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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큰사전》편찬에 대한 몇 가지 조언
고영근 / 서울대 명예교수
본인은 현재 훔볼트재단의 초청으로 콘스탄츠대학과 라이프치히 소재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에서 언어유형론 연구차 독일에 와 있습니다. 외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강평의 기회를 주신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 충심으로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1987년의 일로 기억됩니다. 당시 서울대학교와 베를린 자유대학은 ‘분단의 문제점과 극복’이라는 주제로 2년에 걸쳐 심포지엄을 개최한 일이 있습니다. 본인은 통일원의 용역을 받아 첫해(1987년)에는 남북한 언어정책의 비교, 둘째 해(1988년)에는 주체언어이론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는 북한 관계 문서를 개방하지 않아서 취급인가를 받지 않으면 실물을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때였습니다. 자료를 수집하려고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미주, 유럽 등지를 헤매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특히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통일원 자료실에서 마이크로필름을 열람하면서 메모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중에서도 통일원 자료실에서 북한 최초의 규범문법서인 ≪조선어문법≫(1949)의 마이크로필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형언할 길이 없었습니다. 본인은 두 번째 보고서의 끝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주체의 언어이론은 언어를 사회, 물질과 관련시키는 마르크스ㆍ레닌적 사고방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의 언어학자들이 전부터 주장해왔거나 현재 남한의 어문운동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세부에 들면 발음, 맞춤법, 어휘, 문법, 문체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부분이 상당하다.
언어ㆍ문자의 이질성을 극복한다는 것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거나 글을 읽을 때 상대방의 사정을 잘 이해하여 의사소통을 원만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가장 손쉬운 것은 북한 측의 전문서적은 물론, 신문ㆍ잡지를 비롯한 모든 간행물을 일반에게 공개하여 북한의 언어ㆍ문자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방송도 아무 방해 없이 서로 듣고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통일된 맞춤법을 제정하고 ‘남북한어휘사전’을 편찬해야 한다.
맞춤법은 원래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데올로기나 체제상의 차이가 반영되지 않은 단순한 표기상의 약속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면 공통된 맞춤법을 제정할 수 있다. 현재 남북한의 맞춤법은 표현의 차이만 제외하면 다 같이 형태ㆍ 음소적 원리가 기초가 되어 있다. 이와 함께 공통된 규범문법의 편찬도 기획되어야 한다. 체계에서부터 용어에 이르기까지 이질화된 부분이 상당하다.
어휘 분야는 이념이나 체제의 차이로 만들어진 것이 많기 때문에 맞춤법처럼 택일적 방법을 쓸 수 없다. 대조사전, 이를테면 ‘남한인을 위한 북한어 사전’, ‘북한인을 위한 남한어 사전’을 편찬하고, 이것이 성공하면 남북한 공동의 ‘한국어사전’을 편찬할 수 있다.
언어ㆍ문자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는 우선 남북한 간행물을 서로 개방하고 이와 함께 공통된 맞춤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적 측면에서는 남북한 언어학자들의 공동주제인 훈민정음, 주시경, 향가해독을 중심으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토론회를 열 수 있다. 실용적인 것이든 이론적인 것이든 이념적 요소가 희박한 문제나 양측이 다 같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를 중심으로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이질화 극복의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통일시대의 어문문제≫(1994), ≪북한의 언어문화≫(1998)에서 인용. 이 부분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고성환 교수가 메일로 보내 온 것임을 밝혀 둔다.)
지금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은 바로 본인이 1988년에 제안한 것이 성사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통일국어사전’ 편찬을 제안한 것이 연대적으로 본인의 제안보다 뒤지기는 하지만 누구든지 이런 문제에 관심을 쏟으면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남북이 함께 사전을 편찬하는 것은 그동안 이질화되어 있던 학교문법과 맞춤법을 비롯한 언어규범을 통일하는 과정이 될 것이고, 민족어가 한 군데로 집대성되어 공통된 민족의식을 배양하는 데에도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민족의식이 공통화의 길을 걸으면 자연히 정신의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는 바로 물리적 통합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정말 큰 일 하였습니다. 남북 언어 통합의 전제조건이 남북 공동의 사전임을 처음으로 제안한 본인이 그것이 실현되는 마당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옥에도 티가 있다는 데 몇 가지 티를 적어 볼까 합니다.
1. 접사와 어미를 수록할 때, 생산성이 없는 접사나 어미까지 넣는 것은 아니겠지요. 현재로는 조선어학회에서 펴낸 ≪큰사전≫의 수록 기준이 가장 타당하지 않나 합니다.
2. 북한이 처음 두음법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가로풀어쓰기의 문자개혁을 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도 이 문제가 깊이 논의된 바 있습니다.(졸저 ≪민족어의 수호와 발전≫(2008) 참조). 이제 가로풀어쓰기의 필요성이 없어진 이상 두음법칙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어두에 원음을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3. 자모의 이름 가운데서 ‘기역, 디귿, 시옷’을 ‘기윽, 디읃, 시읏’으로 규칙화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ㄷ, ㅂ’ 불규칙동사도 모두 규칙동사로 바꾸어야 합니다. 불규칙적인 명칭이 오히려 학습자를 긴장시켜 학습을 용이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4. ‘되어/ 되여’를 복수로 인정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북한에서 ‘되여’로 정한 것은 ‘하여’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두 어형은 성격이 다릅니다. 전자는 모음동화에 의하여 생긴 것이고, 후자는 여―불규칙형입니다. 이 문제는 본인이 오래전에 지적한 바 있습니다.(졸저 ≪통일시대의 어문문제≫(1994) 참조)
일제강점기에 맞춤법, 표준말 등이 완성되고 민족공통의 사전이 탄생되기까지는 조선어학회의 간사장을 지낸 이극로 박사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이 박사는 1948년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 때 평양에 머물러 북한의 어문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졸저 ≪민족어의 수호와 발전≫(2008) 참조) 남북 공통의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는 마당에 즈음하여 이극로 박사의 업적을 되새겨 그 정신을 계승하는 문제를 다 같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를테면 전집을 편찬한다든지 문화인물로 지정하여 평가의 기회를 갖는다는 문제가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