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남혜경 / 사할린국립대학 교수
사할린주의 주도 (州都) 유지노사할린스크시 재래시장에서 사할린동포 2세 간에 주고 받는 인사말이다. 3개국 언어로 대화가 오고 간다. 이곳 동포들이 모국어로 대화 할 때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소련시대에는 한국어 교육은 물론 한국어 사용도 금지되었던 탓에 젊은 세대들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한국어는 외국어로 배우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동포 가정에서도 부모 자녀 간에 러시아어로 대화를 한다.
동포들 중에 모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들은 50-60대의 2세들이다. 이들 간에 모국어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모국어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1세인 부모들이 러시아어를 구사하지 못한 덕분이기도 하고 또 해방 직후 귀국준비 차원에서 개설되었던 조선학교에서 모국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할린 지역에서는 모국어로 된 출판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1세들의 지식수준은 매우 낮았고 2세들도 제대로 된 모국어 교육을 받지 못해 모국어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의 어휘는 가족, 친구 간에 오고가는 일상회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모국어를 구사할 때 추상적인 단어는 러시아어로 대체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겨레말 조사는 동포들 간의 대화 속에서 고유의 말을 줍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의 언어생활의 특징을 보면, 경상도 억양으로 경상도나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군데군데 일본어나 러시아어 단어를 끼어 넣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언어적 습관은 과거 이들이 걸어온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경상도 출신의 1세들이 많았던 점, 해방 후 남한과는 교류가 단절되고 2세들은 북한 교과서로 북한 출신 교사들에게서 모국어 교육을 받은 점, 또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요당했던 경험들이 언어에 축약되어 있다. 이들은 모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3개 국어를 구사하지만 어느 언어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열등감과 슬픔을 느낀다.
현재까지 조사된 말 중에서 현지의 특수성이 잘 반영되어 있는 어휘를 몇 가지 소개해 보자.
"옥주 가시나 부모들하고 우리하고 동상간 놀았지. 주로 고향쟁이들끼리 동상간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장백했어. 큰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서로 돕고 살았어."(동포 2세들 간 대화 속에서)
'동상간 놀다'란 의형제를 맺었다는 의미이고, '고향쟁이'는 동향인, '장백'은 맏형을 의미한다. 모국의 부모형제들과 편지도 주고받지 못하는 외로운 타향살이를 이겨내기 위해 가까운 이들이 형제의 연을 맺어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1세들은 러시아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을 '해방떡'이라고 불렀다. 이는 사할린 땅의 새 주인이 되어 대륙에서 건너온 러시아인들을 동포들이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외에 모국어의 의미가 축소되어 사용되는 예로는 '잔치'가 있다. 사할린동포사회 내에서 잔치는 '결혼식 또는 결혼 피로연'을 가르킨다. 돌 잔치나 환갑연의 경우는 잔치라는 말을 빼고 단순히 '돌한다, 환갑한다'라고 한다.
러시아어에서 유래된 대표적인 어휘로는 동사 '놀다'와 형용사 '날카롭다'가 있다. "그 배우 차-암 잘 논다"는 말은 '연기를 잘 한다'는 의미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문제가 날카롭게 서있다'라고 표현한다. 또 이브(eve)를 '전야(前夜)'로, '산타클로스'를 '추위할아버지'로 번역해 사용하는 등 외래어 기피 현상도 찾아 볼 수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한국을 방문한 동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한국어에 외래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지적이라고 본다.
최근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사할린동포사회의 교유성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언어 생활도 물론 그렇다. 이러한 점에서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겨레말큰사전》해외 우리말 조사 사업은 매우 절실하고 의의가 큰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 남혜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