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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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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옥(시인, 겨레말큰사전 편찬 위원)
 
한국시의 중심 흐름과 우리말의 쓰임새
 
 

  김소월, 백석, 서정주, 고은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국시의 중심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고유어 중심의 사고를 지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소월은 한글이 민족 생활의 중심으로 육박하기 시작한 1920년대에 이미 예술어로서 한글을 갈고 닦은 바 있다. 백석은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과 잘못된 표준화 정책으로 인해 우리 민족어가 협소해지고 위기의 차원으로 떨어졌을 때 토착어 사용을 끈질기게 추구했다. 서정주 역시 일제로 인해 우리 모국어가 생존차원으로 떨어질 때 우리 말로 시를 썼으며, 나아가 분단 이후 외래문화가 물밀 듯이 밀려올 때 우리 말과 글을 회복하는 차원으로서 시를 썼다. 고은 역시 전대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고유어와 방언사용을 많이 했다. 그는 민족어를 완성하는 차원으로서 우리말을 발굴하고, 확대하고,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중의 언어를 자신의 시 안에서 민족의 언어로 격상시켰다.

  김소월의 <접동새>는 시인의 언어 의식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우선 우리말의 개성적인 사용이 눈에 띄는데, ‘접동새’는  소쩍새의 다른 이름이고 ‘불설워’는 평안도 사투리로써 ‘몹시 서러워’의 뜻을 갖고 있다. ‘아웁’은 ‘아홉’의 옛 표기이고, ‘의붓어미’는 의붓어머니, ‘오랍동생’은 오라버니의 낮춤말로써 오라비를 일컫는다. ‘아우래비’는 ‘아홉 오라버니’란 뜻의 개인조어로 보기도 하고, ‘아우오래비’의 축약형 변이로 보기도 한다. 발음상 ‘아홉 오라버니’의 개인조어라기 보다는 ‘아우오래비’의 변이형으로 보이는 이 말은 소월이 얼마나 시어 하나하나에 고심을 했는지 느껴지게 한다. 그러고 보면 고유어 중심의 사고를 지닌 소월은 고어나 방언을 활용함은 물론 개인시어까지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유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의 의식은 방언사용으로도 드러난다. 방언에 있는 어휘들은 거의다가 우리 말 고유어이다. 우리말의 기본은 고유어이다. 고유어의 측면에서 보면 방언은 더욱 그러하다. 방언의 절대다수는 고유어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방언사용을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한 이는 백석이다. 백석은 낱말사전이 따로 있어야 할 정도로 방언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의 <가즈랑집>이라는 시는 우리를 토속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쇠메’, ‘깽제미’, ‘막써레기’, ‘구신간시렁’, ‘당즈께’, ‘수영’, ‘아르대즘퍼리’, ‘광살구’, ‘당세’, ‘집오래’ 등의 평안도 방언 세계가 그것이다. 이 시에서는 또 다양한 토속 음식과 식물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돌나물김치, 백설기,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 도토리묵, 도토리범벅 등의 토속 음식과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등의 식물이름이 그것이다.

  미당은 우리 말 발굴과 확대 및 심화 작업의 측면만 보더라도 최고의 찬사를 받는 데 손색이 없음을 분명히 해 준다. 그의 시 <상가수의 노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무’ ‘뒤깐’ ‘똥오줌 항아리’ ‘앗세’ ‘명경’ ‘망건’ ‘쇠뿔염발질’ 등의 토속어와 고어이다. 여기서 ‘상무’는 상모의 사투리이다. ‘뒤깐’은 전래 화장실을 일컫는 방언이고, ‘명경’은 맑은 거울의 고어이다. ‘앗세’는 ‘아싸리’ 또는 ‘아예’ 정도로 해석을 할 수 있고, ‘망건’은 상투를 튼 사람이 머리에 두르는 물건을 일컫는다. 여기서 서정주만의 독특한 개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상가수’와 ‘쇠뿔 염발질’이다. ‘상가수’는 노래 잘 하는 사람 또는 상두가를 부르는 사람이다. 옛날에 상두가는 머슴들 중에서 노래를 잘 하는 이, 머슴 중에서도 주로 노래 잘 하는 상머슴이 불렀음을 감안하면 ‘상가수’는 이 ‘상머슴’에서 힌트를 얻어 발명한 개념처럼 느껴진다. 미당은 자서전에서 이 ‘상가수’가 상머슴인 ‘상곤’이라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쇠뿔 염발질’역시 미당이 발명한 개념인데 손가락에 침을 발라 뒤로 넘기는 모습을 일컫는다. 이 시에서 이러한 개인어는 우리말 고유의 묘미는 말할 것도 없고 시의 맛을 살리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상가수의 노래>는 하층민이면서도 풍류적 인간인 ‘상가수’를 잘 심미화시켜 우리식의 이야기 양식으로 보여준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주목할 만한 일은 고유어인 토속적 어휘들과 그 분위기에 적합한 절묘한 개인어들이 우리를 그 어떤 기억 속으로 사라진 원초적 정서를 다시금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고은의 <해연풍>은 초기작으로서 해풍에 얽힌 제주도의 풍경, 해풍에 얽힌 어부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시이다. 흔히들 민족어와 민중어의 보물창고라 할만한 작품집으로『만인보』와『백두산』을 든다지만 기실 고은의 언어에 대한 관심은 초기작에서부터 눈에 띄게 드러난다. 이 시만을 놓고 볼 때에도 고은의 언어에 대한 관심은 다각도로 드러난다. 우선 제목인 ‘해연풍’부터 그러하다. 여기서의 ‘해연풍’은 해풍을 일컫는다. 제주도에선 아직도 해풍을 해연풍으로 부르곤 한다. ‘오름’은 제주도의 독특한 방언이다. 자그마한 언덕, 화산으로 인해 생긴 언덕들을 오름이라고 한다. ‘비바리’는 제주도 말로 처녀란 말이다. 하지만 제주도의 특성상 주로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처녀를 비바리라 일컫곤 한다. ‘애월배’는 초승달처럼 생긴 배로써 시인이 만든 개인어이고, ‘곰별’은 금성을 뜻하는 고유어이다. 이와 같이 고은은 개인어에서 방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를 자신의 시 안에서 구축한다. 고은의 시집은 그야말로 시집 전체가 하나의 민족어 사전이라 불릴만한 규모와 밀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고은이 전대의 시인들에 비해 더 빛나 보이는 것은 고유어 중심의 사고를 지닌 작가들이 보여준 한계, 즉 고유어 중심의 사고를 지녔기에 자칫 ‘지나간 시대’에 머물 수 있는 문제를 살아있는 민중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보기 좋게 넘어선다는 점이다.

 
 
  오봉옥|
시인, 겨레말큰사전 편찬 위원
지은 책으로『나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김수영을 읽는다』,『서울에 온 어린왕자 1,2』등이 있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모국어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