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인쇄 지난호보기
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3.06

겨레의 창

숭례문과 함께 복원되어야 할 우리말과 얼

_ 김란기 /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대표

   지난 2008년 2월 10일 밤 예측치 못한 사고로 숭례문(남대문)이 불에 타 붕괴되었다. 600년을 넘어 그 자리에 서 있던 숭례문이 이처럼 대화재로 소실된 것은 그간의 숭례문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 화재가 사람의 손에 의하여 행해졌다는 것은 천재지변에 의해 일어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나 소실이나 멸실이라는 점에서는 결과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방송뉴스를 보자마자 카메라를 챙겨들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초기 화재는 좀 심하게 타는 듯 보였지만 수많은 소방차와 관련공무원들이 분주히 불끄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근처에는 임시 통제본부같은 천막도 생기고 내가 아는 문화재청 공무원들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얼굴에서 조기에 불을 끌 것이라는 안도감보다는 누군가를 책망하는 기색이 역력하였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냐는 표정도 더러 보였다. 그러는 사이 계속 연기만 나던 건물에 갑자기 불꽃이 성해짐을 볼 수 있었고 소방대원 등이 다급하게 장비들을 동원해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많이 모여들었고 그들 사이에서는 한숨과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을 상징하는 서울의 대문이, 아니 세계에 대한 한국의 역사와 저력을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축물이 거대한 불꽃 속에 갇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처럼 타올라갔다.
   결국 최첨단의 진화장비를 총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불에 타면서 마지막에는 스스로 붕괴해 내려앉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고 내려앉자마자 마치 이제까지의 거친 삶을 마감하듯 조용히 잔 연기만을 내뿜은 채 주위마저 조용해졌다.
   지난 5월 4일, 5년여의 복구 작업 끝에 복구공사 완료 및 개장식을 가졌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큰 행사가 되었지만 역사적 건축물의 복원이 이처럼 쉽지 않고 한번 잃으면 그것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무릇 문화이든 건축물이든 한 번 잃으면 그것을 되찾거나 회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그것이 무형이거나 시대적 조류에 민감한 것이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오래된 건축 용어를 몇 차례 조사 수집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써 낸 일이 있다.
   그때 깨달은 것은 말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말이 사라지면 실체가 영원히 사라진다. 그러나 말이 살아있으면 실체가 사라져도 언젠가 그 실체를 복원해 낼 수 있다.
   숭례문 복원과정에서 이 같은 것을 입증해주는 일도 나타났다. 지난 1961년에 전면해체 수리 때 현장에서 사용되었던 청사진 도면이 이 공사에 참여했던 한 늙은 목수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50여 년 전의 건축물의 자세한 모습이 이 청사진 도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건축물의 오래된 용어를 찾아내기 위하여 늙은 목수를 따라다니며 채록을 했고 그 늙은 목수는 자기가 태어난 지역의 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니 같은 건축의 부재에도 지역에 따라 사용 용어가 다르기도 하고 그것은 그 지역의 연장과 자재, 그리고 공법에 따라 다른 지역하고는 다르게 쓰기도 했음을 보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목수는 자신의 스승에게서 배운 대로 공사를 해왔고 그 용어를 써 왔다. 그리고 그 스승의 스승, 역시 같은 과정을 밟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건축의 양식과 기법, 그리고 그 말은 마치 자자손손 내려오듯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용해 목수의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계보를 만들 수 있었고 그 계보 속에는 독특한 용어들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 용어들이야 말로 건축물의 양식과 형태, 기법과 공정, 그에 사용되는 자재와 연장들까지 전승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숭례문의 복원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고 또 그렇게 적용했다. 50년 전에 참여했던 늙은 목수를 불러와 그때 하였던 기법으로 재현하게 했다. 50여 년 전에는 스무 살 남짓 청년이었던 늙은 목수는 어깨너머로 보았던 전통적인 기법과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정신과 얼을 오늘에 되살려 숭례문 복원에 적용시켰던 것이다. 그 되살리는 작업은 다만 형태나 작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는 옛 말들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문물이 바뀌면서 우리의 앞 세대들이 사용했던 말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용어들이 어마어마하게 나타난다. 그 중 사라지는 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우리가 옛 문물을 보존하여 역사적 증거물로 남기고 그것들 위에서 새로운 문물을 창조하듯 우리말과 글을 남기고 기록하여 우리 후대에게 전해야 한다.
   후대는 이미 사라진 문물이라도 그 남아 있는 말을 통해 그 문물을 복원하고 재현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물이 사라져도 말이 남아있으면 그 문물은 언제고 복원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지역어의 보존은 더욱 큰 필요성이 제기된다. 각 지역은 그 지역의 가치와 차이를 나타내며 동일한 사물에 대해서도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같은 종류의 건축물도 지역에 따라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