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조재수 /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
사전 편찬은 말(어휘)을 캐고 풀이하는 일이다. 그 하는 일이 역사학자가 역사 사실을 캐고 밝히는 일과 비슷하다. 역사적 사건과 경험은 주로 언어로 전해진다. 그러면 역사 자료란 모두 진실한 것일까? 사건의 언어 자료란 전하는 사람이나 기록한 이의 생각과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역사의 객관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심한다. 역사 자료(텍스트)에 대한 검증과 해석을 끊임 없이 되풀이한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 없는 대화”라고 한 영국의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 Carr. 1892~1982)의 생각도 그러한 것이었다. [참고] <조지형: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 랑케&카>(김영사. 2006)
언어 사전 편찬도 그렇다. 역사 자료에 대한 검증, 해석과 마찬가지로 사전 편찬에서도 어휘 자료에 대한 검토와 바른 해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어 자료나 역사 자료는 과거의 자료이며 현재의 자료이다. 사전 편찬의 대상 또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어휘 자료들이다. 언어 사전 편찬자가 한 어휘를 해석하는 일은 그 어휘의 형태와 뜻바탕을 면밀히 밝히는 작업이다. 그러자면 편찬자는 그 어휘와 많은 시간을 머리 속에서 또는 언어 현장에서 묻고 답해야 한다. 무언가 밝힐 수 있을 때까지, 또 한번 터득한 것도 다시 생각하여 제대로 밝힐 때까지의 과정들이 바로 편찬자와 어휘와의 꾸준한 대화라 하겠다. 겨레말에 담긴 겨레의 소리와 의미와 정서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우리 사전 편찬자들은 우리말 어휘와 얼마나 깊은 대화를 해 왔을까? 낱낱의 말에도 역사가 있다. 낱말이 생겨나고 변하고 뜻이 더해지고 축소되기도 하는 변천 과정이 그 낱말의 역사이다. 말은 또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의 낱말이 쓰이기도 하고, 같은 낱말이라도 그 쓰임새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낱말과의 대화란 그 말의 시간과 공간의 자취를 두루 캐는 작업 과정이다.
국어사전 편찬의 역사가 100년이 되었다. 우리말 뜻풀이 사전 편찬의 처음은 1911년 주시경(1876~1914) 선생과 몇몇 제자들이 조선광문회서 시작한 <말모이> 편찬이었다. 이 첫 시도는 불행히도 미완성에 그치고 말았다. 전해 오는 우리말 사전의 기본 자료는 1910~1930년대의 올림말과 풀이된 내용들이다. 조선광문회의 <말모이> 원고는 극히 일부가 전한다. 조선어에 일본어로 풀이를 한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은 1920년에 나왔다. 한자어 40,734 어휘, 언문어 17,178 어휘, 이두 727 어휘, 모두 58,639 어휘였다.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은 1938년에 초판, 1940년에 수정 증보판이 나왔고, 약 10만 어휘였다. 한글학회(전 조선어 학회)의 <조선말 큰사전>(나중에 ‘큰사전’)은 1929년에 시작하여 1957년에 완간되고, 올림말이 164,125 어휘였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에서 많은 국어사전이 나왔으나 이 글에서 그 사전들의 소개는 줄이기로 한다.
새로운 사전 편찬에서 기존 사전을 참고할 때는 당시 편찬자의 풀이 내용과 표현을 잘 읽어야 한다. 섣불리 늘이고 줄여서 재생산할 일이 아니다. 잘 파악된 기존의 풀이에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하고, 표현이 어렵고 불분명하다면 글다듬기를 할 필요가 있다. 또 오늘의 시점에서 모자라는 뜻갈래가 있다면 풀이를 더해야(보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편찬자는 문제의 어휘와 용례들과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오늘날 사전 편찬의 환경은 필자가 경험한 1960~1980년대 이전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졌다. 펜과 카드로 편찬하던 시대에서 컴퓨터로 편찬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카드 박스로 짐차에 가득할 분량이던 편찬 자료가 각 편찬원의 컴퓨터에 들어 있게 되고, 또한 많은 참고 문헌 자료가 컴퓨터에 갈무리되어 어절 단위로 관련 내용을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겨레말 큰사전 편찬 사업회’ 남측 편찬실에는 1억 어절이 넘는 인용 말뭉치를 구축하여 활용하고 있다.
