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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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오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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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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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1,259
[남녘말 북녘말]
남북의 사자성어와 속담
글 오영철 굿파머스 연구위원
한민족이, 한반도가 분단된 지 80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옛말처럼 남북의 분단이 길어지면서 체제가 다른 남북은 언어 표현에서 차이가 생겼다. 과거에는 각 지역마다 방언과 사투리가 있었고 일부 발음이나 억양의 차이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남과 북이 비슷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1960년대 이후 북한이 ‘조선어를 발전시킨다.’라는 명분을 내걸고 적극 추진한 ‘우리말 다듬기’로 인해 더욱 남북 언어 차이가 생겼다. 특히 남북의 어문규범에서 두음법칙이나 사이시옷 등 표기법이 달라지면서 언어 차이가 더 두드러졌다.

사자성구와 사자성어
나는 KBS 1TV에서 방영하는 <우리말 겨루기>를 즐겨 본다. 매번 출연자와 같은 심정으로 마음을 졸이며 정답을 맞히려 애쓴다. 하지만 달인 문제는 고사하고 초반에 나오는 문제조차 정답을 절반 정도도 맞혀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것도 있지만, 제시되는 문제의 수준이 높은 데다 남과 북에서 사용하는 언어 표현이 다른 것이 큰 이유이다. 특히 잘 맞히지 못하는 문제는 주로 사자성어와 속담이다.
북한에서는 사자성어를 ‘사자성구’라고 한다. <우리말 겨루기>를 보면 사자성어 문제가 꼭 나온다. 북한은 외래어 사용을 권장하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은 사자성어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주 쓰는 사자성어들이 북한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것이 많아 놀랄 때가 있다. 최근 방영된 <우리말 겨루기>에는 '칠전팔기(七顚八起), 이열치열(以熱治熱), 기호지세(騎虎之勢)' 등의 사자성어가 제시됐다. 여러 번 실패하여도 굴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노력함을 이르는 ‘칠전팔기’,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열이 날 때 땀을 낸다든지, 뜨거운 음식을 먹어 더위를 이긴다는 의미의 ‘이열치열’, 한번 시작한 일을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기호지세’ 등의 사자성어가 한국에서는 익숙할 것이다. 모두 일상에서 흔히 겪는 상황을 빗댄 표현이어서 한 번만 들어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머리에 새겨진다.
나는 북한에서 '칠전팔기, 이열치열, 기호지세'라는 사자성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낯선 사자성어를 접하게 되면 바로 핸드폰으로 뜻풀이를 검색해 본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환경에서 강자만 살아남는다는 의미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이나 인생 혹은 사물의 번성함과 쇠락함이 서로 바뀐다는 의미의 '영고성쇠(榮枯盛衰)', 끝을 잘 마무리하는 아름다움을 일컫는 ‘유종지미(有終之美)’, 여우가 범의 위세를 빌려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 등을 비롯해 '역지사지(易地思之), 결자해지(結者解之), 다다익선(多多益善), 유비무환(有備無患), 군계일학(群鷄一鶴), 인과응보(因果應報)' 등도 한국에 와서 처음 들어보았다. 비록 낯설고 생소한 사자성어이지만 몇 번 곱씹으면 그 내용이 저절로 이해돼 머리를 끄덕이게 했다.
북한에서 주로 쓰는, 사자성어의 외형을 갖춘 단어들이 있다. '백두혈통, 강성대국, 주체사상, 자력자강, 일심단결, 필승불패, 자력갱생, 계급투쟁, 혁명전통, 무상치료' 등을 꼽을 수 있다. 하나같이 북한이 체제 유지와 선전을 위해 사상과 이념, 당국의 정책과 주장을 반영한 용어, 구호들이다.
물론 남과 북이 같이 쓰는 사자성어도 많다. '일석이조(一石二鳥), 이구동성(異口同聲), 호언장담(豪言壯談), 문전성시(門前成市), 견물생심(見物生心), 표리부동(表裏不同), 허장성세(虛張聲勢), 천생연분(天生緣分), 팔방미인(八方美人), 풍전등화(風前燈火), 어부지리(漁父之利), 속수무책(束手無策), 동고동락(同苦同樂), 사필귀정(事必歸正), 희로애락(喜怒哀樂), 근검절약(勤儉節約), 자업자득(自業自得), 오리무중(五里霧中), 화룡점정(畵龍點睛)'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사자성어는 인간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와 교훈, 도덕적·윤리적 가치 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중 ‘속수무책’은 경제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한 북한 주민이 일상에서 자주 입에 올렸던 하소연의 대명사였다.
