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
- 글쓴이
- 박소혜
-
- 작성일
- 2026.05.01
-
- 조회수
- 700
《로동신문》에 등장하는 북녘말들
글 박소혜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연구교수
디지털 시대. 인터넷 가상공간이 물질 현실 세계를 압도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제 북한의 종이 신문을 볼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지금은 인터넷 검색을 넘어 생성형 인공지능이 우리의 생활 방식마저 바꾸고 있는 대전환의 시기다. 온갖 종류의 정보와 소식들이 온라인 뉴스와 SNS를 통해 전파되고 재생산되면서, 강력한 권위와 영향력을 갖고 있던 기존 언론은 기능과 역할이 달라진 지 오래다. 당연히 오프라인의 종이 신문보다는 온라인의 뉴스 보도가 훨씬 더 많이 유통되고 소비된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의 종이 신문을 이제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 충격 혹은 서로 다른 체제의 괴리와 장벽
북한에서 종이 신문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했을 때 유일무이한 대표 선수가 바로 《로동신문》이다. 이 《로동신문》은 우리가 《노동신문》이라고 읽고, 때로는 그렇게 쓰기도 하지만 ‘노동’이 아니라 ‘로동’으로 읽고 쓰는 게 맞다. 《노동신문》이라는 표현은 북한을 우리의 잣대로 한번 걸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북한 방식의 맞춤법을 《로동신문》이라는 매체명에서부터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는 출발선이다.
그렇다면 《로동신문》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물론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는 지금도 《로동신문》을 정말로 보려면 《로동신문》을 갖고 있는 국가 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 등에 직접 가야 한다. 《로동신문》이 놓여있던 위치가 ‘특수 자료’에서 ‘일반 자료’로 바뀐 것에 불과하지만, 특수 자료였을 때는 일반인에게 열람이 허용되지 않았다. 자리를 옮긴 《로동신문》은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문체, 서체, 문법, 그런 걸 빼면 같은 한글이니 그리 못 읽을 건 아니다.
근데 《로동신문》에는 대체 뭐가 들었기에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걸까? 그건 필자가 《로동신문》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문화 충격 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로동신문》을 보고 나니 북한에 대한 이해보다는 서로 다른 체제의 괴리와 장벽이 먼저 다가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로동신문》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찬양보다도 남한 정부를 향한 거친 언사들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공식 매체에서 이렇게 심한 욕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삶은 소대가리가 웃다가 꾸레미 터지는 소리를 줴치였다.” 같은 문장이다.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인 것 같지만 《로동신문》에서는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상용구에 해당한다. 또 기사 제목으로 이런 것들도 있다. “달을 보고 짖어대는 개소리”, “산송장의 잠꼬대”, “수치와 창피도 모르는 얼간이짓”, “무식쟁이로파의 망신거리”와 같은 표현이 버젓이 등장한다. 특히 인용부호를 써가면서 “그 무슨 ‘ㅇㅇ’”라고 할 때는 삿대질이라도 하는 모습과 흥분한 목소리가 음성 지원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매우 직설적이고 적나라하다. 대체로 동물에 비유해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한에서는 성적인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과 비교되는 면이 있다.
전면광고가 없어도 최고지도자 선전 선동은 있다
그다음으로 두드러지는 건 《로동신문》에는 광고가 없다는 점이다. 마치 이건 《로동신문》의 특징에 속하는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광고에 너무나 익숙한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뇌는 매일 보는 익숙한 것은 주목하지 않은 채 지나치고, 뭔가 다른 것이 발견되면 그것을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 신문에는 광고가 가득하다는 걸 잠시 잊어버린 채, 《로동신문》에 광고가 없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가득한 것을 기이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도 체제 차이로 설명이 가능하다. 자본주의는 경제가 중심이므로 상품을 홍보하고, 사회주의에서는 정치가 중심이므로 지도자를 홍보한다. 상품을 홍보하는 것은 ‘광고’이고, 지도자를 홍보하는 것은 ‘선전선동’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의 신문은 전면광고를 싣는다면, 《로동신문》은 최고지도자를 1면에 전진 배치한다. 우리가 《로동신문》에서 지도자의 찬양 기사와 사진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처럼, 북한은 자본주의 신문에 두드러지는 전면 광고가 생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러한 생경함은 대개 비난이나 멸시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로동신문》은 북한 최고지도자를 어떤 내용으로 홍보하는 것일까? 주민들이 보는 신문인 만큼 최고지도자가 인민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우리말로 ‘톱기사(머리기사)’가 된다. 북한에서는 ‘현지지도’라고 표현한다. ‘현지지도’는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이 공장, 학교, 군부대 등을 찾아가 현장의 사정이나 형편을 알아보는 ‘료해’를 하고 인민들을 만나 ‘지도’를 하는 등의 공개적인 통치 활동이다. 현지지도에서 지도자는 칭찬할 수도 있고, 혼낼 수도 있는데, 이때 자주 쓰이는 북녘말이 있다. 바로 ‘꽝꽝’과 ‘망탕’이다. 칭찬에는 ‘꽝꽝’, 비난에는 ‘망탕’이 쓰인다.
