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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 우체통

전의 전쟁은 우리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그때 포격으로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남과 북,가까이는 한 마을 안에서도 많은 것이 무너져 내렸다. 증오의 크기만큼 서로에 대한 추억도, 혈연도 그 렇게 무참하게 무너져 전후 우리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남과 북은 두텁고 높게 경계의 담을 쌓아올렸다. 이산의 고통은 더욱 현실적이어서, 북에, 남에 남은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핍박을 받고, 언제 불쑥 다가올지 모를 횡액에 안절부절 마음을 조리는 처지가 되었다. 전쟁은 그렇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금들을 그어 놓았다. 전쟁의 참화로 몇 만 명이 죽었다는 통계 보다 이것이 더 무서운 일이었다. 남과 북에서 반대쪽을 건너다보는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 금기였고 결국 민족 전체의 상상력이 닫혀 버렸다.

전쟁의 결과, 남과 북은 각각의 체제를 극단으로 밀고 갈 수 있었다. 북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바탕으로 '인민'들을 물샐틈없이 무장시키고 자력갱생의 외길로 나아갔다. 북한 전역이 초토화되고 그쪽 체제의 입장에서 볼 때 이질적인 분자들이 월남하여버린 조건에서 북의 체제가 한쪽 방향으로 일색화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길이었는지 모른다. 남은 어땠는가. 격렬한 전쟁과정을 통해 반상이 사라지는 등 단일한 '국민'이 탄생했다. 강력한 반공주의가 힘을 얻고 국가의 힘이 만능인 사회가 되었다. 전쟁을 통해 비대해지고 효율적인 행정체제를 갖추게 된 군부가 이후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은 어찌 보면 예고된 수순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대와 관료를 앞세운 노동집약적 수출전략은 바로 이같은 전쟁의 유산으로 남겨진 사회구성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80년대 중반까지의 풍경만으로 보자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일사분란, 총력동원체제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쟁 이후 수십 년 남과 북은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기대며 각각의 체제 전략을 밀어붙였다.

60년. 이제 전쟁의 기억과는 무관한 세대들이 남북 각각에서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쟁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세대를 넘어 전승되어 왔다. 반공웅변대회, 전쟁 포스터와 구호, 교련, 학도호국단은 사라졌지만 민방위 사이렌이 상징하는 전쟁의 공포감은 여전히 우리 사회 밑바닥 무의식을 지배한다. 북은 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혁명중'인 나라다. 북의 사회체제는 전쟁의 기억을 중심으로 60년 동안 단단하게 구조화되어 왔으며 남북의 대결체제가 상존하는 한 그 모습을 바꾸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구나. 때로 잊고 살지만 한반도의 양쪽 사회는 모두가 휴전체제 아래 성립되어 있는 '과도기' 공화국이란 사실에 새삼스레 전율한다. 전쟁의 참화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손님처럼 느닷없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우리 삶의 시간은 곳곳이 지뢰밭이라는 것. 이것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한반도의 미래는 없다는 아픈 각성에서 우리는 전후 60년을 거쳐 온 현 체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이 각각 걸어온 60년의 삶을 인정하고 보듬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시간들이 진정으로 '전후'가 될 수 있다.

통일국어사전을 만들자며 남북을 오가며 만난 지 5년째가 되어간다. 남북의 긴장이 높아질 때 우린 농담반 진담반으로 "총알이 오고가도 우리는 만납시다." 이런 말끝에 헤어지는 악수를 하곤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총알이 오고 간다면 우리는 어찌 될까. 아마도 각자의 내부에서부터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한가한 소리 하고 있나", 정신 나간 축 대접 받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도 말은 섞고 살아야 한다. 가장 어려운 때에도 서로가 숨 쉴 틈, 우스개를 건넬 휴지의 공간을 만들어야 상대방을 인간의 숨결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말길이 끊어질 때 오해가 깊어지고 끝내 갈라서게 마련이다. 그런데 꼭 그 길을 가야 하나. 말길조차 끊어버리고 60년 전처럼 그렇게 다시 증오의 낯빛으로 돌아가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제압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인가. 전쟁의 기억이 남아있는 6월에 돌이켜봐도 그건 아니다. 그런 야만의 시대는 20세기로 족하다.

남과 북의 영토적 통일은 어찌 보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60년 이상 오랜 내상을 앓아온 사람들의 통일은 그런 쉬운 길로 가는 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내면의 통일, 마음의 통일은 어제의 적이었던 사람과 함께 울고 웃으며 오래 대화하고 상대를 껴안을 때 가능한 것이다.

6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 잔혹한 죽임과 이산의 기억이 남아 있다. 매번 6월이 오면 전쟁이 남긴 상흔을 우리는 남은 반쪽의 삶으로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달력을 들여다보자. 총칼을 들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전면 부정했던 6.25가 있다면 '서로의 상처와 영광'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야 비로소 통일이 가능하다며 손을 내밀었던 6.15가 같은 달에 함께 존재한다. 그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의 깊은 의미를 놓치지 않을 때, 오래 세월 묵혀온 이 깊은 상처는 비로소 아물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말은 섞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