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레말이 만난 사람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하 사업회)는 보리 국어사전을 기획 · 감수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책 발간에 힘쓰고 계신 윤구병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윤구병 선생님하면 농부 철학자, 변산공동체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요. 1995년 교수자리를 내놓고 전북 부안의 변산으로 농사를 지으러 들어가셨다는데 어떤 계기로 어린이 <보리 국어사전>을 기획하신건가요?

1983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전국단체로 결성되면서 이오덕선생님의 추천으로 대학교수로서 최초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초등 국어사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80년 후반 기획실로 있던 보리출판사를 출판사로 등록하였습니다. 2000년 12월 쯤 보리출판사가 사전을 만들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면서 비로소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 졌습니다. 또한 사전 편찬팀을 ‘토박이 출판사’라는 사전만 만드는 출판사를 독립시켜 편찬실을 꾸려 5년 정도 계획으로 보리 국어사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북의 다른 체제와 문화 차이를 두드러지게
어느 한편을 들어 표현하는 말은 죄다 걸러내었습니다.“

보리 국어사전은 기존의 텍스트 위주의 <어린이 국어사전>과 눈으로 봐도 확연히 다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리 국어사전>의 4만여 개의 단어에는 7차까지 개정된 초등학교 교과서의 단어들을 쉽게 풀이 하여 넣었습니다. 또한 일본어나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시키고 쉬운 토박이말을 사용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입장’이라는 말을 ‘처지’라는 우리말로 바꾸어 실었습니다. 그리고 남북의 다른 체제와 문화 차이를 두드러지게 어느 한편을 들어 표현하는 말은 죄다 걸러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통일된 세상일 것이고,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더라도 상대방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나 비판을 갖지 않도록 남북 어린이들이 서로 만나서 소통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통일 지향적 아이들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보리 국어사전>의 2400점이 넘는 세밀화 작업을 위해 특히 생명체와 연관된 부분은 정확한 삽화를 찾기 위해 전국에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세밀화 화가들을 길러내는데 보리출판사가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 윤구병 선생님

<보리 국어사전> 편찬 시 올림말 작업에 공을 들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4만 5천의 올림말 중 800여 개 북녘의 올림말이 수록되어 남북의 어린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사전인데요. 북녘말 올림말 선정 작업과 집필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리 국어사전>에 올려져 있는 북녘말은 남녘에서는 쓰지 않는 북녘말이 800여 개이고, 남북에서 달리 사용하는 말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말들을 사전에 실었습니다.

북녘말 올림말 작업은 북녘의 《조선말대사전》에서 도움을 받아 사전에 올림말을 뽑고 풀이 하였습니다. 《조선말대사전》은 인민들이 두루 볼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 사전입니다. 저희는 시골 70-80대 노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풀이말과 용례를 써서 쉬운 사전을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잘 맞아 조선말대사전을 통해서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조선말대사전》으로 북녘말을 작업하실 때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요?

《조선말대사전》으로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어른들의 시각으로 사전이 반영되어 있고, 남녘에서 보면 편견을 가질 수 있는 풀이말과 용례로 되어 있어 작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쪽의 이념적 색체가 강한 것은 상대에 불쾌감을 줄 수 있으며, 남과 북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야 할 상대가 아닌 적대시 하는 쪽으로 오랫동안 교육이 되어 있어서 이런 것을 순화시키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필요할 때 들쳐보는 사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눈으로 즐겁게 보고
새로운 낱말을 익히는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보리 국어사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400여 점의 세밀화로 된 삽화라고 생각됩니다.
《겨레말큰사전》도 세밀화 작업을 하고 있어 특히 더 관심이 가는데요. 세밀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왼쪽) 마디꽃 : 안경자 그림,
(오른쪽) 각시붕어 : 박소정그림
* 보리 국어사전 세밀화 중에서

<보리 국어사전>의 세밀화 작업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명체’와 ‘남북의 민족유산’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 졌습니다. ‘군함’을 예로 들면 세밀하게 ‘포탄’이 어디에 있고 이런 것들은 다 빼고 평화지향적인 것 위주로 그렸습니다.

세밀화 작업은 남북이 당연히 함께 하려고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북녘에서도 초기에는 세밀화 작업의 중요성을 알고 작업이 잘 진행되었습니다만 재정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부득이하게 남녘에서만 세밀화 작업이 이루어 졌습니다.

세밀화 작업은 단순한 세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과 연관된 문화와 남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동식물을 중심으로 현재까지도 그려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필요할 때 들쳐보는 사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눈으로 즐겁게 보고 새로운 낱말을 익히는데 즐거움을 느낄 수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녘말과 북녘말 함께 수록한 사전을 만드셨던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이 함께 만들고 있는 《겨레말큰사전》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리 국어사전>이 서로 편견 없이 정서적인 걸림 없이 하나가 된 겨레가 되자고 만든 사전이지만 반영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단과 고저를 제대로 정확하게 표준화시켜 사전에 넣지 못한 것입니다. 각 지역의 발음을 모아서 장단과 고저를 표준화하는 것은 매우 힘든 문제입니다. 하지만 표준 음성으로 발음이 되어야 완전하게 문자로 옮길 수 있으므로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겨레말큰사전》이 절반이나 진행 된 상태이므로 발음사전(성음사전)이 반영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음성이 문자로 손색없이 옮겨지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므로 가능하다면 《겨레말큰사전》도 지금부터 준비를 해 나가셨으면 합니다.

《겨레말큰사전》 세밀화 작업과 관련하여 이미 그려져 있는 세밀화는 새로 그리지 말고 <보리 국어사전>에 나온 것을 쓰면 재정적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밀화 관련하여 보리출판사와 협의하고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것이나 목록에 없는 것만 새로 그려서 《겨레말큰사전》에서 이용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구병

1943년 전남 함평 출생하여 ‘뿌리깊은 나무’의 초대 편집장, 충북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었다. 1995년 부안에 변산공동체를 세우고 변산공동체 교장선생님으로 아이들도 가르쳤다. 저서로는 <보리 국어사전>, <도토리 사계절 그림책>, <잡초는 없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