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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승냥이새끼 나를 뜯어 먹어라

  어디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길을 찾을 수 없던 문학청년 시절, 절망은 짐승처럼 내 살을 물고 놓아주지 않던 스물 몇 살 무렵.
  절망의 변두리를 헤매다 고은의 시와 산문을 만났다. 나는 어두워지면 드라큐라처럼 밤거리를 쏘다녔다. 늘 술이 취해 있었고, 자학에 가까운 노래를 불러댔다. 낮에는 피는 꽃, 지는 꽃을 바라보며 지내거나 겁 많은 소시민으로 입을 닫고 월세 2천 원짜리 단칸방에 파묻혀 있다가, 밤이 되면 늘어뜨려진 어깨, 꺾어진 고개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낮에는 뱀의 모습, 두꺼비의 모습, 새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사람으로 변하는 전설 속의 인물처럼 나도 그렇게 밤이면 달라져 소리를 지르며 다녔다. 아니 나는 전생에 뱀이거나 죄지은 새이거나 천벌을 받은 두꺼비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난파’라고 했다. ‘실존적 절망’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학과 페시미즘과 염세였다.

  그런 시절에 만난 고은의 시와 글들은 불길에 끼얹는 기름이었다.

   내일 모레쯤 쓰러지면
   귀여운 승냥이 새끼
   내 살을 뜯어 먹어라

   오늘 개울에 씻은 여윈 팔다리

  그렇지 않아도 내 팔목은 바싹 말라 한주먹도 안 되었고 뼈대도 여위고 약하였다. 아니 뼛속이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팔다리여서 어디다 버리고 싶었다. 힘겨운 육신을 버릴 수 있다면 버리고 싶었다. 쓰러지고 싶었다. 개울 근처, 산골짝 인적이 닿지 않는 어느 기슭에 생을 버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승냥이 새끼한테 뜯어 먹으라고 주고 싶었다. 나도 고은처럼 아주 오래 잠드는 약을 다량으로 먹고 깊은 숲 속에 들어가 쓰러지고 싶었다. 바다로 뛰어들기 위해 목포에서 제주 가는 배를 타고 싶었다.
  고은이 먼저 부른 절망의 단장들이 내 입에서도 늦침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몇 년을 썼어도 마음에 드는 시는 열 편, 아니 다섯 편도 못 되었다. 한 편, 바로 이 시라고 내놓을만한 시가 없었다. 낭만주의와 페시미즘과 실존주의가 뒤섞인 채 헤매고 다니는 그것이 문학이라고 믿었다. 그러면 시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시를 쫓아다닌다고 시가 내게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문학도 사랑도 짝사랑, 지독한 짝사랑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툰 사랑, 미숙한 사랑이었다. 사랑이 그렇게 저만 미쳐 돌아다닌다고 몸을 열어 제 전부를 주고 마음으로 나를 감싸 안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의 처지에서 보아도 내가 그렇게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자존심은 세었지만 가진 것은 쥐뿔도 없었다. 자의식은 강했지만 그것 때문에 상처만 많았다.
  그러다가 밤새 마신 술이 새벽과 함께 서서히 깨기 시작하는 날은 고은을 마구 욕하였다. 한 팔을 잘라 득도하지 못한 채, 시를 쓴다고 사랑을 한다고, 산을 뛰쳐 내려온 고은을 욕하고 삿대질하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혼자 울었다.

  언제쯤 나는 이 허물을 벗고 뱀이 되든 사람이 되든 완전한 모습이 무엇이 되려는가 생각하며 아팠다. 문득문득 머리를 깎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머리를 깎든 풀옷을 입든 그게 다 소용없는 일인 것 같았다.

  “슬퍼하라, 잠 속에선 압박을 증오하면서도 깨어나면 압박을 받아들이는 국민을, 슬퍼하라 관 뒤에서만 오직 소리 지르고, 무덤 속에서만 오직 자존심을 갖는 국민을” 칼릴 지브란의 이 말이 머리를 때렸다. 시대를 위해 시대의 고뇌와 민중을 위해 단 한 번도 떳떳하게 큰소리치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만 절망에 미쳐 소리 지르는 내 삶이 측은하였다. 나야말로 울밑에선 봉선화였다.

  언제쯤 나도 시대고와 함께 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언제쯤 나도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발밑에 엎드려 막달라 마리아처럼  말없이 발을 닦아 줄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찾을 수 없었고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절망의 긴 옷자락을 끌며 어둠 속을 누비고 다녔다. 절망의 진흙길을 질척거리며 오래 건너온 이십대였다.  

  귀먹은 벼랑 아래에 던져져 조각나는 돌멩이가 되고 싶던 젊은 날이었다. 한 마리 산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다니던 날들이었다. “귀여운 승냥이새끼 나를 뜯어 먹어라.”그때 내가 홀려 미쳐 나부대며 외곤 하던 시였다

 
  도종환 |
시인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시집으로『고두미 마을에서』,『접시꽃 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모과』,『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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