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누리판
2006/09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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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야기
 
통일 이야기 - 이재규(겨레말큰사전 사무처장)
 

 

  서울, 공덕동 -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기까지

  마포대교를 넘고 공덕 오거리를 지나서 길은 남북으로 쭉 이어진다. 그 길 오른쪽 한편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실이 있다. 붉은빛이 감도는 외벽의 지방재정회관 12층 사무실에 들어서면 웃는 표정의 나이든 이를 그린 유화 액자와 마주치게 된다. 굵은 검정테 안경 너머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방문객을 바라보는 그이는 문익환 목사다. “반가워요.” 금방이라도 정겹게 손을 내밀 듯한 표정의 문 목사님을 보고 있자면, 세상사 모든 일은 그렇게 ‘즐겁게’ 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코 간단치 않은 신산의 세월을 여러 차례 넘어왔건만 생전의 문 목사님은 늘 그렇게 웃는 낯이었다.

  겨레말사무실에 문 목사님의 유화 초상이 걸려 있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989년 3월 25일,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공동 국어사전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공동작업을 제안하면서 겨레말큰사전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북 공동 국어사전은 첫발을 뗐지만 사전편찬위원회가 출범하기까지는 그 뒤로도 1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1994년 문목사와 김주석이 같은 해 세상을 떠나면서 어렵게 이뤄졌던 합의를 이끌어갈 양쪽의 주체가 막연해졌고 그 뒤로 남북관계가 여러 차례 요동치면서 사전 이야기는 한동안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의 6ㆍ15공동선언이 있고 나서도 3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묵혀둔 약속이 다시 세상에 나왔고 드디어 2005년 2월 19일 남북공동편찬위원회가 금강산에서 결성되면서 겨레말사전은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최초의 약속으로부터 따지면 16년 만의 일이었다.

  평양, 개성, 금강산 - 겨레말큰사전은 어떤 정세변화가 있어도 꼭 이뤄야 할 사업

  제2차 공동편찬회의는 평양, 제4차는 개성, 제6차 회의는 금강산에서 열렸다. 2005년 8월 15일 북의 학자들이 3차 공동편찬회의 참석차 서울에 왔고 5차 회의를 북경에서 개최했으니 반절 이상은 북측에서 회의가 개최된 셈이다. 남북 공동작업인 만큼 서로의 지역을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것이 맞겠지만 적지 않은 규모의 인원이 (국외로) 이동하려면 상당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북쪽의 사정을 고려하여 남측위원회가 ‘양보’를 한 셈이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북측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을 알고 있었다. “북과 남이 진정으로 통일을 이루려면 정서의 통일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겨레말큰사전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마음을 통일시키는 소중한 작업이다.”는 답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 정서로는 김 주석이 생전에 했던 약속이기에 더 무게가 실리는 눈치였다. 북쪽의 관계일꾼들 사이에서는 남쪽과 다른 사회문화교류 사업도 많이 하지만 겨레말큰사전만큼은 어떤 정세 변화가 있더라도 꾸준하게 밀고 나가야 할 중점사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2005년 9월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평양)에서 “남과 북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를 적극 밀어주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합의(제5항)가 가능했던 것은 이 같은 정황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연길 - 제3자의 눈길로 한반도를 보다

  남과 북의 교류협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뤄지기 전에 연변 조선족 사회는 북과 접촉하는 유일한 우회통로였다. 중국 연변지역은 사회주의 체제의 지배원리가 작동하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한 곳이며 말과 혈통을 같이하는 조선족이 집단거주해온 사회였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진 뒤에 연변은 북을 들여다보는 창(窓)과 같은 역할을 했다. 실제 연변 조선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려서 배운 조선말과 글의 기준은 다 북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조선족 사회는 한국과 거의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위성방송으로 한국의 인기드라마를 같은 시간대에 시청하고, 왕래가 빈번하기 때문에 생활어도 남쪽을 많이 닮아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조선말, 한국말, 연변말이 뒤섞이면서 아직 북측 언어체계를 따르고 있는 교육현장과 실제 생활과의 괴리 등 여러 부문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연변 지역어 조사와 문헌자료 조사를 위해 연변 쪽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한반도 근현대사의 격동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고, 두 개의 사회제도를 경험하고 있으며, 조선동포이면서 동시에 중국 인민이기도 한 연변 조선족의 특수한 처지가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제3자의 눈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6ㆍ15시대-분단시대의 끝자락, 통일시대의 들머리가 충돌한다

  지금을 6ㆍ15시대라 부르는 분들이 있다. 남북이 지독한 증오감에 휩싸여 서로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막 화해와 협력의 길목에 들어섰지만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채 가시지는 않은 과도기라는 것이다. 백낙청 선생의 지적대로 '분단시대의 끝자락, 통일시대의 들머리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나가지는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숱한 우여곡절과 우회, 반전이 숨어 있는 6ㆍ15시대에는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기만 하면 되었던 이전의 냉전시대보다 훨씬 정교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야말로 6ㆍ15시대를 상징하는 사업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이 1945년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남과 북을 단순통합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통일이란 남과 북이 각기 걸어온 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른 측면을 적극 받아들여 우리 모두가 풍성해지는 길이 아니겠는가. 근현대 100년간 우리 민족이 겪어온 갖은 풍상만큼 우리는 남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해갈 수 있는 저력을 쌓아온 것이다. 서로 다른 체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살아온 지 60년이 그저 헛된 세월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출발한다. 우리의 통일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먹어버리거나 일 대 일로 단순 통합하는 것이 아니듯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남과 북의 어휘를 단순히 통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겨레말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유산과 얼을 발굴하여 민족 공동체 의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통일 조국의 밝은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어디 이 일이 한반도에만 그칠 일인가. 중국, 러시아, 일본, 미주, 유럽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이산의 삶을 살아온 우리의 묵은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민족어의 영토가 한없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언어도 그만큼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물론 공통의 사전 한 권을 우리들 손에 올려놓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6ㆍ15시대의 특징이 그러하듯 남과 북의 편찬 작업자들은 어느 한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격돌하고 논쟁하며 또 한편으론 서로를 아울러 갈 것이다.

  평양과 서울, 북경과 개성, 금강산을 종횡으로 연결하며 이어가는 공동편찬회의. 우리 민족이 오랜 신산의 세월을 대가로 지불한 이 유일무이한 우리만의 역사를 버물려 가장 황홀한 ‘언어의 창고’를 함께 만들어내는 이 멋진 작업에, 작은 역할이나마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순간 놀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