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고대영 /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철에 따라 자연 풍광과 삶의 모습이 다채롭게 옷을 갈아 입는다. 그런데 요샌 환경 오염 탓인지 갈수록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만 길어지는 듯하다. 이제 봄인가 하여 봄볕을 즐기려고 하면 어느새 여름 볕에 까맣게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이렇게 매년 봄이 짧아지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사계절이 주는 느낌 하면 역시 봄의 생동감이 그중 백미가 아닐까 싶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보드랍게 녹고 차갑게 닫혀 있던 하늘이 봄볕에 따스하게 열리며 오전 오후가 다르게 만물에 생기가 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봄의 모습 중 이제 찾아보기 힘들 장면이 바로 소가 논밭을 힘차게 갈아엎는 모습이 아닐까. 이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임과 동시에 인간과 소의 에너지가 자연의 생기와 호응하며 새로운 생명을 일궈 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단지 목가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농경문화에서 소는 아주 중요한 삶의 밑천이자 동반자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 말에도 소와 관련된 많은 어휘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중 남과 북에서 차이를 보이는 어휘를 몇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남 |
북 |
푿소 |
풋소 |
겨릿소 |
겨리소 |
안소 |
웨나소 |
마라소 |
마라소, 마나소 |
'푿소'와 '풋소'는 남과 북의 표기 차이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푿소'와 '풋소'는 가리키는 대상이 다른 어휘이다. 남에서 쓰는 '푿소'는 '풀[草]+ㅅ+소'에서 온 말로 '여름에 생풀만 먹고 사는 소'를 이른다. 끝소리로 'ㄹ'을 가진 말이 다른 말과 어울려 쓰일 때 끝소리 'ㄹ'이 'ㄷ'으로 소리 나는 경우에는 소리 나는 대로 'ㄷ'으로 적기에 '푿소'라고 적는다.(한글 맞춤법 제29항: 반짇고리, 사흗날, 숟가락 등) 한편 북의 '풋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일을 해 보지 못한 어린 소'를 이른다. 이때 '풋소'는 '풋감, 풋고추, 풋과일, 풋김치' 등의 어휘에서 볼 수 있는 접사 '풋-'과 '소'가 결합한 말이다.
'겨릿소, 겨리소'는 모두 '겨리를 끄는 소'를 의미하는 같은 말이나 사이시옷의 표기 방식에서 남과 북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편 겨리를 끄는 소 중에서 왼쪽에 매는 소를 '안소'라 하고, 오른쪽에 매는 소를 '마라소'라고 이른다. 그런데 북에서는 남의 '안소'와 같은 말로 '웨나소'만 사전에 올라와 있으며, '마라소'와 같은말로 '마나소'를 더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과 차이를 보인다.
'푿소, 풋소', '겨리소, 겨릿소', '안소, 웨나소', '마라소, 마나소' 등 이제는 이런 글에서나 사전 밖으로 나오는 어휘들이지만 여전히 잊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이런 말들을 잃으면 이와 관련된 감성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하릴없는 걱정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