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누리판
2006/09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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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겨레말
 
  함께 읽고 싶은 글 -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1957년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말을 집대성한 대사전을 갖게 되었다.
  이름하여 ‘큰사전(1929~1957)’이 그것인데, 세계의 어떤 사전보다 힘들게 편찬된 사전이 아닌가 싶다. 편찬 기간 28년, 총 6권, 어휘 수 164,125개의 ‘큰사전’은 일제 강점기에 편찬이 시작되어 ‘
6ㆍ25 전란’을 겪으면서도 사전편찬가의 헌신적인 노력과 많은 독지가의 도움으로 간행되었다. 특히 이 사전을 편찬한 사전편찬가들은 감옥에서 순직하기도 하였고, 사전 원고를 등에 지고 피란을 떠나는 등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초를 겪었다. 이에 선열들을 기리는 마음에서 이 글을 추천하고자 한다.  -- 한용운(편찬부실장)


 
큰사전의 완성을 보고서

  돌아보건대, 일제의 학정 밑에서 겨렛말을 보존하며, 겨렛넋을 잃지 않기 위하여, 4262(서기 1929)년 한글날에 우리 사회의 문화인 108명이 한 자리에 모이어, 우리말 사전 편찬회를 발기한 지 이제 28년을 지내었다. 이 동안에 밖으론 두 번째 세계 대전이 있었고, 강포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따라, 배달겨레의 해방이 되었고, 6ㆍ25 사변이 있었으며, 안으론 한글학회 회원 삼십여 명이 일제의 감옥 속에서 고생하였고, 사전 원고는 혹은 회원을 따라 함흥 경찰에게 몰수되었고, 혹은 6ㆍ25 사변 당시에 땅속에 묻히었고, 혹은 1ㆍ4 후퇴로 천안과 부산으로 피란하였다. 이렇듯 중첩한 파란 속에서 사전의 원고가 보존되었음은 천만 다행이라 하겠지마는, 앞에는 이윤재, 한징 두 동지가 함흥에서 옥사하였고, 뒤에는 이중화 선생이 북한으로 끌리어 가서 불귀의 객이 되었고, 정태진 동지는 비워진 서울에 돌아와서 고적히 사전의 준보기를 계속하다가 불의의 변고로써 순직하였다. 맨 처음 발기회에 참석하였던 108인 가운데 사나운 세파에 이승을 하직한 이가 다수이요, 최초의 편찬 사업 추진 상임위원 5인 중 둘이(이중건, 신명균)는 저승으로 가고, 둘이(안재홍, 이극로)는 북한으로 가고, 한 이만이 아직 이 자리에 남아 (이 글을 씨(쓰)고) 있다.

  이러한 거친 세파 속에서 이 편찬 사무에 관여한 여러 사람들 가운데 천우의 건재(健在)로써 가장 오랫동안 중심적으로 각고면려하여 오늘의 성과를 이룬 이는 정인승 님이요, 일제때로부터 오늘까지 한결같이 일한 이는 권승욱 님이요, 해방 후로부터 오늘까지 편찬에 힘쓴 이는 이강로 님이요, 주장 사전 사무를 맡아본 이는 유제한 님이다. 오늘의 성과는 이미 저승으로 간 이윤재, 한징, 이중화, 정태진 네 분의 글자 그대로의 헌신의 적공과, 정인승, 권승욱, 이강로, 유제한 네 분의 꾸준한 노력과, 이밖에 각 분야 전문어의 뜻매김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여 준 50여 전문가의 고마운 협력과, 및 편찬과 교정에 종사한 여러분의 성스러운 협력의 결정이라 할 것이며, 맨 처음 발기회에서 위임된 상임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전 편찬 사업과 그 원고로 더불어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다가 마침내 그 완성을 보게 된 나 스스로의 기쁨도 비길 데가 없다.

(*이 글은 1957년 최현배 선생이 ‘큰사전의 완성을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쓴 글로, ‘큰사전’  6권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글을 가져온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