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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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권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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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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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41
주시경 선생 나신 150돌을 맞이하여

글 권재일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
주시경 선생 탄생 150돌 기념사업회 조직위원장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가 홀로섬의 특별한 빛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주시경 선생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꾸고 지키는 데에 온 힘을 바친 나라의 큰 스승이십니다. 주시경 선생은 1876년 12월 22일(음력 11월 7일)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하니 올해 2026년은 선생이 태어나신 지 150돌이 됩니다.
주시경 선생은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어를 연구한 언어학자였으며, 또한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꿋꿋하게 지킨 국어 사랑의 실천가였습니다. 나라의 힘과 겨레 정신의 근본 바탕이 되는 말과 글을 바로잡기 위해 말소리와 문법을 연구하였습니다.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선생의 언어학 이론은 오늘날 우리말 연구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선생의 국어학에 대한 주요 저서에는 《국어문전음학》(1908년), 《국어문법》(1910년), 《말의 소리》(1914년)가 있습니다. 이들 책에 담긴 선생의 국어에 대한 연구와 우리 말글 사랑의 실천 정신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민족 정신의 뿌리, 우리말을 향한 평생의 신념
주시경 선생의 국어 연구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잇고 가꾸는 데서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말을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의 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학문의 바탕이 되었으며, 평생을 일관되게 지닌 태도였습니다. 청년 시절 우리말과 훈민정음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주시경 선생은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도 계속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일에 헐버트 박사와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주시경 선생은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이 창간되자 국문판 조필(助筆)로 발탁되어 편집과 제작을 맡았으며, 독립신문사 안에 국문동식회(國文同式會)를 조직하고 국어문법에 대한 공동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더욱이 1908년 8월 31일 주시경 선생은 지금의 한글학회로 이어온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여 겨레 말글의 힘을 단단히 뭉쳤습니다. 주시경 선생의 업적은 학문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국어 강습을 이끈 국어 교육자로서의 업적, 맞춤법 정리와 같은 국어정책가로서의 업적 또한 큽니다. 국어 순화 운동도 주시경 선생에서 비롯되었으며, 토박이말을 살려 쓰고, 글쓰기에서 한글 전용이라는 새로운 운동도 실천하였습니다. 우리 글자 이름을 ‘한글’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주시경 선생 나신 150돌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 속에 문화가 우뚝 솟게 된 데에는 한글이 이바지한 바가 참으로 큽니다. 우리는 한글의 가치를 제대로 일깨워 힘차게 되살려낸 주시경 선생을 한국인의 삶을 널리 이롭게 한 큰 스승으로 높이 우러러 받들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시경 선생 나신 150돌을 맞이한 올해 한글학회는 여러 뜻깊은 일을 펼칩니다.
2023년 한글학회는 주시경 선생 나신 150돌 기념사업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기념사업을 하나씩 하나씩 펼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한글학회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2년 동안 다달이 소식지 《한글 새소식》을 통해 선생의 말·글·나라 사랑 정신을 온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 모두가 선생의 정신을 새롭게 이해하길 기대합니다.
주시경 선생을 기리기 위한 가장 핵심 행사는 학술대회라 하겠습니다. 오는 10월 16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학술대회는 국내외 학자들이 참여하여 선생의 학문과 국어 실천 운동에 대한 업적을 토론합니다. 박영신 교수는 기조 발표에서 어둠을 뚫고 한글 시대를 연 주시경 선생의 학문 업적과 사상을 살핍니다. 영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참여하는 학자들은 외국학자들의 시각에서 주시경 선생의 한국어 연구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주시경 선생 이후 20세기 초기에 우리말 연구를 비롯한 다양한 주제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러한 발표를 통해 주시경 선생의 업적을 되살펴 우리가 앞으로 계승해 나아가야 할 연구의 방법과 대상을 분명하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한편 올해는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가갸날/한글날 제정의 한글문화사적인 의의를 아울러 조명합니다. ‘한글’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정착시킨 것이 바로 주시경 선생이기 때문에 더욱 뜻이 깊습니다.

