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시 《旌門村(정문촌)》의 한 구절이다. “정문집 가난이”의 ‘가난이’는 함경도 사투리로, 한자어 ‘家(가)’와 ‘난이[나-+-ㄴ+-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그 말뿌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가난이’는 ‘집을 떠난 사람’ 곧 ‘시집간 딸’을 이르는 말이다. 북녘에서 간행된 <조선말대사전>에는 ‘집난이’라는 말이 실려 있는데, 이 또한 ‘집’과 ‘난이’가 결합된 것으로 ‘집을 난 사람’ 곧 ‘가난이’가 되는 것이다.
사람됨이 서글서글하고 귀밑머리에 서리가 앉은 안주인은 나들이 온 {집난이를} 대하듯
복녀를 반갑게 맞았다. 《김보행: 봄눈이 내린다》
래일 내 가서 신신당책3을 하여놓고 {집난이} 몸이 낫는 대로 인차(인제) 보내겠수다.
《리원길: 두루미 며느리》
얌전하게 시집으로 돌아가는 {집난이를} 보내 놓고는 동네 젊은 장난꾼들이 말하는 것이었다.
《안수길: 북간도》
그러나 남측에서 간행된 사전에는 ‘시집간 딸’을 뜻하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해야 ‘출가외인’ 정도의 말이 떠오르는데, 이는 가부장적 사회가 끌어낸 구시대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우리 겨레의 말에는 ‘가난이’와 ‘집난이’와 같이 ‘시집간 딸’을 정겹게 부르는 말이 있음에도 그것들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표준어에 짓눌려 평북이나 함남 등지에서 쓰는 사투리 정도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백기완의 《장산곶매 이야기》의 한 대목을 들여다보자.
때는 이때다. {암난이들만} 빌란 법 있나. 에라,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장가 못간 {숫난이} 놈들도 줄줄이 닭을 메고 구월산으로 구월산으로 몰려들 가는데, 어떤 성깔 급한 놈은 자기집 장닭뿐이 아니고 남의 집 닭까지 왕창 왕창 서리를 해다가 … 《백기완: 장산곶매 이야기》
‘암난이’는 ‘숫처녀’, ‘숫난이’는 ‘숫총각’의 겨레말이다. <장산곶매 이야기>가 황해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라고 해서 ‘암난이’와 ‘숫난이’를 ‘가난이’나 ‘집난이’와 마찬가지로 황해도 사람들만이 쓰는 사투리로 내몰고 말 것인가?
그 원장님은 너무 {고진이라서} 탈이랑께. 《조정래: 태백산맥》
학동어른이야 말로 가근방이 으뜸가는 {고진이} 아이가! 《겨레말큰사전》
‘고진이’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쓰이는 겨레말로 ‘심지가 곧고 고지식한 사람’을 뜻한다. ‘고진이’는 ‘곧은[곧-+-은]’과 사람을 뜻을 더하는 ‘-이’가 결합된 ‘곧은이’가 ‘고든이>고진이’와 같은 소리의 변화를 겪은 겨레말이다. ‘고진이’와 뜻이 비슷한 표준어로는 ‘강항령’과 ‘목곧이’를 들 수 있는데, ‘강항령(强項令)’은 한자어이며, ‘목곧이’는 어인 일인지 ‘억지가 세어서 남에게 호락호락 굽히지 않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그러나 현옥의 {목곧이} 성미를 아는 까닭에, “내일 가보지요.” 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한설야: 황혼》
그렇다 ‘갓 난 사람’은 ‘갓난이’, ‘막 난 사람’은 ‘막난이(>망나니)’, ‘못난 사람’은 ‘못난이’인 것처럼 ‘집 난 사람’은 ‘집난이’이고, 어떤 일에 ‘질난(길난) 사람’은 ‘질난이(길꾼)’인 것이다. ‘가난이, 집난이, 암난이, 숫난이, 고진이, 질난이’ 모두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겨레말이다!
노름에 지 아무리 밝은 {질난이래두} 그판에서 돈 불어 부재됬단 소린 못 들었소. 《겨레말큰사전》
- 1) '족제비'의 평안도 사투리
- 2) '말꾼'의 북녘말
- 3) '신신당부'의 중국 동포들의 말
※ 이 글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족화해지 5-6월호에도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