예를 들면 이렇다. 청년동맹을 칭찬하면서 “젊은 주력부대가 ‘꽝꽝’ 울리는 진격의 나팔소리, 북소리가 강산을 진감”한다든가, 농장에 대해 “영양가 높은 푸른먹ㅇ이를 ‘꽝꽝’ 생산하고 있는 이 시설의 경제적 효과성은 대단히 컸다.”라든가, 공장 생산능력이 늘어서 “학습장이 ‘꽝꽝’ 생산되고” 등과 같이 쓰인다. ‘꽝꽝’은 북한 사전에서 “어떤 일이 기세좋게 진행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반면 지도자가 지적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라고 하여 ‘망탕’ 써버린다면”, “잘 썩지도 않은 거름을 ‘망탕’ 포전에 내여”, “과학적리치에도 맞지 않게 주관적 의사를 ‘망탕’ 내리먹이는 현상들”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망탕’으로 강조한다. ‘망탕’은 북한 사전에서 “되는대로 마구”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런 표현도 있다. “청소한 공화국의 힘으로 미제에 맞서”, “건군의 첫 기슭에서…청소한 우리 군대”, “청소한 신생조선을 이끄시여” 등에서처럼, 정권 초기 6·25전쟁 당시의 북한을 스스로가 ‘청소한 공화국’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청소(靑少)하다”는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 “력사가 짧고 경험이 어리다”라는 의미이다. 남한에서는 이러한 뜻의 형용사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데, 북한은 마치 자신의 ‘청소년’ 시기를 격려하는 것처럼 이 단어를 쓴다.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관계를 만드는 첫걸음
《로동신문》 ‘공개’ 얘기 하나 더. 그런데 왜 《로동신문》은 종이 신문으로만 봐야 할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로동신문》은 온라인판도 운영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한 지금 볼 수 있는 《로동신문》은 아침마다 실시간 배달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미 지나버린 신문을 이제야 볼 수 있는 정도의 시차까지 있다. 통일부의 북한 자료 공개 확대 방침에 따라 차차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로동신문》을 인터넷으로 접속하려다가는 불법 유해사이트에 접근했다는 차단 표시가 뜨거나, 홈페이지에 연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차단의 빗장을 하나씩 풀다 보면 소통과 대화의 길도 조금씩 열리게 되지 않을까? 차단은 호기심을 부를 수 있지만 해제는 직시를 통해 정면 돌파의 해법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고 느끼게 하는 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테다.
2006년 금강산에서는 남북언론인토론회가 열린 적이 있다. 제1회 개최가 마지막이 되었다. 당시 만찬 자리에서 남북의 기자들이 서로에게 질문했다. 북측 기자는 “우린 범죄 기사는 안 쓴다. 미담 위주로 쓰는 게 주민들의 교양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측은 북측의 어떤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우리는 “사람 사는 이야기,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만나자.”라고 했지만 기약 없는 만남인 걸 모르지 않았을 그 북측 기자는 ‘사람 사는 이야기’ 잘 쓰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하다.
머지않아 《로동신문》을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된다면 《로동신문》은 여러 신문 중 그저 하나가 될 것이다. 차이조차도 자연스럽게 묻히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북한도 언젠가는 한국의 신문들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면 좋겠다. 지금은 ‘적대적 국가 관계’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달라도 뭐가 다른지 알려야 할 게 아닌가 싶다.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관계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테니 말이다.
박소혜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연구교수.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광대학교 통일교육사업단 강사, 서경대학교 인성교양대학 겸임교수이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사와 인터넷 매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