없고 그들의 지식과 정보의 수준 역시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준을 미리 밝히면서 최적화된 정보를 구하는 일이 소통의 습관이 될 정도로 익숙한 일이다. ‘화알못’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구하는 ‘일상성’이 녹아 있는 줄임말이다. 즉 줄임말은 자주 부를 만큼 친숙한 ‘애정’과, ‘일상성’이 녹아 있는 언어 지표다.
최근의 일상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줄임말 두 가지, ‘감다살’과 ‘느좋’을 소개하고 싶다. 흥행하는 콘텐츠의 댓글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제작진 감다살이네, 이걸 만들다니.” 인기 있는 스타의 사진 밑에도 이런 댓글이 꼭 달린다. “느좋 그 자체.” '감다살'은 ‘감이 다 살아 있다.’라는 뜻, ‘느좋’은 ‘느낌이 좋다.’는 뜻이다. “제작진이 일을 잘한다.”라는 말보다 ‘감다살’을, “정말 예쁘다.”보다 ‘느좋’을 외치는 이유는 뭘까? 둘 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흔한 숙어다. 도대체 왜 줄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이 그걸 줄여 부를 만큼 많이 언급한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이들의 공통점은 ‘감’과 ‘느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AI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오늘날, 챗지피티(ChatGPT) 유료 구독자가 전 세계 2위인 대한민국에서, 왜 요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감’과 ‘느낌’을 찾고 있을까? 논리의 영역에서 인간이 AI를 따를 수 없는 시대에선 개인의 감각과 느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얼마나 기민하게 시대에 협응하는 ‘감’을 가졌는지, 자신만의 ‘느낌’을 발산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 것이다. ‘감다살’, ‘느좋’과 같은 신조어는, 인공지능이 일상과 사고를 잠식하는 우리 사회에서 ‘감각’의 중요성을 외친다. 자신만의 감각을 벼리고, 정서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것이 능력임을 암시한다. 해괴한 줄임말처럼 보이는 말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배울 점이 있다.
“맥락과 경험이 켜켜이 쌓인 ‘감’.
누군가의 표정, 말투, 분위기에서만 포착되는 이 고유하고 독보적인 ‘감’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요즘 말’에 녹아 있다.
그래서 요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시대를 읽는 훈련이다.”
두 번째 패턴: 언어의 변주, 접사의 활용
누군가가 나에게 “요즘 트렌드를 어떻게 읽을 수 있어?”라고 물어보면 나는 유행하는 말들의 접두사와 접미사를 보라 말한다. 다시 한번 ‘화알못’을 떠올려보자. ‘화알못’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요리를 모르는 사람은 ‘요알못’,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은 ‘술알못’이라 말한다. 그런가 하면 ‘화잘알(화장을 잘 아는 사람)’이나,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이란 말도 많이 쓴다. ‘화잘알’과 ‘맛잘알’은 ‘안다’라는 말을 가운데 두고 접두사와 접미사를 모두 바꾸면서 언어를 확장한다. 특정 접사가 다양한 언어로 활용되는 경우에 주목하자. ‘1인 가구’와 ‘개인화’가 화두였던 때에는 ‘혼밥’, ‘혼영’, ‘혼공’ 같은 단어들이 ‘혼’을 중심으로 활발히 확장했다. 여가의 중요성이 커지던 시대에는 ‘호캉스’, ‘집캉스’, ‘몰캉스’와 같은 말들이 생겨났다. ‘어떤 단어’가 요즘 제일 활발하게 확장되느냐가 지금 우리 시대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요즘 제일 활발하게 확장하는 ‘접사’는 ‘꾸’다. 우리는 지금 ‘꾸미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가방을 유심히 살펴보자. 열 개 중 적어도 다섯 개에는 인형이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걸 ‘백꾸’라고 한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서 시작된 ‘꾸미기’의 진화는 '폰꾸(휴대폰 꾸미기)'에서, ‘신꾸(신발 꾸미기)'에서 더 확장되어 '백꾸'로 번졌고, 모두의 가방에 인형 친구를 매달아줬다. '다꾸'의 핵심은 ‘다이어리’가 아니라 ‘꾸미기’이다. ‘꾸’는 기성품에 개인의 취향을 더하며 ‘나다움’을 추구하는 요즘 트렌드를 선명히 보여준다.
2025년 말의 트렌드: 나만의 감을 추구하는 언어
신조어를 이해하면 요즘 말에 담긴 시대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한국 신조어에서 느껴지는 최근의 흐름은 ‘나만의 감’을 전면에 세운 말들이 많다는 것이다. ‘감다살’, ‘느좋’ 같은 표현은 순간의 감각을 압축해 전한다. 이 짧은 단어들은 정보보다 인상을, 논리보다 느낌을 먼저 주고받는 우리 일상을 보여준다. ‘꾸밈’은 자신의 관점과 취향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요즘 하는 말에서 AI 시대 속 인간의 경쟁력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측 불가하고, 수치화할 수 없으며, 맥락과 경험이 켜켜이 쌓인 ‘감’. 누군가의 표정, 말투, 분위기에서만 포착되는 이 고유하고 독보적인 ‘감’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요즘 말’에 녹아 있다. 그래서 요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시대를 읽는 훈련이다. 신조어는 금세 사라질 유행어나, 우리말을 훼손하는 흠집이 아니라, 동시대의 맥박이 압축된 기록물이다. 이런 언어의 변화를 주의 깊게 포착하는 습관은 ‘지금’을 정확히 사는 방법이면서 다른 세대와 시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처음, 이 글에서 소환한 ‘화알못’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 말이 등장한 맥락과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앞으로 새로운 단어를 마주했을 때 “왜 저런 말을 할까?”라고 밀어내지 않고 “왜 지금 이런 말을 할까?”를 먼저 묻게 된다. 바로 그 질문에서, 변화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력이 자란다. 그리고 그 이해심이야말로, 시대와 멀어지지 않는 가장 인간적인 ‘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