주시경 선생 태어나신 150돌을 기념하여 정부의 우정사업본부에서는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주시경 선생의 저서 『말의 소리』를 배경으로 주시경 선생이 책보자기를 들고 국어 강습에 임하는 모습을 담은 우표를 다가오는 한글날에 발행합니다. 기념으로 온 국민들이 한 장씩 간직한다면 이 또한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학술대회 기간에 기념 음악 공연도 준비하였으며, 주시경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는 행사도 준비하였습니다. 서울 종로구 당주동 사시던 터를 시작으로 하여 주시경마당, 배재학당, 상동교회, 그리고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한 서울 서대문구의 봉원사를 함께 둘러보는 행사입니다.
《말모이》 원고 베껴 쓰기
또 한 가지 정말 뜻깊은 일을 펼칩니다. 바로 《말모이》 원고 베껴 쓰기 행사입니다. 한글학회가 《말모이》 원고를 간직하고 있는 국립한글박물관과 함께 이 행사를 펼칩니다.
주시경 선생은 백성 대부분이 문맹자인 상황에서 이들을 계몽하기 위해서는 ‘법식에 맞게’ 글을 읽고 쓰는 데 참조할 문법과 사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시도하였으니, 바로 《말모이》였습니다.
《말모이》는 1910년대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 선생과 뜻을 같이하는 그의 제자 김두봉, 권덕규, 이규영 선생 등의 언어학자가 참여해 편찬한 최초의 현대 우리말 사전의 원고입니다. 그런데 편찬자들이 사망하고 망명하기도 하여 불행히도 출판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말모이》 원고는 1927년 민족계몽단체인 계명구락부에 인계되었다가 이후 조선어연구회로 넘어가 조선어학회의 《조선말큰사전》(한글학회의 《큰사전》)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전해 오는 《말모이》 원고는 그 첫째 권으로 보이는, 푸른색 원고지에 붓으로 쓴 원고로 240자 원고지 기준 153쪽 분량입니다.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편찬에 참여하였던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면서 똑같은 모양으로 준비한 원고지와 펜으로 베껴 쓰는 작업입니다. 작업을 다 마친 뒤, 책으로 묶어 기념할 예정입니다.
주시경 선생의 뜻을 ≪겨레말큰사전≫에서 펼치다

울산 출신 최현배 선생과 동래 출신 김두봉 선생은 함께 국어연구학회가 차린 국어 강습소의 제2회 졸업생, 조선어강습원 고등과 수료생으로 주시경 선생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1914년 주시경 선생이 돌아가시자 김두봉 선생은 주시경 선생을 이어 말본 연구와 교육에 힘쓰다가 1919년 4월 중국으로 망명했고, 최현배 선생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국어 연구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이 두 분을 중심으로 주시경 선생의 학문과 국어 운동 정신은 조선어학회로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북은 분단되었습니다.
남북한은 광복 이후 그 범위나 방법에 차이는 있었지만, 한글 전용이라는 강력한 말글정책을 폈습니다. 한글을 깨쳐 문맹을 없앴습니다. 남한은 문교부 편수국을 책임 맡은 최현배 선생을 중심으로 한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북한은 조선어학회의 간사장을 맡았던 이극로 선생이 말글정책을 펼쳤습니다. 결국 광복 이후 남북한의 말글정책은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고, 또 그 정책이 우리 민족을 문맹으로부터 구하였습니다.
광복 이전 조선어학회가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고, 1936년에 표준말을 사정하여 보급·교육한 결과, 남북한은 표준화된 언어 및 문자 체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분단 초기에 남북한은 ‘미리 마련해 둔’ 이러한 표준화된 말과 표기법을 공통으로 가졌기 때문에 말과 글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분단 80년이 지났음에도, 남북한의 말글 체계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고 표기법 원리가 기본적으로 같은 것은, 《조선말큰사전》 편찬을 통해, [1] 분단 이전 이미 조선어학회가 어휘와 표기법을 표준화했고, [2] 분단 직후 남북의 말글정책을 수립한 학자들이 모두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동질성을 바탕에 두었지만, 남북은 분단 80년 동안 크고 작은 언어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바로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 편찬사업입니다. 따라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마무리되면, 바로 주시경 선생이 오래전에 품었던 생각, ‘법식에 맞게’ 글을 읽고 쓰는 데에 남북한이 함께 참조할 사전이 다시 한번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주시경 선생 나신 150돌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가 선생의 고귀한 뜻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권재일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 주시경 선생 탄생 150돌 기념사업 조직위원장,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교수. 국립국어원 원장, 한글학회 회장, 겨레말큰사전 이사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한국어 문법론』, 『한국어 문법사』, 『언어학사강의』, 『남북 언어의 문법 표준화』, 『세계언어의 이모저모』, 『말로써 행복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