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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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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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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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594
[우리말 보물찾기]
사람을 어떻게 보고
글 안상학 시인
텀털이
초등학교 다닐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텀털이',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 아니다. 대체로 야무지지 못하고 덤벙거리는 내 행동거지가 못마땅할 때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코흘리개’를 안동서는 ‘코찔찔이’라고 한다. 코를 늘 달고 산다. 내가 그랬다. 듣자 하니 유년시절을 안동에서 보낸 이재명 대통령도 초등학교 다닐 때 코를 많이 흘렸다고 한다. 코를 훔치는 방법이 여럿 있을 텐데 하필이면 나와 같은 방법을 썼다는 기사를 봤다. 바로 코를 옷소매로 닦는 방법이다. 당연히 소매가 반들반들. 그러나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소매로 닦은 코를 겨드랑이에 가져가서 한 번 더 닦았다. 보이는 소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겨드랑이까지 반들반들했다. 며칠 더 입으면 새까만 윤기가 더해졌다. 그쯤 되면 딱딱해져서 더 이상 코를 닦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면 긁히기 십상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텀털이’라고 불렀다. 아니, 놀려댔다.
형제끼리 신발을 사도 내 신발이 먼저 떨어졌다. 형은 그런 나를 또 ‘텀털이’라고 부르며 꿀밤을 먹였다.
진물
'진상'은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진물'은 다르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빈구석이 있고 놀기 좋아하며 밉지 않은, 짓궂은 데가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술이 빠져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진물’이라고 부른다. 후배 한 녀석이 나를 포함해서 가까운 몇몇을 ‘안동의 4대 진물’이라고 놀려댄다.
선친은 술 배달을 했다. 그중에서도 친한 사람들끼리 계 모임을 했다. 계 이름이 '진물계'였다.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 진물계에서 거울을 선물했다. 큰 거울 상단에는 ‘祝 入宅(축 입택)’, 하단에는 ‘眞物契 一同(진물계 일동)’이 적혀 있어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선친은 마을이나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노래도 잘했다. 젓가락 하나로 온몸을 사용해 갖은 악기 소리며 좌중의 흥을 돋우었다. 유머 감각은 따를 자가 없었다. 동네에서 버스를 대절해 서 놀러 갈 때도 아버지 일정에 맞추었다. ‘안 씨 안 가면 무슨 재미로 가냐’며 이구동성이었다. 선친은 술로 돈을 벌었지만 술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 선친께 술을 배웠다.
스물두 살 여름방학 때였다. 모처럼 집에 갔다. 감나무 그늘에 놓여 있는 평상에 앉아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막걸리를 한 잔 마시던 아버지가 대뜸 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야야, 이젠 너도 술 한 잔은 해야지?” “아뇨, 저 술 못 마시니더.”
나는 이미 술을 마시는 입장이었지만 못 마시는 척 두어 번 사양을 했다. 그러자 선친은 옴짝달싹 못할 말로 술잔을 받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야야, 아바이는 술 일고여덟 말 짊어지고 말구리 재뜨박도 올라가는데 니는 내리막에 물 한 잔 못 내리나?” 그날부터 꼼짝없이 아비 앞에서 술 마시는 아들이 되고 말았다. '진물'의 대를 잇는 순간이었다.
백바꾸
아마 운동장 트랙을 백 바퀴 돈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이리저리 쏘다니거나 자주 시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시껄렁하게 노는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거나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온갖 참견을 일삼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중학교 삼학년 무렵의 어떤 친구 별명이기도 하다. 그는 유행에 민감하여 나팔바지, 쫄대바지, 당꼬바지, 배꼽바지를 때맞춰 차려입었다. 키도 크고 잘생긴 얼굴에 운동도 잘했다. 깡다구도 좋아서 싸움도 지렸다. 새 옷을 입으면 시내로 진출해서 여학생들이 모여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니며 멋을 부렸다. 동네 친구들은 그를 ‘백바꾸’라 불렀다.
나중에 그는 안동 역전파출소에서 청원경찰 비슷한 것을 했다. 정식 경찰은 아닌데 비슷한 제복을 입고 한껏 멋을 부리고 다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순찰을 돌았다. 아마 하루 백바꾸는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백바꾸는 충분했을 것이다.
