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 새어휘부 부장
각지에서 모여온 농민대오 가운데는 {조선족과} 한족, 심지어는 만족(만주족)까지 끼여 있었다.
<리근전(중국 동포 작가): 고난의 년대>
조선족!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물론 국가 간 이민 절차를 밟아 이주해 간 사람들은 아니다. 역사의 오욕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중국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게 된 사람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선족’이라 부르기도 하고, 혹은 본토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을 지칭하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구소련 시절,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아프카니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된 동포들은 ‘고려인’이라고 부르며, 러시아의 사할린에 거주하는 동포는 ‘한인’ 혹은 ‘사할린 동포’라고 부른다.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는 지칭하는 말은 남북한이 다르다. 남북한은 공히 ‘재일동포’라는 말을 쓰지만, 북한에서는 ‘재일교포’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재일동포’를 ‘재일조선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재일동포’들은 그들 스스로를 지칭할 때 ‘교포’나 ‘동포’를 뺀 ‘재일’이라고 부른다.
한때는 중국에 가서 ‘조선족’들과 어울려 살거나 러시아에 가서 {고려인} 속에 묻혀 살면 어떨까도 생각했었다. <윤후명: 가장 멀리 있는 나>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배척의식에 물젖은 일본인 망나니들이 일곱 살난 시환의 딸 룡실에게 참을 수 없는 민족적 모욕을 가한 것이 그 사건의 직접적인 동기로 되였다. <현성하(북녘 작가): 귀향>
이런 모습이니까 사할린의 {한인들도} 한국에서 간 우리에게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광출: 강요된 통만두>
{재일동포} 상공인이라는데 아들에게 조국을 알게 하기 위해 먼저 귀국시켰다고 합니다. <리광호(북녘 작가): 영원한 재부>
그럼 해외에 사는 동포들은 본토에 사는 사람들, 혹은 다른 나라에 사는 동포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조선족이나 고려인, 재일동포들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할린 동포들은 지역에 따라 부르는 말이 서로 다르다.
사할린 동포들은 자신을 ‘선주민’이라고 부른다. 즉 먼저 사할린에 ‘먼저 정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러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큰땅배기’ 혹은 ‘본토배기’, ‘고려인’들은 ‘얼마우재’라고 부른다. ‘큰땅배기’의 ‘큰땅’이나, ‘본토배기’의 ‘본토’는 ‘러시아’을 뜻한다. 따라서 ‘큰땅배기’나 ‘본토배기’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의미하는 것이다. 원래 ‘얼마우재’는 중국어 ‘알마오즈이(二毛者)’에서 온 말로, 중국 사람들이 ‘러시아에 사는 타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얼마우재’는 사할린에서 ‘지나치게 러시아화 된 한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며, ‘러시아인과 한인 사이에 태어난 2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얼마우재’는 함경도 지역에서 ‘서양 사람의 흉내를 내면서 경망스럽게 구는 사람’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사할린 한인들은 남한 사람을 ‘남선쟁이’, 북한 사람을 ‘북선쟁이’라 부르는데, 이 때 ‘-쟁이’는 ‘개구쟁이, 중매쟁이’의 ‘쟁이’와는 그 뜻이 전혀 다르다. ‘남선쟁이’나 ‘북선쟁이’의 ‘-쟁이’는 ‘~출신의 사람’이라는 뜻을 갖는다. 가령, 사할린 한인 사회에서 ‘함흥쟁이’는 ‘함흥 출신의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을 ‘왜땅배기’라고도 부른다.
{큰땅배기들은} 우리를 {선주민이라고} 불렀지. 먼저 사할린에 와서 살았다는 뜻이지. <겨레말큰사전 조사 자료>
저 {얼마우재들이} 옛날에 우릴 얼마나 무시했어. 학교에선 일본말 자꾸 쓴다고 우리를 때리고 말이야. 같은 민족끼리 뭘 그렇게 독하게 할 필요가 있어. <겨레말큰사전 조사 자료>
그 집 손자가 {얼마우재잖아}. 며느리가 로스케잖아. <겨레말큰사전 조사 자료>
그 할머니 {북선쟁이잖아}. 얼마나 성질이 대단하다고. <겨레말큰사전 조사 자료>
* 이 글은 <이데일리 신문> '이길재의 겨레말'에 연재된 칼럼을 옮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