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현인애 /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올해 봄 북한에서 태양절을 맞으며 조선요리협회에서 처음으로 사탕조각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났다. 사탕조각? 북한에서 살 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였다.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일까? 요리협회가 주관한다니 음식 종류일 것이고 사탕이라는 이름이 들어갔으니 사탕으로 만든 음식이라면 케이크 같은데...
전시회가 끝난 다음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니 정말 케이크였다. 이번 전시회는 조선요리협회가 처음으로 주최한 대회로, 전국의 식품공장과 음식점 종사자들 약 200명이 작품을 출품했다고 소개되었다. 케이크의 디자인은 북한다웠다. 미사일, 탱크 같은 선군정치를 반영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김일성이 들려주었다는 동화이야기 ‘놀고먹던 꿀꿀이’를 형상한 작품, 김일성을 상징한 백두산 호랑이도 있었다. 그러나 사상성을 강조하지 않은 디자인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김정은 위원장 등장 이후 북한에서는 외국 음식이 늘고 있다. 평양 중심거리에는 외국 음식점 간판도 볼 수 있고 빵집에 가면 파리바게뜨에서 생산한 것과 다름없는 갖가지 빵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어(한국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온 김일성 주석의 주장에 의하면 한자말과 외국어로 된 명사를 고유한 우리말로 바꿔야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되어 고착된 단어는 구태여
고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새로 발명된 물건의 이름은 외국어 그대로 적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평양에 있는 이태리 음식의 이름은 삐짜(피자), 스빠게띠(스파게티)다. 그런데 외국 음식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일부는 외국 이름을 북한식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케이크’는 ‘사탕조각’으로, ‘햄버거’는 ‘고기겹빵’으로 이름 지었다.
북한에서 새 단어가 고착되는 과정을 관찰해보면 흥미롭다. 북한말에는 까까오(카카오)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남한과 달리 까까오는 나무열매보다는 얼음과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더 많이 쓰인다. 원래 북한에서는 ‘아이스 바’를 ‘얼음과자’라고 불렀다. 초기 얼음과자는 물에 설탕이나 과일향, 색소 등을 넣어서 얼렸기 때문에 말 그대로 달달하고 향이 나는 얼음이었다.
1990년대 중반 시장이 형성되면서 상인들은 새로운 얼음과자를 만들어냈다. 새 얼음과자는 쌀가루로 죽을 쑤고 거기에 카카오 가루와 설탕, 우유, 색소 등을 넣어 얼린 것으로 남한의 아이스 바와 비슷하다. 새 얼음과자를 파는 상인들은 열대식물인 카카오 가루로 만들었다고 입이 마르게 홍보했고 그러다보니 새 얼음과자 이름이 까까오가 되고 말았다. 북한당국은 까까오란 단어는 옳지 않은 표현이니 얼음과자로 고쳐 부르라고 방송과 강연회를 통해서 강조했지만 주민들은 아랑곳 않고 계속 까까오라고 부른다.
2010년 초부터 북한 룡성식료공장에서 생산한 아이스 바가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이름은 ‘에스키모’다. 에스키모는 개인들이 만든 까까오보다 훨씬 맛있지만 맛은 까까오와 같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생산한 아이스 바를 ‘에스키모’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까까오’라고 부른다. 즉 누가 만들었든지 관계없이 먼저 유행된 단어가 고착되는 것이다.
그런 원리로 보면 ‘사탕조각’이라는 단어는 주민들 속에 자리 잡기 힘들 것 같다. 북한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케이크의 촛불을 끄면서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유행되면서 주민들 속에 ‘케이크’란 단어가 널리 알려졌다. ‘케이크’란 단어가 먼저 주민들의 입말로 된 것이다. 이미 ‘케이크’로 인식된 단어를 사탕조각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기겹빵’은 ‘햄버거’보다 먼저 주민들 속에 알려졌으므로 ‘햄버거’는 앞으로도 계속 ‘고기겹빵’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 현인애 |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졸업, 북한 대학 철학교원, 북한학 박사로 현재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