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새어휘팀은 전라북도 지역에서 세미나를 겸해 모임을 가진 바 있다. 원광대학교에서의 세미나가 끝난 뒤 우리 일행은 금강 하구둑으로 식사를 하러 갔는데 도우미 아주머니로 부터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소국주의 유래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귀를 사로잡은 것은 ‘앉은뱅이술’이라는 말이었다. 소국주가 달아 홀짝홀짝 마시다보면 취해서 앉은뱅이가 된 채로 일어나지를 못 한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었다. ‘앉은뱅이술’이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몰라도 말의 의미와 맛을 생각해볼 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촌철살인의 조어력이 따로 없었다.
일반 대중이 만든 속된 말들을 가만히 음미해 보노라면 무릎이 쳐질 때가 많다. ‘떴다방’이 그렇다. 아파트 분양현장 주변을 보면 중개업소(방)들이 돈을 벌기 위해 순식간에 ‘떠서’ 가건물이나 파라솔을 쳐놓고 불법으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일을 마치면 며칠 만에 또 철새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럴 때에 ‘방이 떴다’는 말, 누군가 만든 이 ‘떴다방’이라는 기막힌 어휘가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뚝심’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써의 ‘똥심’도 그렇다.(북측 새어휘 6차분) 누군가에게 살가운 어조로 “똥심 좀 써 봐라!”라고 했을 때 그 말맛은 ‘뚝심’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 그렇게 보면 비속어의 문제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똥’으로 시작되는 어휘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똥’으로 시작되는 어휘들을 보노라면 살가우면서도 말맛이 살아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조금 과장되게 폼잡는다하여 ‘똥폼’, 바닷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갈매기를 ‘똥새’, 마찬가지로 어망에 쉽게 잡히는 흔한 고기라 해서 점넙치, 도다리 등을 두루 일컬어 ‘똥가재미’(남측 새어휘 8차분), 허투루 크게 부르짖거나 외치는 소리로 ‘똥고함’(남측 새어휘 13차분), 노름 따위에서 끗발이 나빠지는 것으로 ‘똥끗발’(남측 새어휘 13차분), 똥을 먹는 잡종 개의 새끼나 자기나라와 민족을 배반하고 적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 또는 앙증맞은 자식에게 하는 살가운 표현으로서의 ‘똥강아지’(남측 새어휘 13차분) 등의 어휘가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주옥같은 어휘들이 많다. 작가들이 만든 어휘가 그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은 그런 어휘에 생명을 불어넣는 한 차원으로서 옥석을 가려 좋은 어휘들은 과감히 사전에 올리고자 한다. 이를테면 주름살을 비겨 이르는 말로서‘살이랑’이라는 어휘를 만든 김초혜 시인의 경우가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계몽기 소설로 나온 최찬식의 <춘몽>(1924)을 보면 ‘눈곱’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눈똥’(북측 새어휘 7차분)이라는 어휘를 만들어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눈똥’ 역시 ‘눈곱’과는 전혀 다른 정서적 호소력과 말맛을 풍겨내고 있다는 점에서 옛 책에만 묵혀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다. ‘종가슴’(북측 새어휘 7차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그마한 가슴 또는 조마조마한 가슴으로서의 ‘종가슴’이라는 어휘는 되새겨볼 수록 말맛이 살아나는 경우이다. 몹시 추운 겨울을 ‘쇠겨울’(남측 새어휘 6차분)로 명명한 경우도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 중에 ‘섹시하다’가 있다. 이 말은 성적 매력이 있을 때 사용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관능적이다’ 또는 ‘산뜻하다’로 순화시켜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관능적이다? 산뜻하다? 왠지 부족한 느낌이다. 이 말과 관련하여 《겨레말큰사전》 새어휘 19차분엔 ‘색스럽다’라는 어휘가 올라와 있다. 이 밖에도 새어휘 19차분엔 ‘색스러운’ 어휘가 많다. 살 시중하는 보살이라 하여 ‘살보살’, 몸을 파는 일이라 하여 ‘살품’, 성교를 또 ‘살요기’로 대체하고 있다. 재미있는 말들이라 할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은 기존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지역어를 대폭 싣고자 한다. 서울말과 함께 각 지역의 말들도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의 여러 지역 말을 아우르는 민족공통어 사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존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아름다운 고장말은 참으로 많다. 이를테면 강원도말로서 어부가 배를 바다에 올리거나 내릴 때 하는 지레질을 ‘둔데질’이라고 한다. [“둔데질로 배를 띄워/ 우리가 바위와 바위 사이/ 작은 선창을 떠나면”, -고형렬 <옛 선창> 중에서]
‘개구리’의 황북, 평남, 평북, 자강 사투리는 ‘멱장구’이다.(북측 새어휘 13차분) ‘당감주’는 ‘식혜’의 함남 지역 사투리이고(북측 새어휘 6차분), ‘몽어’는 ‘숭어’의 전북 사투리이다.(남측 새어휘 8차분) 지역말을 찾고 그 뜻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조사하다보면 새롭게 밝혀지는 일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갓사둔’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백석 시인의 시에서 추출한 평안도 어휘인데 그 원전에 ‘갖사둔’으로 되어 있으나 모두들 ‘갓사둔’의 오기(誤記) 쯤으로 보고 그렇게 표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갓사둔’은 말 그대로 방금 새로 인연을 맺은 사돈이 된다.
‘갖사둔’의 ‘갖’은 표준어 ‘이제, 막’의 뜻을 지닌 ‘갓’에 해당하는 말이다. 함경도와 평안도 방언에선 ‘가즈’라 한다. 즉 ‘가즈’가 줄어든 말이 ‘갖’이고, ‘갖사둔’은 곧 ‘갓사둔’이 된다. 하지만 현장 어휘 조사를 하다 보니 이 ‘갖’이 ‘갓’의 오기가 아니라 ‘가지’에서 온 말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갖사둔’은 ‘새사둔’이되 ‘이제 막’ 사돈이 되는 의미에서의‘갓사둔’이 아니라 새로운 ‘가지 사둔’이라는 의미에서 ‘갖사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좀 더 확인에 확인을 거쳐야 판명이 될 사안이지만 으레 그럴 거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은 이 밖에도 기존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뜻으로 쓰인 어휘를 ‘새말’로 삼아 다루고자 한다. 이를테면 ‘생가슴’이라는 어휘는 공연한 근심이나 걱정으로 인하여 상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은 시인은 그것을 ‘숫된 마음’으로 그 쓰임을 달리해 사용하고 있다. [“나 시집오기 전에/ 생처녀 생가슴으로 그 모양을 보았어라”, -고은 <자장가> 중에서] 쓰임이 다른 말 하나하나가 우리말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 또한 새말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