속담에 담긴 인생의 지혜와 진리
북한 주민의 일상적인 대화를 비롯해 교과서, 영화, 도서 등에서도 속담이 자주 등장한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 온 속담은 인생의 지혜와 진리가 담겨있다. 우리는 속담을 통해 세상의 이치나 올바른 길을 배우고 잘못된 인식과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남북이 같은 속담도 많다. 예를 들어 ‘티끌 모아 태산’, ‘수박 겉 핥기’, ‘꿩 대신 닭’, ‘백문이 불여일견’, ‘등잔 밑이 어둡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불깃 봐 가며 발 편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 ‘남의 일은 오뉴월에도 손이 시리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꿩 먹고 알 먹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등이 있다.
또한 속담의 단어나 표현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잉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자루 속의 송곳은 빠져나오기 마련이다’라는 속담은 북한에서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 ‘자루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라고 표현한다. ‘잉어’는 ‘숭어’로, ‘고개’는 ‘머리’로, ‘빠져나오기 마련이다’는 ‘감출 수 없다’로 다르게 쓰는 셈이다. 경제난 이후 북한에서 미래가 없는 사회와 현실을 풍자하는 ‘현대판 속담’도 등장했다. 이를테면 ‘가는 말이 고우면 만만하게 본다’, ‘젊어서 고생은 인생 팔자다’ 등이다.
지난 7월 초 <우리말 겨루기>를 시청하는데 ‘평생소원이 누룽지’라는 속담이 나왔다. 기껏 요구하는 것이 너무 하찮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이날은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 동생과 같이 <우리말 겨루기> 정답을 맞히기로 했다. 그런데 속담을 듣는 순간 둘 다 놀랐다.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형, 고향(북한)에 살 때 저 속담을 들어본 적 있어요? 처음 듣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답을 맞히고 싶은 열정이 순간 식어버렸다.
세월이 약이다
동생은 한국에 와 정착하기 시작할 때 남한 친구들이 북한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를 산 적도 있다고 했다. 동생은 한국에서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한국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밤새 위장염을 앓았던 친구의 얼굴이 핼쑥해 마음이 아팠던 동생은 “너 왜 이렇게 얼굴이 못쓰게 됐냐? 밤새 정말 힘들었겠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친구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고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동생은 한국에선 아픈 사람을 위로할 때 얼굴이 '못쓰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번은 한국에서 만난 지인들과 KBS 1TV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남북의 언어 표현을 즐겁게 비교했던 적이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을 먹는 어린 말에게 은밀히 접근하는 사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줄말아! 빨리 도망쳐!”라고 소리쳤다. 함께 있던 지인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지인이 “줄말이라니! 북에서는 ‘얼룩말’을 ‘줄말’이라고 해?”라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한 친구는 털에 얼룩얼룩한 무늬가 아니라 검은 줄이 쭉쭉 간 게 ‘얼룩말’보다는 ‘줄말’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치파라솔'을 의미하는 북의 표현인 ‘오색 큰 양산’도 화제가 됐는데 모두가 ‘오색 큰 양산’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반응했다. 이날 우리는 좀 투박하지만 북한의 직설적인 표현과 용어가 더 쉽고 정확한 면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은 외래어 대부분을 우리말로 순화해 사용한다.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정착 초기에 외래어 때문에 애를 먹는다. 탈북민들은 외국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해 외래어가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다’라고 했듯 한국에서 몇 년 살다 보니 일상에서 외래어를 자주 접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외래어를 쓰게 됐다. 한국에 입국해 받았던 사회 정착 교육 과정에 컴퓨터 교육 시간이 있었다. 간단한 작동 방법과 함께 타자 연습을 하는데 컴퓨터 키보드 글자판 위치가 남과 북이 달라 힘들었던 적이 있다. 자연스레 북한에서 사용하던 키보드 글자 위치에 손이 가서 타자 속도가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정도 부지런히 연습하니 한국의 글자 위치에 익숙해졌다. 시간이 더 흐르니 북한에서 오래 사용했던 키보드의 글자판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탈북민들이 낯선 외래어에 익숙해지고 북한에서 사용했던 키보드 글자판을 기억하지 못하듯 남북 언어의 표현 차이가 있어도 통일이 되어 함께 살다 보면, 그 차이를 좁히는 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오영철
굿파머스 연구위원. 1966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2014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