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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3.04

새로 찾은 겨레말

염상섭 소설의 미등재어와 새어휘

_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 새어휘부 부장

   횡보(橫步) 염상섭의 소설은 ‘순수 국어의 보고’로 평가될 만큼 ‘경아리를 통해 서울 중류계층의 삶을 매우 실감나게 그리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지역어의 독특한 소설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따라서 염상섭 소설에 나타나는 미등재어들이 겨레말의 외연을 넓혀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겨레말큰사전>은 <만세전>, <삼대>, <취우>,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150여 편의 염삼섭 소설을 대상으로 새어휘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표준국어대사전>(1998)과
<조선말대사전>(1992)에 수록되지 않은 미등재어 2,000여 개가 조사되었다. ‘<겨레말큰사전> 올림말 선정 지침’에 준하여 이들 2,000여 개의 어휘들을 1차 선별한 결과 200여 개가 <겨레말큰사전> 올림말 후보로 선정되었다.
   그 목록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가게쟁이, 가리막, 가방잡이, 가삼츠레하다, 개발괴발, 개장집, 게걸음하다, 고깃물, 과자통, 구자틀, 기생에미, 기예, 꼬투머리, 끝동생, 냉면집, 노란자, 노름채, 노잣냥, 놈년, 담배꽁지, 답치다, 대삿집, 대식구, 대짜고짜, 도둑술, 돈봉투, 동릿집, 된장국수, 뒷소식, 들볶아치다, 등록비, 똥대가리, 만개되다, 목내이, 몽롱히, 박다, 반울음, 본가살이, 부모형제, 뺨사다귀, 사돈영감, 사랑편지, 색봉투, 샛골짜기, 생일집, 생철갑, 선뜻선뜻하다, 쇠눈깔, 쌀물, 어쩌니저쩌니, 여자옷, 엷어지다, 옥돌장, 이등차, 이잣돈, 입원료, 자릿속, 재수사망, 종이갑, 주문도리, 찌부러들다, 천석지기, 첫찌, 코쌈지, 푸르락붉으락하다, 해우채, 향그레하다, 헛공사, 혼자살이, 화평스럽다, 휘어잡히다
   다음은 염상섭 소설 <취우>의 한 구절이다.
인젠 {가방잡이두} 신물이 나! ······ 그 보스톤백 보셨지? 《염상섭: 취우》
   위의 용례에서 나타나는 ‘가방잡이’는 ‘윗사람의 가방을 들고 따라 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이다. ‘가방잡이’는 일제강점기 때 쓰였던 ‘가방모찌’와 같은 말이다. ‘가방모찌’는 ‘가방’과 일본어 ‘모찌’가 결합된 말로, ‘모찌’는 ‘들다’의 의미를 갖는 일본어 동사 ‘모츠(持つ)’의 명사형 ‘모치(もち)’이다. 즉 ‘가방모찌’는 일본어 ‘가반모치(かばんもち)’와 같은 말이다. ‘가반모치’는 ‘상사의 가방을 들고 수행함. 또는 그 직책을 맡은 사람’ 곧 ‘비서’를 의미하기도 하고, ‘상사에게 아첨하며 쫓아다니는 사람을 비웃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취우>에 나타나는 ‘가방잡이’는 아마도 일본어 ‘가반모치’의 직역어로 판단된다. 비록 ‘가방잡이’가 직역어이기는 하지만, 염상섭의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오늘날에도 ‘가방잡이’는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국어사전에도 ‘가방잡이’가 실려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개념은 존재하나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일본어 ‘가반모치’의 직역어라는 점에서 ‘가방잡이’는 그리 탐탁한 말은 아니지만, 어떤 행위의 대상을 개념화한다는 점에서는 필요한 말이다. ‘가방잡이’를 대신할 만한 대안이 없다면 ‘가방잡이’를 살려 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염상섭 소설에는 아직 검증되지 않는 말들이 많이 실려 있다. 다음은 ‘한국일보’에 연재된 소설 <미망인>의 한 구절이다.
명신이 모친이 손주딸과 {된장국수를} 쏘석이고 앉았는 것을 보고, 홍식이는 ”아 참 아즈머니께 한 그릇 시켜다 드리는걸!“ 하고 인사를 하였다.
   위의 예문에 나타난 ‘된장국수’는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이다. ‘된장국수’라는 단어를 접하는 순간 북측과 공동회의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먹어 본 적이 있는 음식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야채에 된장을 넣어 볶은 된장 소스를 국수 면발 위에 올린, 자장면과 흡사한 음식이다. 이러한 생각은 <염상섭 소설어 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더욱 그럴듯해 보인다. <염상섭 소설어 사전>에서 ‘된장국수’를 ‘된장을 풀어서 말거나 비벼 놓은 국수’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예들을 보면 <염상섭 소설어 사전>의 ‘된장국수’애 대한 뜻풀이는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숙이는 쾌남이를 끌고 청요릿집에 가서 {된장국수를} 두둑히 먹여 가지고… 《염상섭: 의처증》
그러나 너무나 돈에 알뜰한 여자가 {된장국수쯤은} 말이 없어도, 탕수육만 해도 객적은 과용이라고,
이제까지 함부로 시킬 것을 허락지 않던 것이 생각나 … 《박태원: 천변풍경》
오늘은, 가치 청요리래두 먹기루 허구… 순이는 탕수욕허구 {된장국수를} 좋아허니까. 《박태원: 천변풍경》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나 염상섭의 <의처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청요릿집’에 가서 사먹는 음식인 ‘자장면’을 이르는 말이다. 아마도 ‘된장국수’는 ‘炸醬’을 ‘중국 된장’으로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된장국수’는 <겨레말큰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된장국수 [된ː장국쑤/뒌ː장국쑤] (-醬--) 명
   예전에, <자장면>을 달리 이르던 말. | ~.
    [되-+-ㄴ+장+국수]
   <겨레말큰사전>은 이와 같이 현재는 널리 쓰이지 않는 어휘라고 하더라도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방잡이’나 ‘된장국수’ 등과 같은 어휘들을 발굴하고, 철저한 검증을 통하여 <겨레말큰사전>에 싣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의 이러한 노력은 겨레말의 외연을 넓힐 뿐만 아니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