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북녘말

의아하게 생각하는 나를 보고는 그는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당신이 제안한 일을 우리가 합의하지 않았던가.”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를 따라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그가 그의 동료들과 “일없어”라는 말을 곧잘 쓰는 것을 보았다. 북의 ‘일없어’ 라는 말은 ‘괜찮다, 좋다’라는 긍정의 뜻을 담고 있는 언어라는 것이었다.

그 후 저녁 시간에 다음 날의 일정 논의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아침 산책을 하는 동안 보게 된 초대소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건물이 사우나 등 여러 시설을 갖춘 종합 시설이라는 것을 안 우리는 그 시설에서 사우나를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조직해야 하고 사업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공작을 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작’이라, 무엇을 공작한다는 말인가. 일찍이 우리가 받아 온 교육에서는 ‘공작’이라는 말은 간첩들이나 질이 나쁜 사람들이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무슨 음모를 꾸밀 때 쓰는 나쁜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닌가. 우리들의 사우나를 위해서 무시무시한(?) ‘공작’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북쪽에서의 사우나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국어사전에는 공작을 ‘어떤 목적을 위하여 미리 일을 꾸며 계획하거나 준비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평양의 일정을 소화한 후 묘향산 근처의 향산 호텔에서 일박하면서 묘향산을 등반하는 일정에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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