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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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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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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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115
언어의 분단에서, 언어공동체를 생각하다
글 이지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분단과 함께 달라진 언어의 길
언어는 한 사회의 역사와 삶의 방식을 반영한다. 남북한의 물리적 분단은 체제와 제도뿐만 아니라 언어와 가치관의 분단으로 이어졌고, 시간이 흐르며 분단의 맥락은 더욱 심화되었다. 남북한은 민족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화해하려는 노력도 있었으나, 분단의 장벽은 여전히 강고한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관계 회복의 과제는 더욱 복잡한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북한은 1960년대에 ‘평양문화어’를 정립하며 남한의 표준어와 구별되는 독자적 언어 체계를 구축했다. 2023년에 제정한 「평양문화어보호법」은 남한을 ‘괴뢰’라 지칭하며 남한의 문화, 특히 남한식 말투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언어 단절을 제도화하였다.
남북한의 언어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사회와 세계를 지칭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예컨대 북한의 공식 문건이나 언론에서 발화되는 폭력적이면서 저급한 수사들, 조롱과 욕설은 자못 당황스럽다. 외교적, 정치적 전략으로 사용된 이 같은 발화 형태는 번역이 필요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언어 차이를 살펴보는 일은 언어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언어의 경계, 개념의 분단
남북한의 언어는 기본적인 문법은 동일해도 분단이 심화되면서 어휘, 표현 방식, 맞춤법, 어조를 비롯하여 언어 정책과 제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특히 분단 이전에는 함께 사용하고 뜻이 통하던 단어라 할지라도 공간이 분리되고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서 내포된 의미가 변화했다. 같은 대상인데 부르는 말이 달라졌다. 이 같은 개념의 분단은 일상어부터 추상적인 개념어까지 망라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주로 사용하면서 남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 단어로 친구의 동의어인 ‘동무’를 들 수 있다. 평화, 전쟁, 민족 등에 대한 남북한 입장 차이에서 개념의 분단은 잘 드러난다. ‘동무’처럼 어느 한쪽이 선점한 단어는 다른 한쪽의 사용 기피로 이어졌다. 이 같은 개념의 쟁투는 해방기부터 나타났다.
분단 이전에 ‘민주’와 ‘인민’은 보편적인 근대 정치 용어였다. 그러나 북한이 ‘인민’을 선점하면서, 남한에서 ‘인민’은 북한 체제를 상징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민주’는 민주개혁, 민주기지, 민주조선 등 북한이 해방기에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국호에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넣기까지 하였으나 현재는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냉전 구도 하에서 민주와 민주주의는 공산주의 진영과 대립하는, 남한 등 특정 체제를 상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기에 ‘자유’는 민주정치의 핵심 가치였다. 남한에서 ‘자유’가 개인의 선택과 권리를 보장하는 개념이라면, 북한에서는 사회와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 범위로 규정되고 있어 사실상 다른 개념이 되었다. 북한에서 ‘자유주의적 현상’ 또는 ‘자유주의를 한다’라는 말은 규율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의미로, 곧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외래어로 보는 남북한 언어의 거리
남북한 각자가 맺은 외교관계의 차이는 외래어 사용에서도 차이를 가져왔다. 해방 전에는 영어, 독일어, 불어 등 다양한 언어권의 외래어가 섞여 있었다. 분단 이후 남한의 외래어는 주로 영어 중심으로 정리되었고, 북한은 러시아어 영향을 크게 받았다. 예컨대 남한의 영어식 외래어인 백신, 트랙터, 하키, 소시지, 그룹, 비디오 등은 북한에서 왁찐, 뜨락또르, 호케이, 꼴바싸, 그루빠, 비데오 등 러시아어 기반의 외래어로 사용되었다.
