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교육의 이상: 김혜영의 「답」
유임하(한국체육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
1.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살이 만큼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교육일 것이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며 다음 세대에게 인간다움을 가르치고 사회의 이념과 관습, 제도를 훈련시키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과정이다. 이 점은 북한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에서 교육은 “나라의 흥망과 민족의 장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업”(교육법, 1999.7.14. 제1조)으로 규정된다. 김일성 주석 사후(1994), 북한의 교육법은 탈냉전의 시류에 따라 법령 단일화를 통한 체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북한의 교육 연한은 1975년 ‘우리식 사회주의’에 입각하여, 유치원 높은 반 1년,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에 이르는 11년의 교육과정을 무상 의무교육기간으로 설정했다. 고등교육의 경우, 일반 고등교육과 성인교육이 병행되는 것이 북한 교육의 특징이다. 북한에는 3개의 종합대학과 다수의 단과대학, 고등전문학교가 있다. 단과대학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 기사를 양성하고, 고등전문학교는 현장 기사를 양성한다. 또한, 공장이나 농장에 부설되어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공장대학, 농장대학, 어장대학, 대학 부설 통신대학 등이 사회 현장에서 직업교육의 필요성에 맞게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북한에서 교육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집단과 국가, 당과 수령을 위해서 헌신하는 공산주의적 인간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1950년대에 형성된 주체사상이 1970년대에 이르러 ‘정치원리’로 채택된다. 주체사상은 「노동당 규약」(1970)과 「사회주의 헌법」(1972)에 명문화되었고,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사회주의 교육에 관한 테제」(1977)는 북한의 교육이 혁명화, 노동계급화, 공산주의화를 지향하며 ‘당과 사회주의 혁명에 충실한 혁명인재’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음을 명백히 한다. 이러한 교육테제에 따라 북한의 교육은 “사람들을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하는 혁명인재로 키움으로써 혁명의 대를 이어가게 하는 혁명사업”으로 정의된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 체제에서는 교육테제에 명시된 목적에 따라 강성대국과 기술강국을 지향하며 과학 인재의 양성을 강조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2.
김혜영의 「답」(조선문학 2007년 4월호)은 북한의 교육 현장에서 참된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여기에는 “남다른 이상과 포부”를 가진 23살 처녀 교원 노경미와 그녀의 대학 동창이자 동료 교사인 원옥희가 등장한다. 노경미는 최우등으로 교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군 소재지 학교를 마다하고 궁벽한 고향의 소학교에 자원하여 교육의 이상과 포부를 실현하려는 열정의 소유자이다. 원옥희 또한 노경미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 교사이다. 그러나 두 처녀 교원은 과학영재를 어떻게 발굴하고 교육시킬 것인가를 놓고 서로 갈등한다. 두 사람은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교육 현장에서 인간에 대한 다른 관점 때문에 서로 충돌한다. 이들이 학생지도에 임하는 생각과 태도는 국가의 과학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닿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에는 계량주의에 매몰된 성적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피교육자인 학생을 부모의 마음으로 사랑함으로써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에 맞게 지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소학교 처녀 교원 노경미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교원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높은 이상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는 교장으로부터 김영성의 어머니가 요청한 대로 동료 교사인 원옥희의 학급으로 옮기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영성이가 1학년 때, 옥희 선생의 학급으로 옮기도록 권고했으나 그때는 영성이 어머니가 극력 반대했다. 