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말이 얼마나 풍부한지 한 번 보라고!"
박수진(한겨레21 기자)
지난 5월, 지역말을 지키는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제주도에 갔다. 제주말은 여러 지역말들 중에서도 낯섦의 수위가 가장 높다. 인기 개그 프로그램에서 지역말은 일상화된 소재다. 무뚝뚝한 경상도말, 느릿느릿한 충청도말, 순박한 강원도말 등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만, 제주말은 개그의 소재가 된 적이 거의 없다. 웃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통된 이해가 전제돼야 하는데 제주말에 대한 이해도는 제주 지역을 벗어나면 매우 낮다. 그만큼 제주어가 낯섦을 말해준다. 제주어가 가진 특색의 정도만큼, 제주에서는 지역말에 대한 사랑이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제주말로만 노래 하는 가수도 있고, 오름을 오르면서 제주말로 관광안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영순 우리문화연구소장은 제주말로 연극을 해왔다. 제주 시골 할머니·할아버지, 제주지역의 전설 등을 소재로 한 공연이 대부분이다.
제주시 동광로 가정집 1층에 자리를 마련한 우리문화연구소에 들어서자, 오영순 소장이 반겼다. ‘제주말’에 대해서는 워낙 애정과 열정이 많은 분이라 찬물 한잔 들이켜기 무섭게 입담과 함께 제주말을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 쏟아졌다. “제주말이 얼마나 풍부한지 한 번 보라고!” (제주말을 잘 모르는 나를 배려해 소장은 특별히 서울말을 간간이 곁들였다.)
“거 혼저 걸으라. 아, 거 보질보질 걷지 말고 오쌍오쌍 걸으라. 아이고, 저 배작배작 걷는 것 좀 보소.” 오 소장은 말하면서 의태어에 따라 걷는 동작을 달리했다. 빨리 걷다가, 더 빨리 걷기도 하고, 학처럼 느릿느릿 걷는가 하면 다시 속도를 냈다. 어안이 벙벙했다. 설명이 이어졌다. “혼저는 ‘재게재게’ 즉 ‘빨리’를 뜻해. 보질보질은 ‘혼저’ 보다 조금 더 빨리 걷는 거야. 오쌍오쌍은 할머니들이 왜 마실 나갈때 걷는 걸음걸이야. 학이 걷는 거 봤어? 마치 학이 걷는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두리번하면서 말이지. 배작배작은 빨리 걷느라 앞만 보고 걷는 걸 배작배작 걷는다고 하는 거야.” 오영순 소장이 설명한 ‘보질보질’, ‘오쌍오쌍’ ‘배작배작’ 등의 단어는 현재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빠르다’와 ‘느리다’에 적절한 부사어를 붙여 걸음걸이의 속도에 대해 묘사하는 게 고작인 어휘생활을 반추해보면, 저 단어들은 주옥같다.
어디 제주도뿐일까. 전라도 출신 시인 조희범씨는 그의 홈페이지에 전라도 지역말을 모아두고 있었다. “보세기에 옷을 가지런히 영거놓고 가마때기 위로 땡긴다(작은 그릇 위에 옷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가마니 위로 던진다) “농약 쳤슨게 지까심도 칼칼히 씻어야 묵제(농약을 뿌렸으니 김치거리도 깨끗이 씻어야 먹는다)” 지역말을 쓴 예문들을 써두고 그 옆에 해석을 달았다. ‘보세기’, ‘지까심’, ‘칼칼히’ 등 전라도 고유의 말들을 잊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 사전을 만든 셈이다. 이것을 출판사 소금나무 박원석 대표는 조씨의 홈페이지에서 잊었던 고향 말을 떠올리며 그리움이 밀려왔다고 한다. 잊었던 고향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우리 말이 이렇게 풍부하고 맛깔스럽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전국은 남한과 북한을 포함해 모두 9개의 도로 이루어져 있다. 산맥과 골짜기와 강으로 나누어진 전국은 ‘한글’이라는 말을 토대로 각각의 지역적 특징, 문화적 특징을 반영해 특유의 억양과 특유의 어휘로 발전해왔다. 문제는 지금의 국어 정책, 즉 표준어 정책이 이런 각 지역의 풍성한 어휘들을 때로는 쓰레기통으로, 때로는 박물관으로 보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지역말에 대해서는 ‘~~~의 방언’ 정도로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 다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규정에 적용되지 않는 단어들은 자연히 변방어가 될 뿐이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국문학)는 “지금 어느 문학작품에서도 지역말은 대화체로 인용될 뿐, 지문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라며 “국어 정책이 표준어를 정하고 중심과 변방을 구분하는 순간, 입말로만 존재하는 지역어는 언어로서의 역할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서울로 올라온 개인들이 서울에서 사투리를 버리고 표준어로 바꾸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표준어정책이 공식어라는 규정력이 있는 언어를 하나로 정하고 있는 한 힘없는 개인들은 그 규정력에 따라서 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했고 정체성을 형성했던 지역말은 지워지거나 가슴 속에 묻힐 뿐이다.
문학작품에서도 지역어가 없다면 어떨까? 김영랑의 <오매, 단풍들것네>에서 남도 고유의 감탄사 ‘오매’를 빼버리면, 짠함과 서운함, 슬픔과 아쉬움, 고통 등 여러 가지 감정의 기복을 고루 담고 있는 시의 정서까지 함께 지워져 버린다. 최명희, 현기영, 박목월 등 많은 작가들이 자기 고향말을 버리지 않고 작품에 담아온 것은 지역말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가장 섬세하고 적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지역말로 이뤄진 문학 활동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문학의 풍부함을 담보하던 하나의 요소였던 지역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이 지역말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지역의 입말들을 ‘겨레말’로 인정하고 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잊혀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제주 지역 할망들이 입으로 흥얼대는 민요 가락인 ‘흥생이 소리’는 입으로만 전해져오다, 소리를 하는 할머니들이 점점 늙고 쇠퇴하면서 소리 자체가 잊혀지고 있다. 지역의 많은 말이 그렇게 잊혀 가고 있다. 김진해 교수는 “국가가 표준어가 아니라 지역어까지 모두 관리한다면 관리해야 할 언어의 범위가 훨씬 풍부해지는 것이고, 그로 인한 우리의 어휘 생활도 훨씬 풍부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국어학자들이 공통어 정책을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표준과 변방을 나누면서 말에 권위를 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언어를 그대로 인정하고 기록하면서 말에 풍성함을 더하자는 것이다.
박수진/ 한겨레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