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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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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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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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385
봄날은 간다
글 한성우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봄은 영 재미없다. 모두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계절을 두고 딴지를 거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언어 연구자에게 봄은 마뜩잖다. 소설가 김유정은 ‘봄’을 두 번이나 겹쳐 쓴 「봄봄」으로,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봄을 강렬하게 그려냈지만 언어로서의 ‘봄’은 할 말이 별로 없다. 어디 봄뿐이랴. 나머지 여름, 가을, 겨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때를 가리키는 다른 말은? 나른한 봄날이니 그 말들을 찾아 소풍을 떠나봄 직하다.
계절을 가리키는 말
봄은 봄이다. 세종대왕 시절부터 오늘날까지의 모든 문헌을 샅샅이 뒤져 봐도, 백두에서 한라까지도 모자라 한반도 밖 우리 겨레의 말까지 죄다 찾아봐도 다른 변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밥’도 그렇다. ‘밥’은 그래도 ‘진지, 메, 맘마’ 등이 있지만 특수한 상황에 따로 쓰는 말일 뿐이다. ‘쌀’도 마찬가지다. ‘멥쌀, 좁쌀’ 등에서 과거 첫소리에 ‘ㅂ’이 발음되었던 ‘ᄡᆞᆯ’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말소리의 변화일 뿐 계통이 다른 단어는 아니다. 밥과 쌀을 우리 겨레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봄 또한 그래서 다른 변이가 나타날 틈이 없었다는, 국어학자답지 않은 해석을 붙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계절도 다르지 않다. ‘여름’은 ‘녀름’이었지만 첫소리 ‘ㄴ’이 떨어지는 것은 누구나 설명 가능한 말소리의 변화일 뿐이다. ‘가을’은 좀 낫다. 본래 ‘ᄀᆞᅀᆞᆯㅎ’이었으니 ‘가실, 갈, 갉’ 등의 꽤 많은 변이가 발견된다.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일 뿐이다. 이 또한 예측 가능한 말소리의 변화이지 계통이 다른 단어는 아니다. ‘겨울’도 ‘겨ᅀᅳᆯㅎ’이었으니 가을과 마찬가지로 ‘겨실, 결, 저싥’과 같은 부처님 손바닥 안의 변이만 보인다. ‘삼동’이나 ‘동삼’이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세 달 동안의 겨울을 뜻하는 ‘三冬’이나 ‘冬三’이니 김이 샌다.
재미가 없으니 시간의 길이를 늘려볼까? ‘일년(一年), 작년(昨年), 내년(來年)’ 등등 죄다 한자어이니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없다. 아주 오랜 옛날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고유한 말이 있었겠지만 한자가 들어온 이후 거의 한자어로 대치되었다. 사실 시간을 나타내는 말 대부분이 한자어이다.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올해’가 있어 다행이다. 이게 본래 ‘올ㅎ’였는데 여기에 슬그머니 때를 나타내는 조사가 붙어 ‘올해’가 되었다. 물론 끝소리로 ‘ㅎ’이 있었으니 ‘오래, 오리, 올게, 올기’ 등이 나타난다.
달을 가리키는 말
시간의 길이를 좀 더 줄이면 열두 달의 이름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달을 가리키는 말도 한자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월(一月)’부터 ‘십이월(十二月)’까지 모두 한자를 써서 나타내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그렇게 쓴다. 1월은 ‘정월(正月)’이라 하여 조금 다르게 쓰지만 이것 또한 중국의 역법(曆法)에서 한 해의 기준이 되는 달이란 의미로 쓴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달의 이름이 역법과 관계가 있고, 역법은 중국에서 받아들였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도 ‘오뉴월’이 있어 반갑다. ‘六月’은 ‘육월’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발음 습관 때문에 ‘유월‘이 되었다. 이것이 ‘오월(五月)’과 합쳐지면 ‘오육월, 오륙월, 오유월’ 등도 후보가 될 수 있는데 다소 엉뚱하게 ‘오뉴월’이 된다. ‘六’의 본래 발음이 ‘륙’이니 ‘오륙월’에서 변한 것일까? 아니면 ‘오월’과 ‘유월’이 합쳐진 ‘오유월’의 발음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오뉴월’이 된 것일까? 그 답은 이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우리 조상님들만 아신다. 그래도 ‘오뉴월의 서릿발’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5월에도 서리가 내릴 수 있다고 우기고 싶겠지만 이건 음력이니 양력으로 따지면 오뉴월은 한여름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가리키는 ‘섣달’에 이르러서는 할 말이 많아진다. 이 말은 ‘설’과 ‘달’이 결합한 것이고 그 사이에 ‘ㅅ’이 들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섨ᄃᆞᆯ’이 나타나야 하는데 ‘섯ᄃᆞᆯ’만 보인다. 이것이 ‘섣달’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지만 ‘설’이 문제다. ‘설날’에서도 ‘설’이 보이니 같은 것으로 보고 싶지만 설은 새해 첫날을 가리키지 않는가? ‘설’이 ‘해[歲]’를 가리키고 나이를 셀 때 쓰는 ‘살’과 기원이 같은 것은 분명하지만 ‘섣달’에 쓰인 ‘설’이 이와 같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날을 가리키는 말
날을 가리키는 말로 더 좁혀 보면 비로소 우리의 풍성한 밥상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자 ‘日’을 대신할 ‘날’이란 말도 생생하게 살아있고 날을 세는 말도 모두 남아 있다. 힘들어도 기억을 되살려 보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숫자를 세는 우리 고유의 말인 ‘하나, 둘, 셋, 넷...’과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루’와 ‘이틀’이 불규칙해 보이고 ‘이틀’은 한자 ‘二’와 관련을 짓고 싶고 ‘2틀’로 쓰는 이도 가끔 있다. 그러나 아니다. 오늘날 ‘둘’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는 ‘일’이었으니 ‘이틀’이 된 것이다.
