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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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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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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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108
겨레말큰사전, 남북 언어의 역사적 통합
글 김재용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

《겨레말큰사전》은 현재 남북의 언어를 기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고 남북의 언어가 연유한 역사적 원천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남북의 언어를 통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남북 사전에 수록된 어휘의 기본적인 틀을 구성하는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개념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을 때부터 가장 중대한 현안이 바로 표준어 제정이었다. 지역마다 다르게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로 통일하여 사전의 표제어로 올릴 것인가였다.
표준어의 양면성
당시 상상한 해결책은 비슷한 뜻을 가진 여러 지역의 어휘 중에서 서울의 것을 기준으로 삼고 이를 표준어라고 부르면서 타 지역의 것을 모두 방언 혹은 사투리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작고 허름한 집을 서울에서는 오두막이라고 하고 평안도에서는 마가리라고 하였는데, 서울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의해, 오두막은 표준어로 사전에 오르고 마가리는 방언 혹은 사투리로 규정되어 사전에 오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규정 때문에 전국의 많은 어휘들이 사전에 오르지 못하거나 혹은 오른다 하더라도 방언이란 딱지를 달게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표준어로 대접받은 어휘들은 더욱 널리 사용하기를 권장한 반면, 사투리 혹은 방언들은 더 이상 사용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는 점이다. 조선어의 통일을 통하여 민족적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였던 일제하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방향은 많은 문제점을 내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이 표준어 제정을 반대하였다.
언어학자 홍기문은 서울 중산층이 사용하는 언어를 표준어로 선정하는 순간 오랜 세월 민중들이 사용해 온 무수한 토박이말들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여 표준어 제정을 반대하였다. 시인 백석은 시집 『사슴』에서 평양과 평안도에서 널리 사용하는 어휘들을 일부러 시에 끌어들였다. 서울에서 꽤 긴 생활을 하였던 백석이 오두막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마가리라는 말을 시에 사용하였다. 백석은 서울의 언어를 기준으로 표준어를 제정하는 것의 문제점을 이런 식으로 비판했던 것이다. 한설야는 표준어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향인 함흥을 비롯하여 함경도 지역의 언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소설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겨레말큰사전》에서 함경도 지역어를 복원함에 있어 보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조선총독부가 독자적인 어문 정리 원칙을 만들고, 비록 조선에 나와 있는 일본인을 위한 사전이기는 하지만, 이미 사전을 만든 상황에서 조선어학회가 시급하게 사전을 만들어야 하는 당위감과 또한 조선인의 통일된 정체성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지역의 언어를 통합하려고 하였던 노력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표준어의 제정과 그 기준은 이후 여러 난제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분단되지 않았다면 이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새롭게 제기되었을 것이며 또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북이 분단되면서 이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로 나아가기보다는 남북의 대결이란 정치적 조건에 의해 굴절되었다.
문화어의 파장
분단 이후 북쪽에서 만들어진 사전 역시 조선어학회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표준어를 기준으로 삼았다. 1950년대의 소사전을 거쳐 1962년에 6권으로 간행된 《조선말사전》(1960-1962)은 표준어와 방언의 위계를 아주 선명하게 드러냈다. 남쪽에서 만들어진 사전과 이 점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 문화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표면적으로는 이전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표준어에서 규정한 서울이란 지역적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표준어 대신에 문화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와 함경도의 말을 사전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방언 혹은 사투리로 변방화되었던 어휘들을 문화어의 개념으로 올렸다. 3,000개에 이르는 어휘들이 이 문화어의 개념 덕분에 정식 표제어가 되었다. 오두막을 뜻하는 마가리가 그동안 평안도 사투리로 규정되었는데 이제 문화어로 규정되어 당당하게 사전에 올랐다. 표준어의 개념에서 방언 혹은 사투리로 규정되었던 것을 사전에 올리면서 이들을 문화어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어 규정 이후에 나온 북의 사전에는 마가리와 오두막이 동등한 자격으로 오를 수 있었다.
북에서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남에서는 표준어, 북에서는 문화어가 통용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남북 어휘의 이질화로 이어졌다. 그동안 유지되었던 서울 혹은 남쪽 중심주의에 대해서 평양 혹은 북쪽 중심주의가 생기게 된 셈이다. 조선어학회의 부정적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표준어라는 개념은 언어상의 남북 통합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주었는데 이 전통이 깨진 것이다. 그동안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규정 때문에 차별과 무시를 받았던 평안도와 함경도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던 말들이 제대로 복원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약 이러한 작업이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규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동반하였다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삼팔선 이남 지역에서 표준어 규정 때문에 차별받고 주변화되었던 어휘들이 살리는 작업까지 자극하였을 것이고 이는 한반도 전체의 언어적 결락을 제대로 극복하는 매우 큰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대타적 의식에 기반을 두었던 것이라 매우 한정적인 의미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남북의 어휘 이질화로 이어졌다.
