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조남호 / 명지대 국문과 교수,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
“얌전한 ○○○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 있지 않습니까? ○○○에 들어갈 말이 ‘고양이’인가요, ‘강아지’인가요?” 오래전에 국어 생활 상담 전화를 통해 받은 질문이다.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속담인데 막상 이 질문을 받으니 순간 헷갈렸다. ‘고양이’인 듯도 하고 ‘강아지’인 듯도 하였다.
어딘가에 올라가는 성향이 있는 동물은 고양이니 고양이가 답인가? 아니다, 그런 성향이라면 얌전함과 상관이 없으니 ‘고양이’는 속담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뜻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강아지, 그것도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올라간다면 평소와 다른 행동이다. 이 상황이 더 속담과 어울려 보이는데 그렇다면 ‘강아지’가 답인가?
이처럼 따져 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속담에 들어갈 적당한 말을 따지는 것은 다소 무의미한 일이었다. 굳어진 표현이니 정해진 단어들만 써야 한다는 제약이 속담에 없기 때문이다. 의미 전달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어떤 단어도 들어갈 수 있으며 말하는 상황에 맞추어 적절히 바꿀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고양이, 강아지’뿐만 아니라 ‘개’도 이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점은 남과 북의 차이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하나의 속담에서 변형이 된 여러 속담이 있듯이 북에서 간행한 『조선말대사전』에도 여러 속담이 있다. 예를 들어 ‘여든에 능참봉을 하니 한 달에 거둥이 스물아홉 번이라’라는 속담이 있다. 오래 바라던 일을 이루었으나 실속은 없고 힘만 들 때 쓰는 속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모처럼 능참봉을 하니까 한 달에 거둥이 스물아홉 번이라’, ‘칠십에 능참봉을 하니 하루에 거둥이 열아홉 번씩이라’, ‘능참봉을 하니까 거둥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라’도 있다. 단어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뜻은 같다. 이 속담들이 『조선말대사전』에도 똑같이 있다. 남북의 맞춤법 차이로 ‘능참봉’ 대신 ‘릉참봉’이 쓰이고 띄어쓰기가 다른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은 많은 사람이 알고 또 쓰고 있다. 오래전부터 쓰였겠거니 할 수 있지만 이 속담이 사전에 실린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1990년에 간행된 『우리말속담큰사전』에서 비로소 ‘얌전한 개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나온 속담사전이나 국어사전에서는 이 속담을 볼 수 없다. 실제 쓰이기 시작한 시기도 그렇게 오래지 않아 보인다. 1970년에 간행된 신문에서야 비로소 이 속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북에서 간행된 사전에는 이 속담이 지금까지 올라 있지 않다. 2005년에 발간된 『조선속담성구사전』은 꽤 많은 속담을 수록하였는데 여기에조차 이 속담이 없다. 1992년에 나온 『조선말대사전』뿐만 아니라 2006년에 나온 그 사전의 증보판에도 없다. 그런데 북에서 나온 간행물에서는 이 속담이 쓰인 몇 예를 찾을 수 있었다.
남에서 나온 사전에만 있고 북에서 나온 사전에 없는 것이라면 가능성은 둘이다. 첫째, 실제로 쓰이고 있지만 아직 사전 편찬자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둘째, 남북이 갈라진 후에 남에서 생긴 속담일 수 있다. 속담은 옛 선조들만 만든 것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속담이 만들어지고 있다. 실제 쓰인 예가 있으니 북에서 아직 주목을 받지 못한 속담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북에서는 널리 퍼지지 않은 속담인 것으로 보인다.
남에서는 널리 쓰이는데 북에서 간행된 사전에 실리지 않은 속담으로는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가 더 있다. 『우리말속담큰사전』에서 비로소 볼 수 있다는 점이나, 신문 기사에서 1971년에 확인된다는 점 등 여러모로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는 속담과 출현 양상이 비슷하다. 다만 지금은 이 속담만큼 그것의 변형인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속담은 북에서 나온 간행물에서도 예를 찾을 수 없는 점으로 보면 남에서 새로 생겨 퍼진 속담일 가능성이 있다.