스물 예닐곱 때였을까.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맨자구
나는 어려서 낙동강변 마을에 살았다. 그때만 해도 강은 희고 드넓은 백사장을 맑고도 푸르게 흘렀다. 은어, 메기, 붕어, 수루메기(갈겨니), 먹피리(피라미 수컷), 동자개, 맨자구(모래무지) 등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백사장도 강물도 사라지고 봇물만이 컹(그득)하다. 우리는 모래무지를 ‘맨자구’라고 불렀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에게도 붙여 불렀다. 주로 일머리가 없어서 일 처리가 엉뚱하거나 융통성이 없어서 곧이곧대로 하다가 손해만 보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서 혀를 차며 한마디 한다. "맨자구 같으니라고." '바보'나 '숙맥'과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한다. ‘맨재기’라고도 한다.
못때기
성격이 몹시 좋지 않고 고약한 것을 ‘못되었다’라고 한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속담이 있다. 다 커서는 머리에 뿔이 나야 마땅한데 엉덩이에 뿔이 나서 되겠는가.
안동에서는 ‘못된’을 ‘못땐’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로 행실이 못된 아이들을 ‘못때기’라고 한다. "저 아이는 참 못땠 어, 참 못때기야."
젊은 시절, 내 여자 사람 친구 중에는 ‘못때기’라는 별명을 가진 이가 있었다. 좀 쌀쌀맞게 생겼으며 조금은 직설 적이고 공격적인 말투를 지녔다. 그러나 이 점을 빼면 그다지 '못땠다'고 할 만한 구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쁘 기까지 했다.
자부래미
반쯤 뜬 눈인지, 반쯤 감은 눈인지, 하여간 부처의 눈같이 잠이 오는 듯한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늘 졸려서 반 눈을 뜨고 잠을 자는 듯한 눈을 지닌 사람을 ‘자부래미’라고 불렀다. 또한 아예 잠이 많은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안동말로 ‘졸린다’를 ‘자부랍다’, '잠보'를 ‘자부래미’라고 한다.
안동말의 보고라 불리는 권정생 소설 『한티재 하늘』에도 등장한다. “눈꺼풀이 처져 있어 언제나 눈을 감고 있는 듯이 보여 자부래미(잠보)라는 별명을 가진 박서방”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속이 깊고 의로운 사람이 많다. 박서방도 위험을 감수하며 총살당한 의병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뒷산에 묻어준다. 내 아는 후배도 이런 눈을 지녔다. 꼭 부처의 눈을 닮아서 반쯤 감은 듯 가늘면서도 길고 서늘한 눈매였다. 그는 오래전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
만화가 고행석이 창조한 ‘구공탄’이라는 인물의 눈이 꼭 그렇다. 자부래미다.
허패
'허패'는 한 마디로 힘이 약한 사람을 말한다. 딱 보기에도 힘이 약해 보이거나, 허우대는 멀쩡한데 힘이 약한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사내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시골에서 시내로 전학을 갔다. 전학생을 군기 잡으려고 텃세 부리는 친구가 있었다. 키가 크니까 혹 싸움까지 잘하나 싶어 애초부터 기를 눌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싸움을 걸어왔다. 태권도를 배운 친구였다. 난 싸움을 몰랐다. 그 친구가 화려한 태권도 자세를 잡고 팔짝팔짝 뛰었다. 난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상학이는 허팬가 봐.”
여기저기서 쑤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싸울 의사가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항복을 받은 표정으로 의기양양했다. 난 부끄러웠다. ‘허패’라는 말은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어느 날 반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다. 우리 반이 지고 있자 담임 선생이 나를 교체 투입시켰다. 키가 크니까 뭔가 좀 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공을 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공이 내 앞에 떨어졌다. 나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당연히 공을 빼앗겼다. 바로 교체당했다.
이 두 번의 수모는 나를 운동에 미친 놈으로 만들었다. 허패 소리 듣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런데 웬걸. 무술과 축구는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공만 보면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이소룡 사진을 붙여 놓고 피 터지게 쌍절곤을 돌렸다. 덕분에 몸은 많이 단련되었다. 그 후로는 허패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술과 담배를 알고부터 운동과는 멀어졌다. 지금까지 술 담배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때 길러놓은 체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사람을 가리키는 안동말로 '두대바리, 터구, 무종이, 춤물이, 어뱅이, 거무, 걸버생이, 여시, 퐁신, 꿉배기, 뺀대가리, 빠꼼질랑이, 똥걸레' 등 많이 있다.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안상학
시인. 1962년 경북 안동 태어나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아배 생각』, 『안동소주』 등이 있으며, 동시집으로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 등이 있다. 권정생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