담임인 경미 자신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내주었던 영성이 어머니의 마음은 왜 바뀌었을까? 이 물음은 학생의 재능과 관련된 교사의 지도방식과 맞물리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영성이의 학급이동 문제를 두고 경미는 수치와 모욕에 가까운 교사 불신임으로 여긴다. 하지만, 영성이의 학급이동은 학부모의 요청과 동료 교사 원옥희의 동의에 따른 것이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경미는 지난 1년간 참으로 열성을 다해 학생들을 지도했다고 자평한다. “타고난 총명한 두뇌에 향학열까지 결합되어 무엇이든 한번 배워주기 무섭게 받아들이고 부단히 앞서나가고 싶어 하는 그 기특한 아이들”을 위해서 그녀는 우수한 인재들에게 마음을 다해 교육사업을 벌여왔다고 자부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녀는 “학급의 전반적인 실력, 평균 성적만을 중시하고 적당한 수준으로 두루뭉술하게 교육”하는 것을 지양하고, “나라의 과학기술에 이바지할 뛰어난 인내 후비”를 키워내는 것이 “정보산업의 시대” “지식 전, 두뇌 전의 시대”에 걸맞은 교육자의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진력해온 터이다. 경미는 학급 아이들에게 교수와 과외지도를 하는 한편, 이해력이 뛰어난 몇몇 아이들을 개별 지도해 왔다. 그러던 차에 영성이 어머니는 경미를 초대하여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려주며 아들 영성이를 4학년에 있을 소학 부문 최우등학생과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영성이 어머니는 탁아소에서부터 엉뚱하고 남달리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어온 영성이의 우수한 자질을 자랑한다. 하지만, 경미는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도 절반밖에 못 쓴 채 답안을 제출하고, 수학문제를 제시하면 맨 나중에 답을 하거나 선생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눈만 껌뻑거리며 앉아 있는 영성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영성이어머니의 부탁을 자녀에 대한 환상으로 돌린다. 요컨대 경미는 영성이 어머니의 부탁을 공정성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옥희와의 관점은 확연하게 갈라진다.
“영성이 엄마 말을 들으니 그 애가 정말 범상히 볼 아이가 아닌 것 같애. 잘하면 뛰어난 수재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중략…)
“옥희, 우리 교육자적 량심에서 한번 말해보자. 지금 자식들의 교육문제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게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되고 있는데 이런 때 우리 교육자들이 인정이나 편견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되겠니? 진짜수재를 놓치구 <인공수재>나 만들어낸다면 그건 사회 앞에 큰 죄악으로 된다고 봐. 강짜로 주입시켜서 일시적으로 성적을 높이구 그런 식으로 상급학교에 입학시켜 공부를 시킨다 해두 기껏해야 간판이나 쥐였지 실지로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니?”(60쪽)
옥희는 영성이의 집과 이웃한 곳에 살면서 소문을 익히 들었던 까닭에 영성이에게 흥미를 보인다. 반면 경미는 교육자의 양심을 거론하며 학부모의 과중한 관심이 교육 현장에서 인정주의의 폐단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경미와 옥희의 대화에서 짐작 가능한 현실은 교육현장에 만연한 정실주의의 폐단과 그로 인해 반복되는 인재 발굴의 실패 상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떠들썩한 ‘치맛바람’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경미는 교육자의 양심으로 학부모의 청탁과 같은 교육 현장에 만연한 폐단을 진단하는 셈이다. 그녀는 교육자의 인정주의와 편견 때문에 진짜 수재는 찾지 못한 채 성적 지상주의에 길들여진 ‘인공 수재’만을 양산하는 현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반면, 옥희는 영성이의 재능에 관심을 가지며 그에 걸맞는 학습지도 방법을 찾아나서는 인물이다.
영성이 어머니의 청탁과는 별개로, 경미는 지난 1년 동안 영성이의 지능 계발을 위해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영성이는 이해력이나 문제 푸는 속도에서도 굼뜨기 짝이 없다. 집중력과 학습에 대한 열의 또한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경미는 영성이에게서 산만한 모습만 발견한 채 실망하고 만다. 그런 끝에 영성이어머니는 학급 이동을 요청했던 것이다.
