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과는 달리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비하여 더 인기가 높다. 드라마와 역사극 등 한국적 상황에서의 서사와 서정이 좀 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국 영화에 못지않은 영화 제작과 연출 기술의 발달이 한국 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왔다. 그동안 부진했던 공상과학이나 특수 효과 기술이 필요한 장르에서도, ‘괴물’(2006)이 (비록 외국에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언어와 관련하여, 현재 잘 나가고 있는 한국 영화의 특징은 리얼리티와 지역어(사투리)이다. 영화 속에서 언어의 리얼리티의 한 면은 심한 비속어의 자연스러운 사용이다. 비속어를 사용하는 계층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그리다보니 언어도 그들의 언어 그대로 여과 없이 나간다. 이것과 관련되는, 또 하나의 언어적 특징은 지역어의 사용과 그 지위이다.
예전부터 지역어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주로 영화 속의 작은 역할을 하는, 가정부 혹은 고용인의 언어이거나, 악역의 언어였다. 그러나 근래 영화 속의 지역어들은 그러한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주역이다. 그러한 영화들 중 대표적인 것이 ‘황산벌’(2003)이다. 이 영화는 상당히 특이한 실험을 하는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백제와 신라 사람들의 언어를 호남 방언과 영남 방언으로 설정하고 영화 속에 구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소재의 영화에서 고대인들은 현대 서울말을 사용한다. 실제로 고대의 언어는 현대의 언어와 달랐을 것이니 그것은 관객의 이해를 위한 하나의 가정이다. 고대의 백제와 신라는 지역적으로도 달랐으므로 실제로 서로 다른 언어 혹은 적어도 다른 방언을 사용했을 것인데, ‘황산벌’에서는 그것을 현대의 호남 방언과 영남 방언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재미있는 실험은 과거의 지역별 언어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현대의 두 방언을 한 영화에서 듣게 함으로써 두 방언의 차이에 대한 인식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이 영화 속에서 지역어는 시작 부분에서는 희극적 요소로 작용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정상적인 언어의 기본 기능, 즉 의사소통의 기능을 함으로써, 이 영화는 지역어가 표준어에 비해 저급한 언어가 아니라는 언어학의 기본 원리를 은연중 드러낸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영화 ‘황산벌’(2003, 이준익 감독)
다른 많은 영화 속에서도 지역어가 이전과 달리 주역으로 쓰이는데, 이전부터 쓰이던 지역어의 부정적 기능을 강조한 것들이 많다. 그것은 폭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웃음을 유발하는 희극적 역할이다. 예를 들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친구’(2001)는 부산 지역 폭력배들의 성장 과정과 일상을 보여주면서 부산 방언을 통하여 리얼리티를 높였고, ‘가문의 영광’(2000)에서 지역어는 조직 폭력배(폭력 가문)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희극적 요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폭력배가 나오는 이러한 영화는 그들의 언어(지역어) 속에 비속어 표현이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지역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최근의 ‘사생결단’(2006) 같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에서 부산 지역의 마약상과 형사의 거친 행동과 비속어로 얼룩진 언어(부산 방언)가 여과 없이 나타난다.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그리고 일반적 사회 인식의 변화에 의하여 젊은이들의 지역어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다르다. 즉 지역어를 표준어보다 저급하게 보는 경향이 약해졌다. 그러한 바람직한 경향이 폭력배 영화의 바람직하지 못한 지역어 사용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만, 다른 많은 영화에서는 지역어가 순박하고 친근한 사람들의 언어로 사용되기도 하여 영화가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선생 김봉두’(2003)와 ‘웰컴 투 동막골’(2005)에서 강원 방언이 산속에 사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언어로 사용됨으로써 다른 지역의 방언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단, 이것들 역시 희극적 요소로서의 지역어의 역할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지역어 자체를 통한 재미의 제공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2005, 박광현 감독)
폭력배의 언어와 희극적 요소로 이용되는 지역어의 사용은 지역어에 대한 접촉의 기회를 더 많이 준다는 면에서는 가치가 있지만, 과거 지역어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 혹은 복구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표준어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지역어를 인식시키는 좋은 방법은 다른 시도로 이루질 수도 있겠다. 즉 보통 사람들의, 희극적이지 않은, 현대 지방 도시 생활에서의 지역어 사용의 모습을 영화 속에 담는 것이다. 젊고 멋있는 남녀 주인공이 편안한 상태에서 지역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때, 그것은 지역어가 표준어와 마찬가지로 언어의 기본 기능을 훌륭히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아울러 다른 지역 방언에 대한 관용도 증대시킬 것이다.
물론, 표준어는 그것 나름대로의 가치와 효용이 있다. 공적인 상황에서의 표준어 사용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지역어와 표준어의 코드 변환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시될 때, 언어의 모든 기본 기능을 가지고 있는 지역어의 가치와 표준어의 효용성이 동시에 제대로 평가받고 인식될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상업적 성공 여부는 영화적 가치를 결정하는 수많은 다른 요소들에 달렸겠지만, 언어(지역어와 표준어)의 사용 양상이 자연스럽게 현실과 일상을 반영한다면 그것이 영화의 가치, 나아가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