《겨레말큰사전》은 통합어의 미래
차별당하고 외면받았던 지역어들을 살린다는 의미보다는 서울에 맞선 평양의 언어를 살린다는 뜻이 더욱 강하였던 문화어의 등장으로 남북의 언어 상황이 한층 복잡해졌지만 이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남북에서 기존에 금지했던 근대 작가들을 해금할 정도로 한반도의 문화의 장에서도 탈냉전의 기운이 강하게 불었다.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바로 남쪽에서 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에서의 북한어 편입이었다.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걱정하면서 언어적 통합을 상상하던 이들이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기존 남북에서 출판된 사전을 통합하여 새로운 사전을 만드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북한어를 편입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통합 의지의 산물이다. 기존의 남쪽 사전에는 없지만 북쪽의 사전에 있는 어휘 중 가치 있는 것들을 북한어의 이름으로 사전에 올리고 이를 통합사전의 한 유형이라고 생각하였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북한어로 명기되어 있는 어휘들이 모두 이 시기에 수록된 것들인데 대략 7만 개에 이른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이용하는 많은 이들이 북한어로 되어 있는 어휘들이 분단 이후 북한에서 사용된 어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7만 개에 달하는 이 북한어 중에는 해방 이후 북에서 만들어져 사용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사용되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전에 올라가 있지 못하다가 북에서 편찬한 사전에 올라가 있는 것들이다. 가령 충청도 출신으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던 이기영이 월북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썼는데 남쪽에서는 이기영이 월북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나오는 어휘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반면, 북에서는 가장 중요한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 나오는 어휘들 중 사전에 수록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여 표제어로 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북의 사전에 올려져 있고 남의 사전에는 없는 이기영 작품의 새로운 어휘들은 북한어가 아니고 충청도 지역어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국어대사전》은 한반도에 부는 탈냉전의 바람을 타고 좋은 뜻의 통합으로 북의 사전에만 있는 7만 개의 어휘를 남쪽의 사전에 올리는 성과를 낳았지만 실제로는 남북 언어 상황을 한층 복잡하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남북 언어의 이러한 복잡한 정황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면서 진정한 통합어를 상상하려고 한 것이 바로 《겨레말큰사전》이다. 《겨레말큰사전》은 기존의 남북 사전에서 통합어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20만 개의 어휘를 고르고 이를 합동으로 뜻풀이하였다. 다음으로는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개념으로 인하여 억압되었던 지역어를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이를 동등한 자격으로 올림말로 올리는 것이다. 10만 개의 새어휘를 올리는 성과를 낳은 이 작업은 근대 이후의 많은 문헌들을 대상으로 하여 조사 작업도 하여야 하고 또한 문헌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구비되는 어휘들을 발굴·정돈하여야 하는 것이기에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처음 하는 통합어 작업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할 수 있다. 특히 남북의 전문가가 참여하여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진정 통합어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전을 통하여 비로소 표준어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고, 문화어의 편중을 극복할 수 있으며 기계적 통합어의 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층적 남북 통합의 가능성
《겨레말큰사전》이 남북 통합에서 갖는 의미 중 음미해야 할 대목은 남북의 현실 정치에서 어느 정도 독립하여 작업했다는 점이다. 남북의 통합에서 정치적 통일이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모든 것을 그것에 귀속시키거나 환원시키는 것 또한 현명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의 현실 정치에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남북의 통합을 상상하는 것은 작업의 편의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진정한 통합에 이르는 작은 길이기 때문이다.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겨레말큰사전》을 시작할 때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합의한 것은 이 사전이 규범 사전이 아니고 유산 사전이라는 점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약 《겨레말큰사전》을 규범 사전이라고 했으면 이 사전 작업은 남북 현실 정치의 압력 때문에 오래전에 중단되었을 것이다. ‘자음과 모음을 어떤 순으로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전 편찬 자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이것을 사전 편찬 실무 차원이 아니라 남북의 이질화를 극복한다는 한층 강화된 정치적 차원에서 접근하게 된다면 필경 남북의 현실 정치에 직접적으로 연동되어 난관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북의 사전에서 통합어로서 의미가 있는 어휘 20만 개를 고를 때 해방 이후 남북의 정치적 제도에서 빚어진 어휘들은 일단 제외하기로 하였는데 이 역시 통합을 위한 매우 현명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질화를 극복한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앞세웠다면 그동안 《겨레말큰사전》이 이룩한 업적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겨레말큰사전》은 표준어와 문화어 그리고 기계적 통합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근대 이후 우리 말의 어휘를 새롭게 정리하는 역사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은 향후 어떤 정치적 향방과도 독립된 것으로 그 자체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렇게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은 남북의 현실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는 독자성을 견지할 수 있었기에 다층적 통합에서 한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재용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 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제주대학교 특별연구원이다. 『민족문학운동의 역사와 이론』, 『북한문학의 역사적 이해』, 『분단구조와 북한문학』, 『한국 근대민족문학사』, 『협력과 저항』, 『세계문학으로서의 아시아 문학』, 『풍화와 기억』 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