‘사흘’은 문해력, 아니 어휘력 논쟁을 촉발한 주범이다. 글자를 보면 ‘四’와 관련이 있어 보이니 ‘4흘’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깨 서 말’이나 ‘술 석 잔’을 생각해 보면 된다. ‘사흘’의 첫소리는 본래 ‘서’였는데 말소리가 바뀐 것이다. ‘나흘’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셋과 넷을 합쳐 ‘서너’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같은 양상이다. 이렇게 꼼꼼하게 따지면 정확히 쓸 수 있지만 복잡하고, 불규칙해서 어렵다. 게다가 어른들이 잘 안 써서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니 괜히 시비 삼거나 비난할 일은 아니다.
‘사흘’에 ‘날’을 붙인 ‘사흗날’은 ‘섣달’과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사흘’과 ‘날’이 결합할 때도 ‘ㅅ’이 끼어드니 본래 ‘사흜날’이다. 이뿐만 아니라 끝소리로 ‘ㄹ’을 가지고 있는 ‘이틀, 나흘, 열흘’도 마찬가지다. 이 사이시옷 때문에 ‘ㄹ’이 떨어지고 끝의 ‘ㅅ’이 발음으로는 ‘ㄷ’이 되니 표기까지도 그리 바뀐 것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에는 ‘삼일날’이 되어야겠지만 여기에도 ‘ㅅ’이 들어가니 ‘삼읻날’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일(日)’이 본래 ‘ᅀᅵᆯ’이었으니 그 영향으로 ‘삼짇날’이 되는 복잡한 마법이 일어난 것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늘 ‘오늘’을 산다. 악착같이 부여잡고 살아야 하는 오늘이니 그 기원을 파헤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온 날’로 설명하고자 하지만 솔깃하게 들리더라도 그 증거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오늘이 있으려면 하루 전의 날, 즉 ‘어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기원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 ‘제’가 때를 가리키는 말이니 ‘어’를 분리할 수 있지만 뜻은 알 수 없다. ‘어저께’라는 말도 쓰여 ‘어적’도 분리할 수 있고 ‘적’도 때를 가리키니 여전히 ‘어’가 남지만 그래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다가올 날은 ‘내일’이니 이건 분명해 보인다. 당연히 한자어 ‘來日’일 테고 사전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한자어라면 중국과 일본에서도 써야 할 듯한데 거의 안 쓰고 옛 문헌에도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제, 어제, 오늘, 來日, 모레, 글피’를 죽 늘어놓고 나면 의심이 더해진다. 왜 하필 ‘내일’만 한자어일까? 방언을 뒤져보면 의심은 확증으로 바뀐다. 한자어는 방언형이 다양하지 않은데 이 말은 ‘내리, 낼, 냘, 늴, 니얼, 닐’ 등으로 정신없이 나타난다. 결국 본래 고유어였는데 마침 발음이 비슷한 한자어를 갖다 붙인 것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때를 가리키는 말
따스한 봄날, ‘봄’이 영 재미없어 시간을 늘이고 쪼개며 여러 말들을 살펴보았다. 입때까지 살펴본 말만으로도 봄날 하루가 다 간다. 앗! 그런데 ‘입때’라고? ‘접때’도 쓰지 않나?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왜 ‘이때’와 ‘저때’가 아닐까? 그 비밀의 열쇠는 ‘쌀’에 있다. ‘쌀’이 본래 ‘ᄡᆞᆯ’이었듯이 ‘때’도 본래 ‘ㅵㅐ’였다. ‘ㅂ’이 괜히 쓰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발음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쌀’과 ‘때’로 바뀌었어도 그 흔적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봄날은 간다. 뒤이어 오는 계절의 날도 모두 간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된다. 그렇게 가는 세월 속에서 말들은 변하고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그런데 날은 가고 나면 그만이지만 봄을 비롯한 모든 계절은 다시 온다. 말도 그렇다.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의 일상, 잠자고 있는 옛 문헌, 그리고 우리 겨레가 살고 있는 모든 땅의 말들을 뒤져 보면 겨레의 말들이 살갑게 다가온다. 따스한 봄처럼. 
한성우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 국어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국어원 국어규범위원회 위원,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평안북도 의주방언의 음운론』, 『인천 토박이말 연구』, 『우리 음식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과 글의 풍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