_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예전에, 내가 꼬마였을 때 밤늦게까지 일하는 누나를 마중하러 엄마 손 잡고 버스 정류장에 나갔다. 13살이나 차이나는 누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혹시나 귀여운 막냇동생에게 누나가 맛난 과자라도 사줄까 하는 마음에 엄마를 따라나섰던 것이다.
누나가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한 아저씨가 나에게 와 물었다.
“너 늦은 시각에 여기 왜 나와 있는 거니?”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누나가 철야를 해서 누나 기다리려고 나왔어요.”
아저씨는 내 말을 듣고 피식 웃고는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가버렸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저씨가 왜 웃는 거지? 이상한 아저씨네.’
그때의 내 언어 능력으로는 아저씨의 웃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저씨가 웃은 이유를 난 몇 년이 더 흐르고 나서야, 내 언어 능력이 좀 더 커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철야를 한다는 것은 밤샘 근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누나가 야근을 해서 누나 기다리려고 나왔어요’라고 말해야지 정확한 표현이 되는 것인데 철야라고 했으니 아저씨가 웃을 만도 했다.
결국 그날 나는 원했던 과자는 얻어먹지 못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누나를 무사히 집까지 데리고 왔다. 과자는 그로부터 며칠 후 누나의 월급날 먹었다.
야근,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다 아는 말이다. 그리고 싫은 말이기도 하다. 퇴근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니 썩 좋은 말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공공의 적인 이 ‘야근’에 남북 차이가 있다.
- 직장 현장에 일근, 전{야근,} 후{야근} 3교대 로동자들 2백 수십 명이 모여 종업원모임을 가지고 조태윤의 장례비와 그 가족에게 위자료를 지불할 것 등 공장 측에 들이댈 두 가지 요구조건을 가결하였다.《리북명: 등대》
- 엑스까와똘에서는 칠성이네 조가 일하고 있었고 전{야근} 교대를 할 두 사람은 짤목을 구하기 위해 사업소에 갔었다.《최학수:얼음장 밑에서 찾은 봄》
- 전에는 전 밤길도 혼자서 못 걷는 겁쟁이였에요. 그래서 {야근하는} 날이면 꼭꼭 오빠가 바래다 주군 했어요.《최재석:불새》
이상은 북측의 용례이다. 그런데 용례를 보면 남쪽에서는 생소한 말이 있고 ‘야근’과는 같이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소한 말은 ‘전야근, 후야근’이고, ‘야근’과 같이 쓰이지 않는 말은 ‘교대, 바래다주다’이다. 남쪽에서는 야근을 하는데 있어 교대라는 말 자체를 같이 쓰지 않는다. 그리고 야근을 하는 사람을 마중 나가지 바래다주지는 않는다. 이는 ‘야근’의 의미가 남과 북이 서로 달라 오는 말이고 그로 인해 북에만 생긴 말이 ‘전야근, 후야근’인 것이다. 이런 남북 차이는 남과 북의 사전 풀이에 잘 나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
조선말대사전 |
야근
퇴근 시간이 지나 밤늦게까지 하는 근무.
밤대거리
주로 광산에서, 밤낮 교대로 일하는 경우 밤에
일하는 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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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 밤대거리.
밤대거리
(낮과 밤으로 엇바꾸어 일하는 경우에) 밤에
일하는 대거리.
전야근 (前夜勤)
(밤일을 전후 두 교대로 나누어 할때) 앞의
밤교대나 그 근무.
후야근 (後夜勤)
(밤작업을 두 교대로 나누어 할 때에) 나중번의
밤교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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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야근’은 퇴근 시간이 지난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2교대로 근무할 때 낮이 아닌 밤에 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북에서는 남과 달리 ‘야근 교대’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고 ‘야근’에 ‘바래다주다’가 같이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남과 북의 차이 때문에 ‘전야근’, ‘후야근’이라는 말이 북에서만 생긴 것이다.
‘야근’이 뜻하는 남과 북의 차이 때문에 북에 가서 “나 어제 야근해서 피곤해요.”라고 말하면, 북쪽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이런 동무 한숨도 못 잤겠네. 얼른 집에 가서 푹 주무시오. 동무의 건강이 조국 번영에 이바지하는 길이니까. 얼른 가시오.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