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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보물 찾기

재일 교포들의 독특한 언어 ‘짬뽕말’

_ 김미선 /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외래연구원
겨레말큰사전 일본 지역 우리말 조사자


  마 전 한국어 공부를 함께 하는 일본 학생들이 서울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내게 물었다. “선생님, 한국에서는 ‘지지미’라는 말이 없어요! ‘카쿠테기’를 부탁해도 못 알아들어요!”
그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며 최근의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을 사랑하기 시작한 학생들이다. 한국음식도 좋아하게 되어, 한국식당에도 자주 다닌다. 그런데 지지미, 카쿠테기 등 한국식당을 다니며 열심히 외워 둔 한국어가 정작 한국, 서울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이 곳 일본, 특히 오사카에서 접하는 한국 음식과 명칭에는 한국의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와 같은 남도 문화권의 영향이 강하다는 것까지 학생들이 파악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일본어가 되다시피한 ‘지지미’와 ‘카쿠테기’가 이곳에서 1세기를 살아온 재일교포의 식문화에서 전달된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지미와 카쿠테기는 1세들과 함께 그들의 고향에서 건너온 '지짐(부침, 전)'과 '깍떼기(깍뚜기)'에서 기원된 말이다.

  본에는 현재 약 60만의 재일 교포가 거주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 건너와 어렵게 정착 기반을 마련한 1세들이 만든 재일교포 커뮤니티는 2세 3세들에게 정착이 되어 현재는 4세 5세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재일교포 커뮤니티 특징은 민족문화의 계승에 있을 것이다. 전국에 교포 거주지역이 있으며,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민족문화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민족학교를 두고 있다. 각 지역에는 식문화를 전달하는 시장이 있어 명절에는 한국시장 못지않게 붐비기도 한다. 관혼상제를 한국식으로 치르며, 세대가 바뀌어도 아이들에게 한국식 이름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일본 학교를 다니며, 일본의 음식을 즐기고 한국식 이름 외에도 일본식 이름(통명)으로 생활하고 있다. 한국의 민족문화를 계승한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언어는 대부분이 일본어로, 한국어가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언어에 한해서는 다른 문화적인 내용에 비해 언어를 계승하기에는 특별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며 더욱이 일본사회의 혹심한 차별과 편견 속에서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사용하게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세들조차 태어나서 사용해오던 조선어를 차별을 받는다는 이유로 기피해왔다는 증언을 당사자들로부터 접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일본어가 생활언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아직도 한국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친족 명칭이나 음식, 관혼상제 등 한국의 문화적인 내용을 담은 용어들이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오모니’, ‘아보지’라고 호칭한다. 조부모는 ‘함메’, ‘하루베’, 고모와 이모는 ‘고모니’, ‘이모니’로 불린다. ‘어머니’가 ‘오모니’로, ‘아버지’가 ‘아보지’로 호칭되는 이유는 이 곳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들의 모어인 일본어의 음구조가 한국어에 발음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일본어는 모음이 다섯 개(a,i,u,e,o)로 이 다섯 모음에 벗어나는 한국어의 모음은 이 다섯 모음 중의 비슷한 모음으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함메’와 ‘하루베’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언형인 ‘할메’와 ‘할베’가 일본어 개음절 음절구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고모니’,’이모니’도 마찬가지로 일본어의 개음절 영향으로 받침이 생략된 예이다.
  이와 같이 일본어의 영향으로 변형된 한국어는 발음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법 어휘 표현 전반에 걸쳐 찾아 볼 수 있다.

  곳에서는 ‘짬뽕말’이라는 재일 교포가 사용하는 독특한 언어가 존재한다. 학술적으로는 코드스윗칭(Code-Switching), 코드믹싱(Code-Mixing)이라 불리며, 언어 병용화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짬뽕말은 재일교포가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현상이 이곳 식으로 명칭화 된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일본에서는 국에 밥을 말아먹는 습관이 없는데(밥에 오차를 부어먹는 오차즈케와는 다른 방식이다.) 이곳의 한국인들은 국에 밥을 말아 먹을 때, ‘마라스루’, ‘모라스루’, ‘조망스루’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이들 표현에 사용되는 ‘스루(する)’는 한국어의 ‘하다’와 일치하는 동사형으로 앞부분의 ‘마라’는 ‘말다’의 연용형 ‘말아’(마라)이고, ‘모라’는 남부 방언형 ‘몰다’의 연용형 ‘몰아’(모라), ‘조망’은 제주 방언의 ‘좀다’의 연용형 ‘조망’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한국어의 연용형에 일본어의 동사형으로 재생산된 ‘짬뽕말’은 1세들이 주로 모이는 시장이나 학교, 그리고 가정 내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민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나누는 잡담에서 들려오기도 하며, 교포가 주최하는 집회나 이벤트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젊은이들에게는 ‘짬뽕말’에 사용되는 한국어가 일본어로 인지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대교체와 함께 사용언어도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교체되었지만, 1세들이 고향에서 사용하던 생활문화와 언어가 세월과 함께 일본어 환경에 잔존되어 있는 것이다.
  재일교포가 이곳에 정착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곳 일본의 한국 커뮤니티는 여러 면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해외 여행자유화 이후에 건너온 ‘뉴커머’들이 교육과 경제활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약을 하고 있으며, 한류 붐으로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사회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한국의 생활문화를 보는 일본의 시선에도 편견적인 요소가 사라져 가고 있다. 기뻐하고 환영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긴 세월을 차별과 편견의 역경을 견디며 일본사회에서 민족문화를 보존해 온 ‘올드커머’의 노력과 수고도 기억되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1세의 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가고 있지만, 1세들이 생활해 온 흔적들은 이곳에서 사용되는 우리말과 일본어에 잔존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적 상황에 대해서도 시급하게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