경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영성이에 대한 교사의 회의는 양가적 의미를 갖는다. 그 하나는 그토록 비판해온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교육자의 단면을 경미 자신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북한사회의 교육이 지닌 성과 지향주의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지만, 수요자인 학생을 인간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비교육적 처사에 대한 비판도 감행되고 있다. 그러니까 영성이에 대한 회의(懷疑)에는 교육현장에 만연한 정실주의의 폐단과 비교육적 처사, 재능 없는 학생에 대한 학부모의 과도한 관심, 성적 지상주의라는 현실이 한데 어울러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경미의 회의는 헌신적이고 학생 중심의 지도방법을 찾아내려는 동료 교사 옥희의 헌신적이고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발견으로 전환된다. 곧, 비교육적 처사로 얼룩진 교육 현장에서, 참된 교육의 이상을 실현하는 모습이 옥희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경미는 자기 학급 학생들에게 최우등생 경연대회를 지도하는 한편, 영성이를 떠맡은 옥희를 유심히 관찰한다. 경미는, 밤늦도록 영성이와 마주앉아 진땀을 빼는 옥희를 보면서 학생 본인에게 부담과 고통을 주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경미의 이러한 관점은 평범한 학생에게 요구하는 과중한 학습의 부담, 과잉경쟁에 내몰리는 교육 현실이 북한사회에도 실재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러나 옥희는 남들보다 속도가 느리기는 해도 엉뚱한 생각을 하는 영성이의 특성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며 그에게 맞는 교수법을 찾아내려 애쓰는 교사상을 보여준다. 그녀는 탁아소에까지 찾아가 영성이의 학령전 교육을 담당한 교원들을 만나 영성이의 재능을 찾아내려 탐문하는 열의를 다한다. 마침내 보육원 교원으로부터 영성이의 엉뚱함과 숨겨진 재능의 소유자임을 간파한 옥희는 마침내 영성의 관찰력과 기억력이 매우 비범한 것임을 깨닫는 사건을 겪는다. 영성이는 야외학습에서 잠깐 보았던 뜨락또르를 정밀하게 그려낸 세밀화가 바퀴에서부터 온갖 기관을 정확하게 그려낸 것이다. 아동의 능력을 차츰 깨달아가는 경미와, 아동의 능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옥희의 헌신적인 지도의 열매는 소학부문 최우등생 경연장에서 꽃을 피운다. 경연장에서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기하 문제가 출제되어 모든 참가자들이 문제를 풀지 못했으나 영성이는 창의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며 1등을 차지한다.
이로써 서로 다른 시각을 가졌던 경미와 옥희의 교육자로서의 승패 또한 명확해진다. 경미가 발견하지 못한 영성이의 재능은 옥희의 입을 빌려 드러난다.
“알고 보니 그 앤 배워주는 것을 기계적으로 받아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뒤집어 반대로 생각해보기를 좋아하구 또 어떤 문제든 자기 식대로 계산해서 답이 나오는 것을 재미있어 하더구나. 그런 버릇이 있어서 어쩌다 쉬운 문젤 내두 거기에 무슨 오묘한 이치가 숨어 있지 않나 해서 한참씩이나 <깊은 사색>에 잠기군 했던 거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단순 사고보다 복잡 사고를 좋아 하는 아이거든, 호호……”(66쪽)
영성이의 능력을 발견하는 옥희의 결론은 그에게 숨겨진 독자적인 사고력이다. 이는 교육의 과정주의에 신뢰를 보내는 전인적 교육관의 핵심에 해당한다. 비록 사회주의 교육의 이상에 근거해 있으나 어느 사회이든 인재란 그 사회를 이끄는 재목을 지칭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한 대입을 통해 구성되는 기계적 지식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지식을 구성해내는 창의적인 사고가 아마도 여기에서 말하는 ‘복잡사고’일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사물의 이치를 배운 지식을 반복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원리를 스스로 사유하며 찾아내는 입체적인 사유를 가리킨다.
경미는 자신과 옥희를 비교하며, 교육현장에 만연한 타성과 실정주의, 성적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을 감행한다.
