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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통합에 큰 역할하는 《겨레말큰사전》
김영희 / 중앙일보 대기자
오전에 발생한 서해 총격전 때문에 급히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 순서를 좀 당겨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분위기인데 제가 좀 흐름을 깨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국제정치 기자이므로 국어학이나 사전편찬에 대해서는 완벽한 문외한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들의 삶에서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화가 아마도 바벨탑 신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메르왕국에서부터 바빌로니아왕국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인간들이 교만해져가지고 하늘에 올라가겠다고 바벨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하느님이 보고 괘씸하기 짝이 없어 언어를 헝클어서 소통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 신화가 있습니다. 이 신화를 우리 현실에 적용시켜 보자면 남북을 분단시킨 것이 하늘의 뜻인지 어떤지는 판단할 자신은 없습니다만 소통과 통합에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잘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흔히들 우리와 독일 통일 사례를 비교해서 말합니다만 가장 기본적인 차이랄 수 있는 것이 독일은 애당초 절반밖에 분단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절반은 이미 통일이 된 상태에서 장벽을 허물었고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은 100% 아니 200% 분단된 상태입니다. 동독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은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는 처지이고 그런 점에서 보면 남북 언어의 이질화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외한으로 오늘 보고를 들으니 흥분됐는데, 이렇게 이질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2005년에 사업을 시작하여 국회에서 관련 법을 만들고 사전 편찬작업을 절반까지 이루었다는 것을 명색이 언론인인 저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겨레말큰사전》이 어떻게 여기까지 성공적으로 왔는지 살펴보니 국회가 법을 만들고 예산이 집행되면서 일체의 외부 간섭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북의 학자들이 오로지 우리말을 통일하여 좋은 사전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일체의 외부간섭 없이 하다 보니 성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성공의 원인이 (역설적으로) 홍보에 일절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업에 대해서 한 건 식으로 언론에 배포하고 해서 많이 보도가 되었다면 그 어떤 불순한 요소가 끼어들어 여기까지 진척이 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느낀 바가 대단히 많습니다.
요즘 남북관계를 보면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일진이퇴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정부는 부시정부가 8년 중 처음 6년 동안 추구한 대북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보스워스 방북 등
북한과 대화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북미 회담 후 6자회담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은 여러 변수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북한과의 관계는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우리보다 반 걸음 정도 앞서고 반 걸음 뒤에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미국이 세 걸음, 다섯 걸음 앞서가는 것 아닌가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일어날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어떤 형식이든지 통일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의 방식은 정책에 의한 점진적 통일이거나 빅뱅에 의한 갑작스런 통일이든지간에 어쨌든 통일은 반드시 일어나며, 법적인 정치적 통일로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문화적 사회적 통합이라는 과제가 그 뒤에 엄청난 과제로 남게 될 것입니다.
독일은 통일 20년을 맞았습니다. 정치적인 통합은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적인 통합이 되지 않아 동독과 서독 일부에서는 통일 이전을 그리워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사회적 통합이 안 된 것이죠. 동서독 주민들 사이에서 서로가 동쪽것들, 서쪽것들 이런 식으로 부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통일이 된다면 정치적 법적인 통일 뒤에 사회적 통합이라는 도전이 올 것입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바로 이 같은 사회적 통합, 과정으로서의 통일 사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만큼은 통일이 된 것입니다.
민족에서, 국가 경영에서 언어생활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새어휘를 10만을 발굴하고 서로 이질화된 언어를 통일하고 하는 것처럼 중요한 인프라 구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그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대단히 흥분됩니다.
오늘 제일 흥분한 게 현장어, 지역어 새로운 어휘 10만 개를 발굴해서 사전에 올린다는 점입니다. 대하소설 번역을 할 때마다 어휘 부족으로 고민을 하곤 했습니다. 어떤 언어학자가 하는 말을 들으니 우리 어휘가 같은 현상이나 사물을 두고 표현하는 어휘가 영어의 10분의 1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지는 자신은 없지만 우리의 어휘가 영어 어휘보다 많지 않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어휘 10만 개를 발굴 선정하여 사전에 올린다는 것은 문화적 혁명이고 민족사적인 대과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3년 《겨레말큰사전》이 출판될 때 10만 개 새어휘 발굴한 것을 별책으로 출판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많은 수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출판해서 어떡할 것인가 고민이 많을 텐데 디지털시대에 사전을 출판과정에서 디지털화해 놓으면 이런 엄청난 사업이 수용자, 사전 사용자들에게 폭넓게 활용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이라는 남북공동사업은 양쪽이 진정성을 가지고, 삿된 생각 없이 진행한다면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남북 양쪽의 그간 정치, 경제, 이산가족 회담도 여기에서 좀 배워야 되지 않는가, 벤치마킹할 모델이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이 작업을 일궈오신 여러분들께 만강의 축하와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