어떤 분야든 관련 연구 자료는 많을수록 좋다.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그만한 활용 가치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말한다. 거대한 편찬 자료의 활용은 편찬 사업의 규모와 계획 기간에 따라 두루 섭렵할 수도, 그 일부를 열람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 얼마 안 되는 인력으로 3년이나 5년 정도에 완성해야 하는 계획이라면 그렇게 많은 자료의 섭렵은 어려울 것이다. 각종 연구 자료 구축에는 양에 못지않게 질적인 고려도 따라야 한다. 자료는 많을수록 좋되 정리된[定本] 자료가 많아야 한다. 여러 이본들의 집합체는 편찬자가 가려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게 하고 또 잘못된 자료를 적용하게도 한다. 실제로 잘못된 자료를 적용한 사례가 기존 사전들에서 발견된다.
어떤 분야에 첫 삽을 뜬 이들은 먼저 그 일에 남다른 뜻이 있었고, 그 일을 사명으로 생각한 이들이다. 우리말 사전의 처음인 <말모이> 편찬을 시작한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 혼자서 사전 편찬을 단행한 이상춘(李常春1882∼?)과 문세영(文世榮. 1895~1952), 조선어 학회 사전 편찬 실무의 선구자로 함흥 감옥에서 희생된 이윤재(李允宰. 1888~1943) 선생 등도 그러한 분들이다. 그들은 사전 편찬으로 죽어가던 겨레말의 생명을 지키고자 한 선각자들이었다.
오늘날 사전 편찬인은 필요한 시기에 한동안 종사하는 연구원이나 직업인이다. 사전 편찬을 이끌 전문인은 드물고, 반면 ‘사전학’을 강의하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 우리말에 대한 상식과 지식을 갖춘 이들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고유 언어가 있고, 고유 언어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 그릇을 채우는 이가 사전 편찬인들이다. 우리 사전 편찬은 지속적인 연구 사업이 되지 못해 전문 인력이 길러지지 못하였다. 편찬에 대한 이론이나 실무는 착실한 언어학적 지식에서 비롯된다. 언어학도로서 자기 언어를 직접 다루어 분석하고 정리하고 풀이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편찬 실무에서 익혀진다. 여기에 국어사전 편찬 전문 기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까닭이 있다.
세태는 점점 세계화 속에 밖으로만 향하고 있다. 우리 것을 돌아볼 생각과 겨를은 없어 보인다. 국어 교육은 입시 교과목으로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말 어휘는 한자나 영어(또는 영어식) 단어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나라의 위기 속에 사전 편찬으로 겨레의 말을 붙들고자 했던 선각자들의 뜻을 함께 되새겨보자. 100여 년 전 주시경 선생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자.
이 때를 타고서, 외국의 말과 글은 바람 따라 흐르는 조수에 밀려 닥치는 사나운 물결처럼 몰려 들어와, 미약한 국성(國性)은 전쟁에 진 싸움터의 고달픈 깃발처럼 움츠러지니, 이 때를 당하여 국성을 보존하기에 가장 소중한 제 나라 말과 글을 이 지경에 두고 도외시하면 국성도 날로 쇠퇴할 것이요, 국성이 날로 쇠퇴하면 그 영향이 미치는 바는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나라 힘의 회복은 바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말과 글을 조사하여 바로잡아서 이를 장려함이 오늘의 급한 일이라 하겠다. <주시경: 조선어 문전 음학(머리말)>(1908. 박지홍 풀어 씀)
*(다음 호부터는 국어사전 속에서 얘깃거리를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