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박영정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요즘 텔레비전에는 남북한의 군사 훈련 소식을 전하는 장면들이 ‘전쟁 영화’처럼 흘러넘친다. 하루는 B-2 스텔스 전폭기가 미국에서 한 달음에 날아와 폭격 훈련을 한 후 우리 땅엔 착륙도 하지 않은 채 다시 귀환했다는 엄청난 소식이 시위하듯 전파를 탔는가 하면, 하루는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뜬금없이 새벽 시간에 미사일 부대에 ‘공격 대기 명령’을 내렸다는 뉴스 화면이 방송을 타고 있다.
또한 북한의 방송 매체는 연일 실제 군사 행동보다 더 험한 ‘말의 공격’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 공격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점점 더 험악해지는 데는 상대에게 위험을 과장하여 보여 줌으로써 다른 것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지속성과 수위로 보아 통상적인 힘겨루기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의 저변에 ‘북한 핵’이라는 ‘강력한 폭발물’이 내장되어 있다고 보면, 최악의 군사적 충돌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분간 남북한 대표가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는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반도 상황에서는 ‘남북 문화교류’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넌센스로 느껴질 수 있다. 남북한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면 ‘닥치고 전쟁’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남북 문화교류에 대해 어떤 미래지향적 제안을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막힐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앞으로 추진해야 할 남북 문화교류에 대한 구체적 제안보다는 저간의 추진 현황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분단 이후 공식적인 남북 문화교류의 첫 출발은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시 이루어진 남북 공연단체의 교환공연이다. 그런데 분단 이전 공유자산인 전통예술 공연을 통해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고자 했던 ‘첫 만남’은 기대와 달리 문화적 이질성만 확인하고 말았다. 공연이 끝난 후 남북한 예술계에서는 상대 예술에 대한 비난이 줄을 이었다. 전통예술마저 체제 우월성 경쟁에 이용되었던 아픈 장면이었다.
1980년대 말에는 세계사적 냉전구조 해체의 분위기 속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대결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북방정책’을 기조로 한 화해ㆍ협력의 노력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로 결실을 맺었다. 이는 공연, 전시 등 남북 문화교류 활동을 통한 화해 협력의 분위기 조성 노력이 선행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1990년대 중반 북한 ‘핵문제’가 등장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적대적 대결관계로 회귀하였다.
이후 국민의정부가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관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있기까지 남북한 사이에는 다양한 문화교류 활동이 전개되었다. 다시 한 번 문화교류가 남북 화해ㆍ협력 분위기의 조성에 기여한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에는 봇물 터지듯 남북 문화교류가 급증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남북 문화교류는 일회성 이벤트의 성격이 강하고, 남한 사업자 사이의 과당경쟁 등으로 대규모 비용을 수반하는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2000년대 중반에는 남북 문화교류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개성 영통사 복원 사업, 금강산 신계사 복원 사업,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 사업 등 남북한 공동 사업 방식의 장기형 프로젝트들이 속속 추진되었다.
그 가운데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새겨볼 만한 사업이다. 무엇보다 이 사업은 민족 공유자산인 우리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튼튼한 토양 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전문적인 국어학자들 사이의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사전을 편찬하기까지 수년간을 지속하는 장기형 프로젝트로 추진되었다. 더욱이 여야 합의에 의해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제정되어 사업의 안정성도 높아지고, 우리 사회의 고질인 ‘남남갈등’도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이질화된 남북한 언어의 공통 기반의 회복은 물론 통일 이후 언어 통일을 향한 실제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미래적 가치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남북 문화교류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도 이들 장기형 프로젝트들은 지속되었고, 중단된 남북 문화교류의 명맥을 이어 주었다. 영통사와 신계사 복원 불사는 2007년 이전에 이미 완료된 사업이지만, 2010년 5.24조치 이후에도 남북 불교도 공동 법회 등을 이어가는 발판이 되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한 사이의 신뢰의 회복과 균형 잡힌 대북 사업의 추진을 주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기조로 삼고 있다. 특히 그동안 남북한 사이에 전개된 교류와 협력의 경험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우리가 먼저 신뢰를 만들기 위한 선행 조치를 하겠다는 매우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는 정세 속에서 신뢰 프로세스로 진입하는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워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남북 문화교류야말로 지금의 교착된 상황을 풀어나가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민족 공유자산을 기반으로 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나 만월대 발굴조사 사업은 남북한 신뢰 프로세스에 진입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사업의 시작보다는 기존 사업의 재개와 복원을 통해 낮은 단계의 신뢰를 쌓은 후, 점점 높은 수준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여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전쟁 분위기의 한켠에서는 남쪽에서부터 꽃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유채꽃,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 남녘에서 북상중인 ‘개화 전선’을 따라 온 산하에 진달래가 피어날 때쯤이면, 꽃 소식과 함께 한반도에 전운이 걷히고, 화해와 협력의 꽃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그 꽃길 위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바퀴도 힘차게 굴러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