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북녘말

정장을 하라는 안내원의 요청에 따라 산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우리에게 양복 차림으로 산을 오르는 것은 조금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북녘의 산을 오르는 일이 어디 쉬운 것인가 라는 생각으로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면서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 배 좀 까서야 되겠습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게 아닌가. 그 말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들어 보니 동행 하던 여성 안내원이었다. 빙그레 웃고 있었지만, 젊은 여성의 입에서 배를 까라는 말을 듣고는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불쾌했다. ‘배를 깐다.’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대응할 말을 미처 찾지 못해서 잠시 혼돈에 빠져 있는 우리를 향해 “우리 북에서는 뱃살을 줄이라는 말을 그렇게 쓰지요”라고 다른 안내원이 설명해주었다. 그때서야 우리는 모두들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깐다.’라는 단어는 껍질을 깐다. 알을 깐다. 라고 사용하거나, 사용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이마를 깐다.’라고 까지 사용하지만, ‘배를 깐다.’라고 하다니…. 우리는 그 이후 조금만 배가 나온 북측 사람들을 만나면, “동무, 배 좀 까시라우요” 라고 농을 걸었고, 그들도 곧잘 우리들의 장난스런 말에 웃음으로 응대해 주었다.

일주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동안의 논의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남북 교회를 대표하여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사업에 대한 합의서를 쓰기 위해 문건을 모두 정리한 후 강영섭 위원장이 교회협 총무에게 “자, 이제는 수표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수표하시죠.”라고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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