새로운 문명과 기술을 반영한 신어의 경우, 남한은 서버, 데이터, 디지털,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에 북한은 봉사기, 자료/수값, 수자식, 구름계산 등으로 번안해 사용한다. 북한의 경우 콤퓨터, 프로그람 등을 그대로 쓰는 사례도 빈번하나 대체로 외래어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콜라겐, 알고리즘처럼 순화어가 마땅치 않은 경우엔 그대로 사용하며 머리비누, 헹굼물비누 대신에 샴푸, 린스로 정착한 경우도 있다. 한편, 남북한 모두 동일하게 '업로드/다운로드'를 '올려보내기/내려받기'로 순화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은 공인되지 않은 외래어와 ‘일본말찌꺼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일상에서는 바께쯔(양동이), 세타(스웨터), 고뿌(컵), 레루(레일), 빠다(버터) 등 일본식 발음이 고착되어 있다. 한편으로 영어 기반 외래어가 점차 확산되면서 러시아어 기반이었던 ‘모터찌클’은 ‘오토바이’, ‘꼴바싸’는 ‘햄’과 ‘소세지’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얼음보숭이’는 ‘에스키모’라는 러시아 상표 이름으로 불렸으나 이제는 ‘아이스크림’이 일반적이다.

북한의 문화어는 평양말을 중심으로 표준화되어 있지만, 일상에서는 전통적인 북부 방언과 토박이말이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특히 시나 소설 등 문학에 기록되는 어휘들은 지역 방언부터 순우리말, 시대가 변하면서 북한에서 고유하게 형성된 북한말 등이 망라되어 있어 한반도 언어문화의 주요 자산으로 주목할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말대꾸는 까박(평북·함남), 손아귀는 손탁(평북), 서랍은 빼람(평안·황해), 굳은살은 썩살(함남)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이북 지역 방언 등을 포함하여 북한어를 사전으로 종합한 《겨레말큰사전》을 통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한편 북한 문학에는 바스레기(바지락), 혼쌀(혼쭐), 엎음갚음(상부상조), 꼭자(매우 고지식한 사람), 등탈(뒤탈), 뚝박새(융통성 없고 무뚝뚝한 사람) 등 남한에서 사용하지 않는 북한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겨레말큰사전》에서 검색해야 정확한 뜻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사전을 이용하지 않아도 독자는 문맥과 어감, 조어 방식을 통해 대략적인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이는 남북한이 언어공동체로서 기본적인 언어 구조, 어휘 형성 방식, 비유 습관, 정서적 어감 등을 공유하기 때문에 갖는 이점이다.
다시 이어질 언어공동체
남북한 언어 차이를 살피는 일은 단지 분단으로 인하여 언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교하는 것을 넘어, 언어적 공통성을 확인하고 두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오랜 분단으로 남북한은 같은 말을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해 왔고, 서로 처음 듣는 단어가 있어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게다가 표현 방식이 달라 오해를 줄이기 위해 번역이 필요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단 이후에도 속담과 순우리말, 일상 속 관용적 표현 등은 여전히 공통의 언어 자산으로 남아 있다. 차이를 아는 동시에 공통점을 확대하면, 비록 오랜 시간을 분단된 채 살아왔어도 언어공동체였던 기반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직접 만나거나 교류가 확대될 경우, 언어 차이는 실제 의사소통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이 서로의 표현 방식과 의미 체계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소통의 어려움을 줄이고 교류를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한 언어를 이해하고 보존하는 노력이자, 남북한 언어 차이를 연구하는 동시에 공통의 언어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기적으로 어느 한쪽의 언어 규범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생활과 언어 경험을 존중하며 공통의 기반을 넓혀가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한 언어 이해와 연구는 미래의 소통을 준비하는 토대이자, 언어공동체 회복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지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 북한 문학예술과 문화정치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정은 시대의 미디어 대중 교양, 뉴미디어 대외 선전, 북한의 상품광고와 소비 실태 등의 연구를 수행했다. 『국가상징의 문화적 형상과 북한의 브랜드 전략』(공저), 『북한 게임의 문화융합: 게임산업, 콘텐츠, 경험』(공저), 『김정은 시대 미디어 대중교양』(공저), 『북한의 상품광고와 소비 실태』(공저) 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