“그래! 나에겐 그것이 없었어. 부모된 심정, 부모다운 사랑! 순결하고 뜨거운 그 사랑만이 학생의 숨은 재능을 찾아낼 수 있는 거야. / 나는 오직 인정에 지지 않는 원칙과 공정성만이 교육자의 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니었어. 그건 양심이 아니라 눈앞의 성적만을 보고 손쉽게 실적을 내보려는 야심에 불과했던 거야!”(65쪽)
경미의 반성은 교단생활 4년을 결산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교육자의 이상을 호명해낸다는 점에서 북한사회의 소설 문법에 충실하지만, 학생들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이 야심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자질을 구비해야 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학생에게 교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행해지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해묵은 진실을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는 셈이다.
흑백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학습지도의 결과를 놓고 벌이는 처녀 교원의 자기 성찰은 오늘의 북한사회에서 교육의 이상을 성취하는 참된 교육과 참된 교육자상에 대한 높은 요구를 담고 있다. 경미는 ‘옥희’라는 거울을 통해서 “시험지가 아닌 아이들의 일상생활과 부모들의 말 한마디에서도 숨은 재능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던 그 사려 깊은 마음”과 “사고방식의 특성과 그에 맞는 교수법을 찾아내기 위해 탁아소와 유치원까지 찾아다니고 무더위 속에 수십 리를 뛰어다니던 그 모습”을 통해서 교육자의 이상을 발견한다. 옥희야말로 “자식을 위해 어머니만이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랑이고 헌신”(65쪽)으로 영성이의 재능을 이끌어낸 진정한 교사상이기 때문이다.
3.
한 편의 소설을 통해서 사회와 사회 성원들의 삶을 살필 수 있다면, 「답」은 오늘의 북한사회에서 교육 현장에 만연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며 ‘참된 교육의 이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읽을 만하다. 성적 제일의 계량주의적인 교육 실태와 학부모의 치맛바람, 학생의 재능보다는 성적 우수자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 사랑과 열정이 결여된 교사들의 지도방식 따위의 현실이 이야기를 낳은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교육 현장에 만연한 온갖 부조리한 현실을 뒤집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아동의 재능을 발견하는 일이 부모의 관찰과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통해 아동의 재능이 발현된다는 낙관적 전망을 향해 간다.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고자 애쓰는 교사의 열정이 이야기 중심에 배치되고, 새로운 교수법을 마련하려는 교사의 아름다운 모습이 전면에 배치되는 것은, 교육 현장에 만연한 온갖 부정적인 세태를 극복하고 참된 교육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사회적 바램이 반영된 것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작품의 화자는 근거 없는 자긍심과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되었던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몰각(沒覺)했던 참다운 교육의 의미를 성찰하는 존재이다. 이 화자는 굼뜬 학생에게 적절한 교수법을 찾아 애쓰는 교사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참된 교육이 과연 모습인지를 되새김질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정실주의를 극복하려는 안간힘을 쓰는 경미의 시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학생의 재능을 발견해내는 교사의 노력이 동료교사의 오해를 털어내는 이야기의 궤적이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헤쳐가며 인간적인 교육이라는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는 북한 사회의 소망을 잘 보여준다.
이 값진 성찰의 경로에서는 재확인되는 가치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것, 학생의 감추어진 재능을 꽃피게 만드는 교사의 노력 등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타성화 된 교사의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주변 교사들의 질시와 편견에 시달리는 현실의 곤고함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같은 오해와 질시 속에서도 묵묵히 학생의 재능을 찾아내고 그에 걸맞는 지도법을 터득해 가는 아름다운 교사의 모습은 어느 사회에서나 요구되는 참된 교육의 이상과도 같다.
유임하 / 한국체육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현대소설)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소설의 분단이야기」, 「한국문학과 불교문화」, 「북한의 문학과 문예이론」(공저) 등이 있다.