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신문 읽기가 하루의 중요한 일과다.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신문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휘를 적어두었다가 내게 물어본다. 대개는 영어다. 피비(PB)가 뭐냐, 웨딩 플래너가 뭐냐, 꼼꼼한 어머니의 질문은 끝도 없고, 때로는 나도 뜻을 몰라 쩔쩔 맬 때가 많다. 고약하기 짝이 없다. 개인금융 혹은 개인금융상담가 쯤으로 하면 될 것을 우리말 버젓이 놔두고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쓸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기야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주장이 적지 않은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니 고작 피비니 웨딩 플래너니 외래어 늘어나는 정도로 흥분할 것도 없긴 하겠다. 그러나 글쟁이라 그런지 아니면 뜻밖에 내게 국수주의자의 기미가 있는 것인지 길거리 간판에서부터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의 쓰잘 데 없는 잡담에 이르기까지 영어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 제 나라 국군통수권마저 미국에 넘겨준 그닥 유쾌하지 않은 우리네 역사가 오늘날까지 그 모양 그 꼴인 것 같아 기분이 영 씁쓸하다. 가만 생각하면 말은 그 나라의 자존심이다. 오늘날 우리말의 상황이 곧 우리나라의 상황인 것이다.
지난 해 남북 민족문학대회 참가 차 평양에 다녀왔다. 버스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단고기집의 대형간판이었다. 서울에서는 개고기집이 뒷골목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그것도 개고기라는 직접적인 표현조차 쓰지 못한다. 88 올림픽 당시 외국 손님들을 깊이 배려하여 영양탕이니 사철탕이니 보양탕이니 은근슬쩍 이름을 바꾸었던 것이다. 말고기나 달팽이를 먹는 제 나라 식습관은 아무렇지 않으면서 개고기를 먹는다고 야만인 취급하는 서구의 횡포에 찍소리 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그들의 논리를 주입당하고 만 남쪽의 처지를 비웃는 듯 단고기집의 간판은 당당했고, 그 규모 또한 대단했다.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건만 어쩐지 통쾌했다.
북한은 그랬다. 먹거리에도 말에도, 남쪽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자존심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북한에는 동양화가 없었다. 조선화가 있을 뿐이었다. 별 것 아니지만, 제 나라 그림을 조선화, 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자존심이 아닌가. 또한 북한의 말은, 외래어도 국어의 일부이며, 우리말에 없는 것은 외래어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근거 하에 무수한 외국어를 수용해온 남한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외래어 없이도 훌륭했다. 북한에서는 노크를 손기척이라 하고, 마네킹을 몸틀이라고 한다. 손기척도 몸틀도,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냥 듣기만 해도 그 뜻을 짐작할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이다. 잠시만 고민하면 우리에게 없던 상황이나 사물이라도 얼마든지 우리말로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남한은 잘 사는 서구를 하루빨리 따라잡아서 그들만큼 잘 살아보자는 게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었고, 그 결과 어지간히 살게는 되었다. 그러나 먹고 살게 된 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인간은 인간다운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 구찌나 에르메스의 백을 걸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그런 품위나 자존심이 아니었다. 키는 것은 품위 없는 짓이라고 배웠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 때는 남의 집을 찾아가지 않고, 먹을 것에 유혹당하지 않는 품위였고, 그래서 인간이란 밥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자존심이었다.
그런 자존심을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의 품위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리이고, 실리를 위해서라면 제 나라 말조차 서슴없이 버려도 된다는 세상이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한국어에 맞게 발달해온 혀조차 길게 잡아 빼는 잔혹한 행위마저 망설이지 않는다. 그런 세상이 우리말을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세상을 살면서 남과 북의 말은 그 세월과 이념의 거리만큼 멀어졌다. 그러나 나는 북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북한의 책을 읽을 때 한 번도 우리 어머니의 피비나 웨딩 플래너와 같은, 이해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다. 그곳에서도 우리말을 쓰고 있었고, 그 우리말은 내 유년의 어슴푸레한 기억에 남아 있는 어른들의 말과 닮아 있었다. 그 어른들의 삶의 태도까지도 북한 사람들과 비슷했다. 하기야 말이 곧 삶의 반영이니 그럴 만도 하리라.
올 여름 내내 나는 북한의 평양냉면이 그리워 몸살을 앓았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냉면집에 가보기도 했지만 북한에서 먹었던 그 맛은 아니었다.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물자가 부족한 탓인지 설탕도 인공조미료도 국적불명의 다양한 야채들도 넣지 않았던 그 순수한 맛을 언제까지 그리워만 해야 할까. 먹고 싶으면 달려가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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