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현의 발길은 {돌사닥다리가} 시작되는 산기슭까지가 고작이었다. / {돌사닥다리가} 끝나고 길이 한결 평평해지자 그는 노부인의 손을 뿌리치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렀다.《박완서: 오만과 몽상》
박완서의 소설에 나타나는 ‘돌사닥다리’는 “돌이나 바위가 많아 매우 험한 산길을 사닥다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 “《돌바위에 난 층이 진 험한 산길》을 사닥다리에 비겨 이르는 말(《조선말대사전》)”, “돌이 많아 몹시 험한 산길을 사닥다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고려대 한국어대사전》)”로 풀이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돌사닥다리’를 [돌+사닥다리]와 같이 분석하고, ‘사닥다리’가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을 오르내릴 때 쓰는 도구’의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지난 호에 ‘돌각다리’의 뜻풀이를 검토하면서, ‘돌사닥다리’의 뜻풀이가 애초부터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돌사닥다리’는 맨 처음 등재된 사전은 1920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돌사닥다리 [명] 山中の巖石多き險阻なる路. (돌가닥다리).
서흥서 봉산으로 오는 길에 길을 보지 안코 한눈 팔다가 {돌사닥에서} 굽 하나를 몹시 접질리더니··· 《홍명희: 임꺽정》
개천의 {돌사닥을} 벗어나니 금방 야트막한 잘록이가 나타났다. 《김주영: 객주》
위의 예처럼 ‘돌사닥’이 [처소]를 나타내는 토 ‘에서’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과 ‘개천의 돌사닥을 벗어나니’의 표현으로 유추해 보면 ‘돌사닥’이 ‘어떤 지형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돌사닥’은 [돌+사닥]과 같이 분석될 수 있으며, ‘돌’과 관련된 어떤 지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돌사닥’은 《조선말대사전》의 ‘돌서덕’과 무관하지 않다. ‘돌서덕’
은 ‘돌이 많은 강이나 내의 바닥’이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개천의 돌사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 ‘돌사닥’은 강이나 내에 한정된 지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방이 훤히 트인
{돌사닥길에} 달빛이 마전한 무명처럼 허옇게 깔리고 멀리 바라보이는 숲에서는 초겨울바람이 스산하게 숲을 가르고 있었다.《김주영: 객주》
{돌사닥길은} 멀리까지 훤하다가 문득 숲과 마주쳐서는 흔적도 없이 땅속으로 잦아지고 있었다.《김주영: 객주》
{돌사닥길이어서} 눈 어두운 나귀는 자주 돌을 차고 주춤거렸다.《김주영: 객주》
위의 예처럼, ‘돌사닥길’은 ‘사방이 훤히 트인’ 숲속에 있는 길이며, ‘멀리까지 훤하다가 문득 숲과 마주쳐서는 흔적도 없이 땅속으로 잦아지는’ 길이며, 나귀가 ‘자주 돌을 차고 주춤거리는’ 길이다. 마치 오른쪽 사진 속에 있는 길과 흡사하다.
사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돌사닥’은 ‘돌이 많이 쌓여 있는 어떤 지형’이며, 산비탈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돌너덜, 너덜겅, 너덜’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돌서덕‘의 ’서덕‘과 ’돌사닥‘의 ’사닥‘은 그 말뿌리가 같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닥’과 ‘서덕’은 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말들이다. 이 ‘사닥’과 ‘서덕’의 뜻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말은 《조선말대사전》의 ‘사득’, 제주 지역어의 ‘서드럭밧’, 함북 지역어의 ‘사들기’이다. ‘사득’은 ‘디디면 푹푹 빠지는 진펄’, ‘서드럭밧’은 ‘돌무더기와 잡초목이 얼크러진 것이 여기저기 있는 밭’, ‘사들기’는 ‘바닥이 무르고 질펀한 들’이다. 따라서 ‘사닥, 사드럭, 사득, 사들, 서덕’은 의미나 형태적으로 연관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어떤 특성을 가진 곳’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돌이 많이 깔린 곳(《조선말대사전》)’ 혹은 ‘냇가나 강가 따위의 돌이 많은 곳(《표준국어대사전》)’인 ‘서덜’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돌사닥’은 ‘돌이 많이 쌓여 있는 곳’으로 풀이될 수 있으므로, ‘돌사닥다리’는 [돌+[사닥+다리]]보다는 [[돌+사닥]+-다리]로 분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이 옳다면 ‘돌사닥다리’의 ‘사닥다리’에 근거하고 있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 《조선말대사전》의 뜻풀이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1) ‘돌서덕’이 ‘강이나 내’에 한정된 지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이였음에도 여윌 대로 여윈 실개천 하나가 마을 앞으로 흐를 뿐이고 나무라고는 키 낮은 자작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돌서덕} 뙈기밭들이 바람벽 같은 가파로운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림재성: 나루가의 밤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돌서덕’은 ‘가파로운 산비탈’에도 있다. 따라서 《조선말대사전》의 ‘돌서덕’은 ‘돌이 많이 쌓여 있는 곳’으로 뜻풀이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돌서덕’은 ‘돌서덜’과 함께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