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김영덕 /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이하 <표대>)과 <조선말대사전>에는 규범어(표준어와 문화어) 외에 다수의 지역어도 함께 실려 있다. 그런데 이들 지역어 가운데에는 뜻풀이가 잘못되었거나 온전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그래서 <겨레말큰사전>에서는 형태 분석이 가능한 모든 지역어를 분석하고, 그 결과가 뜻풀이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현지 집필자나 조사자를 통해 뜻풀이 확인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겨레말큰사전>은 뜻풀이를 깁고 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래의 예는 위와 같은 과정에서 뜻풀이가 부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강원 지역어이다.
‘보구래’는 ‘보구레, 보가래’ 등과 함께 ‘쟁기’를 의미하는 강원 지역어이다. <표대>에 ‘보구래’가 ‘쟁기’의 강원 지역어로 실려 있는데 같은 사전에 ‘왜보구래’가 ‘쟁기’로 풀이된 것은 이상하다. 왜냐하면 ‘왜보구래’는 [왜+보구래]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구래’ 앞에 ‘왜’가 결합되어 있는데도 ‘보구래’와 ‘왜보구래’가 모두 ‘쟁기’로 풀이되어 있는 것이다. ‘형태가 다르면 뜻도 다르다’는 것이 사전 뜻풀이의 일반적 전제라고 한다면, ‘보구래’ 앞에 결합된 ‘왜’는 무엇일까?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간장, 왜전골’의 ‘왜’이다. 이때 ‘왜’는 ‘일본’의 뜻을 나타내는 ‘왜(倭)’이다. ‘왜보구래’의 ‘왜’가 ‘일본’을 뜻하는‘倭’라면, ‘왜보구래’는 ‘조선쟁기’와 대응하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 쟁기인 ‘조선쟁기’가 통나무를 깎고 다듬어 만든 것이라면, ‘왜쟁기’는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만든 것이다. 일명 ‘개량쟁기’라고도 한다. 따라서 ‘왜보구래’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왜’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를 위해 강원 지역의 현지 집필자에게 확인한 결과, ‘왜’는 ‘일본’을 뜻하는 ‘왜’와는 관련이 없었다. ‘왜보구래’의 ‘왜’는 ‘하나, 혼자’의 뜻을 더하는 접사 ‘외-’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표대>에 실려 있는 ‘왜보구래’는 ‘외갓집’의 일상적 발음이 [웨갇찝]인 것처럼, ‘외보구래[웨보구래~왜보구래]’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겨레말큰사전>은 형태 표기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올림말을 ‘외보구래’로 수정하고, [외보구래/왜보구래/웨보구래]와 같이 발음 정보를 제시한다.
‘외보구래’는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겨리)’인 ‘쌍보구래’와 구분하기 위해 ‘소 한 마리가 끄는 쟁기(호리)’, 또는 ‘보습이 두 개 달린 쟁기’인 ‘쌍보구래’와 구분하기 위해 ‘보습이 하나인 쟁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표대>의 ‘왜보구래’의 뜻풀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외보구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쟁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원 지역에서 일반적인 ‘쟁기’를 지칭할 때에는 ‘보구래’라고 하고, ‘쟁기’를 ‘쌍보구래’와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외보구래’라고 한다. 그러므로 <겨레말큰사전>에서 ‘외보구래(왜보구래)’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지역어의 뜻풀이에서 형태소 분석은 ‘외보구래(왜보구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중요하다. 이와 같이 형태소 분석 결과가 기존 사전의 풀이와 일치하지 않는 또 하나의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개뚱구리’는 ‘개-’와 ‘뚱구리(둥구리)’가 결합된 말이다. ‘둥거리, 둥구리’는 모두 ‘그루터기’의 경남 지역어이다. 따라서 ‘개뚱구리’가 단순히 ‘그루터기’와 대응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지 집필자의 확인 결과 ‘개뚱구리’ 또한 단순히 ‘그루터기’를 나타내는 말은 아니었다. ‘보통보다 질이 떨어지는’의 뜻을 더하는 접사 ‘개-’가 결합된 ‘개뚱구리’는 ‘바싹 말라서 바슬바슬 부서지기 쉬운’ 그루터기이다. 따라서 ‘개뚱구리’의 뜻풀이는 <겨레말큰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수정된다.
‘외보구래(왜보구래)’와 ‘개뚱구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겨레말큰사전>의 지역어 뜻풀이에서는 형태소 분석 결과와 해당 뜻풀이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지 확인 조사를 통하여 그 정확한 뜻을 밝히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