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동(통일교육협의회 사무총장)
하루일과 중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통일교육’이다. 새로 나온 책이나 언론에 통일교육이라는 말이 나오면 시선이 한 번 더 가지는 것은 아무래도 직업이 갖는 특성인 것 같다. 8년 동안 같은 분야에서만 일을 해서 생긴 것이다. 통일교육에 대한 새로운 소재, 새로운 프로그램 접한다는 것은 늘 관심의 일상사인 것이다. 사회통일교육 거버넌스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통일교육협의회는 방식에 있어 차이는 있지만 시민사회의 자율영역이면서도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와 유사성이 있어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물론 사업의 영역과 대상은 전혀 다르다. 통일교육협의회의는 청소년부터, 주부, 성인까지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실시한다. 하지만, 교육의 내용에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진보에서 보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통일교육협의회는 구성 자체가 남남대화와 갈등해결의 장이다. 남북대화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사전편찬사업 시 남측사업회와 북측사업회가 수시로 만나 의견을 조율하여 공통점을 찾아내듯, 통교협도 상호 간 의견을 조율하여 남남대화의 장을 만들고 있다.
1999년 통일교육지원법 제정과 2000년 통일교육협의회 창립 이후 정부주도의 통일교육에서 벗어나 통일교육협의회를 정점으로 하는 민간단체들의 통일교육 기회는 이전 보다 확대되고 있으나 교육적 환경이나 프로그램은 아직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무관심, 특히 청소년들의 무관심을 걱정하며 통일교육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지만 아직까지는 통일교육의 기회나 인프라가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국민 1인당 통일교육의 비용이 200원에 불과하다. 이는 GDP 대비 0.0011%에 해당한다. 통일부 통일교육원이 주도적으로 실시하는 통일교육은 연간 2만 7천여 명으로 이중 방북교육이 63%로 1만 7천명에 달하고 있다. 물론 남북관계의 발전에 따라 북한 지역 방문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나 정부의 통일교육이 지나치게 방북교육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교육의 기회를 보다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통일부에 등록된 통일교육단체는 219개의 등록법인 중 2단체에 불과해 아직까지 통일부나 민간단체의 통일교육에 대한 관심도는 사회문화협력(37단체), 인도지원협력(53단체)등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은 백년지계라는 말이 있듯이 통일교육에 대한 투자는 통일비용, 분단비용을 몇 배, 몇 십 배 절약하는 미래투자가치이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적 효과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통교협여성분과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을 다녀온 적이 있다. 버스 안에서 진행자가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몇 가지 퀴즈를 냈다. 북한말로 헝겊신은? 문화어는? 문화 주택은? 등 여러 가지 북한말을 나열하고 남한말로 대치하는 것으로 남한말과 북한말의 차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청소년프로그램에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성인대상으로는 처음 본 것이라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모두 하나라도 더 맞추려고 하며 신기해하는 표정이 마치 청소년들과 같았다. 하지만, 남북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표정이 굳어졌다. 통일교육협의회에서는 매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통일 영상제를 공모하고 있다, 작년에 대상을 받은 작품은 남북 간 화해협력이 잘 이루어져 북한에서 교환학생으로 남한에 온 학생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교환학생의 남한에서 학교생활과 친구관계를 그린 것으로 문화적, 언어적 이질감으로 생기는 갈등과 오해 때문에 한동안 거리감을 두다 나중에 친해진다는 내용으로 요즘 청소년들이 인터넷상에서 쓰는 채팅 용어나 외래어가 태반인 거리의 간판에 매우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은 외래어를 잘 이해 못해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것으로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새터민들은 생활방식뿐만 아니라 낯선 외래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하는 것은 잘 알려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통일교육 시범학교 중 하나인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는 “하루에 통일을 세 번 생각한다.”라는 큰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의 영상을 겸비한 통일전시관은 통일부가 관리하는 전국의 어느 통일관 부럽지 않은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 매년 전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탐방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을 ‘위생실’로 표기하고 노크 대신에 ‘손기척하시요’라고 쓰여 져 있는 등 여러 가지 남북한 언어를 비교하여 곳곳에 표기해 놓았다. 단순한 것이지만 언어 이질감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물론 통일수업에서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남북한 언어차이를 비교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남북한 언어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하나의 통일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것이 교육프로그램으로 활용되는 빈도수는 앞으로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통일교육협의회에서도 청소년이나 대학생 대상 통일교육 프로그램에서 통일골든벨 형식으로 남북한의 언어차이를 탐구하는 것이 고정적으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으로서 분단 때문에 언어적 이질감이 심각한 수준에 달해 남북한 언어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통일교육의 한 영역으로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문화적, 언어적 이질감은 더해 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일교육현장에서나 통교협이 주최하는 전문가 간담회에서는 통일교육콘텐츠와 프로그램운영에 <겨레말>에 대한 전문성을 겸비한 통일교육 전문가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지금처럼 호기심 위주의 단편적인 언어비교가 아닌 남북한 언어적 이질감 해소와 남북한 문화적 통합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가인 것이다. 하지만, 소개되고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장에서 진행 되는 통일교육의 유형은 통상 강좌, 강연, 워크숍, 토론회, 백일장, 기행이나 캠프, 순회 교육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여기에 프로그램의 한 분야로 남북한의 문화, 언어적 이질감을 담당해 줄 전문가가 통일교육현장에는 필요로 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의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추진 중인 분단과 지역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넘는 편찬사업이 《겨레말큰사전》을 집대성하여 통일교육현장에서 교재로 활용됨은 물론이고 통일교육의 한 콘텐츠로 역할을 하여 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영동/ 고려대와 경남대 북한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통일교육협의회 사무총장과 민화협 통일교육위원장, 그리고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